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8일 정윤주 선생 23주기 추모제 후 기념 촬영 모습.좌측그룹: 좌측부터 위에서 아래로 김순효, 배대원(정윤주기념사업회, 공간북스 편집고문), 박정욱, 서유승(전 통영예총회장), 김홍종(전 통영예총회장), 정규선(따님, 유족), 정대은(3남, 유족), 우측그룹: 좌측부터 위에서 아래로 박우권, 이충실(통영사연구회), 이지연, 신정수, 김성경(통영음악협회), 서미진(통영음악협회), 최정화(유족 정대욱부인), 최길준(유족 정윤주 외조카), 박용수, 정대욱(2남, 유족), 김용재(길문화연대 회장) 별도 설명이 없는 이는 통영예술의 향기 회원.

전 세계가 감염병 사태로 엄청난 혼란을 겪었고 아직도 이 사태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이온데 이렇게 어려운 마음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후적 환경 요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 통영은 거센 바닷바람 탓인지 다행히 확진자 한명도 없는 청정지역입니다. 하루빨리 이전 같은 평온한 일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첫 추모제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정윤주 선생님의 추모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예술의 향기가 2009년부터 오늘까지 모두 64회의 추모제를 올리면서 조촐하마나 음식을 올려 추모제를 올리게 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 2010년 윤이상 선생의 추모제 때 어수선한 시국 탓에 추모제를 지낼 장소인 현 윤이상기념관의 메모리홀을 시로부터 사용 허락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남의 빈사무실에서 밀회하듯 추모제를 올리면서 그 몰이해한 경계선상의 서운함을 제사상을 차려 윤이상 선생께는 송구함을 표하고, 저들은 그 뒤편의 촛불 아래에서 나약하고 서운함을 서로 달래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두 번째가 지난해 이곳 정윤주 선생님의 첫 추모제 때 였습니다. 지난 추모제 때에도 언급한바 있지만 저들 단체가 첫 추모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고민해 오던 정윤주 선생님의 추모제를 더 이상은 애써 외면하는 양심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깊은 회오(悔悟)감, 돌아온 불효자가 면죄부를 바라는 자위의식 같은 발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 번째인 오늘은 우리 스스로가 아직도 말 못할 서운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마음임을 나타내는게 아닌가 합니다. 일배(一杯)의 정성에 불가한 조촐한 제상 앞에서 변명이 길었습니다.

지난해에 통영시에 우선 작은 묘소 안내 표지판이라도 하나 세워 주십사 하고 건의하였는데, 독촉 않는 저들이라 그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 한 번의 연락도 주지 못할 만큼 우리 시의 공무원들은 바쁜가 봅니다. 시장님께 그분들의 여유를 간청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조간신문에 경북 영양군에 '이문열문학관'이 만들어진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2002년에 조선시대 최초의 음식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집필자인 장계향 선생의 전시체험관을 건립했는데 그 전시관의 활용도가 떨어져 그 전시관을 25억을 들여 리모델링해서 건립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서울 태생인 이문열 작가의 부친 고향이 영양군 두들마을인 것이 그 연결고리라 하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 조금도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참 딱한 스토리를 지닌 자원부족 지역의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지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봅니다.

문인에 한정하여 국내에는 셀럽, 즉 유명인사인 생존작가의 '문학관'이 두 군데 더 있습니다. 강원도 화천군에 2012년에 개관한 '이외수문학관'과 2016년 개관한 창녕 우포늪가의 '이우걸문학관'입니다.

시조시인인 이우걸 작가는 1946년생으로 경북대학교 재학 때 스승인 김춘수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한 분입니다. 김춘수 선생은 아직도 근본없는 엉뚱한 마을에 유품전시관이라는 임시시설물에서 격에 맞는 멋쟁이 양복을 꺼내 입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평 선생님은 생전에 저들 단체를 통해 모든 유품과 사업권을 전부 통영시에 기증하겠다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음에도 생존해서 안된다 했고, 사후에는 장소가 없어서 안된다며 4년이나 밀쳐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근간에 통영시에서 근대문화유산 사업 일환으로 초정 김상옥 선생의 생가를 구입하여 복원 계획에 있다하니 작은 위안 삼습니다.

이제 가장 당면한 문제는 정윤주 선생님의 격에 맞는 음악당과 기념관을 추진하는 일입니다. 작은 외침입니다만 이 자리를 빌어 이 운동에 합심해 주실 것을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늦은 후회를 접고 작은 벽돌 하나 놓는 청사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추모제는 기림입니다. 기림은 한자로 선양(宣揚)이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추모에는 선양이라는 좋은 표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고 존경하고 본받아야할 것만이 아닌 회오, 즉 뉘우치고 반성하여 바로 잡아야할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통영은 자타가 공인하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문화예술에 있어 대한민국 최고이며 선구자의 도시입니다. 그것이 가장 격 있는, 쉬운 말로 교양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명인의 인사 첫머리에 '우리 통영은 문화예술의 도시로서….'로 시작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가 하면 표준이 된다는 말처럼 첫 단추를 잘 끼워주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추모제에 참석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준비에 마음쓰신 우리 회원들님께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타지에서 일부러 시간 내어 참석해주신 유족이신 정대욱 정대은 정규선 자제분과 배대원 최길준 선생님 고맙습니다.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 중 한 구절입니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도 없다/경전 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길은, 가면 뒤에 있다.

통영예술의 향기 회장 박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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