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재 시인은 그가 태어난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와 평생 생의 끈을 거의 놓지 않았을 성 싶다. 그는 늦깎이로 '시조교실'의 문을 두드려 시적 사리를 깨우치고, 이를 통해 2017년 <현대시조> 가을호로 등단도 마친 상태라, 전체적인 작품의 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로는 미치지 못할 지라도, 예사롭지 않은 부분들을 눈여겨 볼 수 있다.

골목길에서

시골집 가는 길목 돌복숭나무에는/수줍은 모습으로 발갛게 물이 들며/잎사귀 가리개 삼아 익어가는 개복숭.//복숭아 서리하다 붙들린 애들 대신/이런 일 또 생기면 모든 책임지겠다며/호기를 부리던 시절 그때가 떠오른다.//이제는 그 애들도 오십은 넘었겠다/잠잠할 틈도 없던 오래 전 그 골목엔/해 지자 가로등 아래 나방들만 뒤끓네.

3행 3수로 구성되어진 위의 시 「골목길에서」의 첫 연은 "수줍은 모습으로 발갛게 물"든 '돌복숭나무'에서 출발해, "잎사귀 가리개 삼아 익어가는 개복숭"을 발견하게 되며, 둘째연의 "복숭아 서리하다 붙들린 애들 대신/이런 일 또 생기면 모든 책임지겠다며/호기를 부리던 시절 그때"를 흥미 있게 전개시킨 점이나, 셋째연의 "잠잠할 틈도 없던 오래 전 그 골목"에 뛰놀던 "그 애들"은, 다 사회로 뿔뿔이 흩어져 제 삶을 누리느라 분주하리라. 지금은 "가로등 아래 나방들만 뒤끓"는 다고 한다, 어느 뉘 고향의 뒷골목과 별반 상이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새 삶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의 유년은 "줄기는 휘어지고/가지는 구부러"진 '돌감나무'가 배경으로 깔렸고, '그 땡감' "논바닥에 묻었다가/떫은 맛 없어지기를"(「구부러진 돌감나무」) 고대했던 아리한 '추억'을 되살린 것과, "서릿발이 뽀득" 대는 날 "손끝이 시릴 무렵/마을에는 해가 들고/숲으로 들어갈수록/맑아지는"(「겨울 산에서」) 그 시절이었음을 그리고 있다.

그 때 삶의 배경은 더 구체적인데, "누나들과 땔감 하러 산골짝을 누빈 시절/장작 팔아 준비하던 봄소풍의 기억까지/이야기 보따리 풀"'(「아름드리」) 정도로 그때 그 고향생각이 절절하고, "능숙한 손놀림 맞춰 춤을 추는 장작불"에 "어시장 장어 뼈와 공판장 시래기로/한 냄비 오백 원씩에 입맛 잡던", 누이의 "그 솜씨"(「장어탕」)도 잊히지 않는다. "가족들 만류에도" "낯선 땅 찾아가서 꿋꿋이 견디었던/간호사 기태 누나"가, "기구한 운명"(「파독 간호사를 생각하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지휘

딱따구리 딱따르르/숲의 고요를 몰아낸다//아무리 찾아봐도/보이지 않는 새가//딱 딱 딱/맞추어내는/기가 막힌 저 음보.

자연은 인간을 고통에서 위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위의 시조 「지휘」에서 보여주듯 그가 자연과의 합일로 생겨난 발견의 미학은 중요하게 들어앉는다. 만약, 시인이 그의 의식에서 이와 같은 '딱따구리'의 "기가 막힌 저 음보"를 들을 수 없었다면, 삶의 여유는 더 비틀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가 갈구하는 세계는 "비 온 뒤 실개천은/맑아도 너무 맑다//하늘은 높기 만하고/바람조차 시원"(「가을」)한 곳이다. 그곳에는 "산새소리 하도 고와/넋 놓고 바라보"는 현장이고, "삶의 화음"(「새소리」)을 접할 수 있는 의미로운 뜰이다. 그리고는  "까마귀 한 마리가/감나무에 올라"서 "가을 냄새 맡"고, "아 홍시!"(「9월」)로 인해 시선도 집중시키는 곳이다. 나아가 "창문에 닿지도 않게/숨죽여 내리는 비"(「단비2」)로 인해, 산천은 의미로운 생명으로 발돋움되었음을 깨달게 된다.

그가 이렇게 발견의 미학을 통해서 굳건하게 삶을 다잡게 되는데, "대양산도 부채산도/눈이 내려 새하얗다//춘분 지나 내린 눈이/뜬금없다 싶은데도//몇 마리 소와 동무해/살고 싶은 파란 꿈"에 도달한다. 더욱이 "솔솦과 어우러진/순백의 고산지대//새해 첫 겨울풍경/봄이어도 볼만하듯//꿋꿋이 청춘의 모습/되살리고 싶"(「축사 터에서」)은 갈망에 이른다. '대양산'이나 '부채산'은 그가 사는 배경의 장소로 거제시 동부면에 있는 산이다.

이로 인해 그는 "밭으로 가는 길은 웃자란 풀밭"을 나서게 되고, "짬 내어 마음먹고 깔끔하게 베고 보니/양탄자 깔린 것처럼 푹신"(「밭으로 가는 길」)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는 "쑤욱 쑥 자라는 봄/생기가 가득하다//어느새 이리 자라/기운이 넘쳐나니//가야지/나도 일터로/가슴 활짝 펴고서"(「마늘밭」) 나서는 삶의 의지를 다진다. 그리고는 '우듬지' 자르는 일에 열중하게 되고 그 결과로 "늦둥이/끝호박 하나"(「끝호박」)에 만족하게 되며, "도라지 더덕 심는데/짧은 해가 기"(「소설小雪」)우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새까만 연병장에/오(伍)와 열(列)을/맞추어 선"(「참깨밭」) 참깨를 대하게 된다. 그의 주위에는 "반딧불이 한 마리가/주위를 배회"하고 그로서 "황홀한 그 빛을 쫓아/취"하게 되며, 늘어난 반딧불에 "한 아름 선물 받은 듯/그저 가슴"(「개똥벌레」) 뛰게도 된다. "못난이 동백 묘를/밭가에 심었더니/어떻게 자랐는지/울 되고 그늘 되어/마늘밭 감싸 안은 게 엄마 품을 닮"은 곳까지 발전한다. "분재나 정원수는/누려보지 못할 희열/동박새 찾아오면/세상 얘기 주고받고/새빨간 꽃은 져서도/우러르며/받"들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덕재 시조시인의 시편들에서는 자연과의 동일화에 해당하는 시편들이 눈에 든다. 적지 않은 시인들이 자연에 동화되어 그들의 시편들이 형상화에 성공된 예를 볼 수 있듯이, 자연의 생명에서 그 소리를 이미지화해서 독자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 더 나은 세계가 펼쳐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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