그런데 서양이 그보다 훨씬 앞선다 하니, 눈밝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조선 넘어의 세상을 배우고, 400년만의 구태를 극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양에서 멀고도 먼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먼저 만들어볼만 하지 않은가.

갓 쓴 양반이 없으니 생각과 말이 자유롭고, 손재주 좋은 이가 많으니 선진 기술 개발이 수월하고, 열린 듯 닫힌 바다를 누비며 뭉칠 줄도 알고, 흩어질 줄도 아는 이들 인지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자재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있겠는가. 이 정도 꿈도 꾸지 않고, 재주 많고, 고기 많고, 돈 많다고 자랑만 한다면, 공방이 무엇이고, 돈 다발이 무언가. 재주가 별건가. 섯다방의 하룻밤에 불과할 뿐.

저 푸른 바다는 만 생명의 근원이요, 통영의 삶은 바다를 벗어나 한 치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기에 바다 가꾸기를 지극정성으로 해야 한다. 오물을 함부로 버리고, 어린 새끼 고기까지 잡아들이는, '일단 나부터 잡고 보자'는 수준이라면 바다와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삶은 푸른 빛깔이 아닌 검붉은 색일 뿐이다. 옛 어른들은 '흐르는 냇물도 아껴 쓰라'고 하였으니, 꼭 필요한 만큼만 걷어올리는 절제 또한 미덕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에게 공방 기술과 고기잡는 법, 돈 버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이웃과 화합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화합하지 못하면 사소한 다툼으로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무너진다. 주인 없는 바다를 터전으로 삶을 꾸리는 이들은, '함께' 보다 '나 먼저'가 일상화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함께' 할 때 '나'의 안녕과 이익이 보장된다. 그렇다고 '함께'에 빠져 '나'를 잃어버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저 앞바다의 섬들을 보라.

그리고 '글'을 가꾸고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뛰어난 장인이 즐비하고, 진귀한 해산물이 넘쳐나고, 그것들이 나는 바다와 섬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고 있는 이는 많은데,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없다. 이러고서야 어찌 누 백년을 번창하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고장이었다고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바다와 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야 한다. 입에서 입으로 과연 몇 종류의 생물을 전할 수 있겠는가. 그 생물들이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업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나눌 수 있겠는가.

글이 없으면 생각이 뒤쳐지고 먹는 입이 앞서간다. 입은 탐욕스러워 금새 과욕과 쾌락을 부추기게 된다. 쾌락의 입은 줄이고, 사유와 성찰의 입을 늘릴 때 나와 너와 우리 모두의 삶이 보다 윤택해질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통영은 사랑스러운 고장이다. 1795년 12월, 연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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