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토요일 저녁, 윤이상기념관 메모리홀에서는 오십여 명의 시민들과 종교인들의 만남이 있었다. 어느 한 종교가 아니라,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다섯 종교의 종교인들이었다. 아주 낯선 풍광이었다. 여전히 종교 간의 벽이 높고, 교류와 화합을 말하기엔 아직 이른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만남이 낯선 두 번째 이유는, 만남의 주제였다. 으레 종교인과 시민의 만남은 인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변화의 시대, 시민사회의 역할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핵심어인 '변화', '시대', '시민사회'라는 단어는 종교인들과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날 참석한 종교인들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었기에 가능한 주제였다. 20년이 넘도록 고비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온 분들이었다. 이념을 넘어, 국경을 넘어, 종교를 넘어 생명을 지키기 위해 평화 정착과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 온 이들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남북문제와 한반도의 미래,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시민이 묻고, 종교계 원로들이 답한 이야기의 일부를 옮겨본다.

2017년에 한반도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그러다가 2018년부터는 반대로 통일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갈 듯한 분위기였다. 지금은 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결국 이 문제는 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널뛰기 폭이 줄어들고 있다. 역사의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낙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

지금까지는 서구가 모범이었고, 우린 부지런히 모방했다. 그래서 서구가 겪었던 시행착오 과정을 뛰어넘어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들과 같은 선상에 서게 되었다. 최근에 맞닥뜨린 문제들은 그들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방역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따라 할 모델이 없다. 우리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제 더는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 성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 다양한 조건에 부딪히며 하나하나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따라 하는 게 몸에 배 있어 늘 정답 찾기를 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험과 탐구가 중요하다. 모든 분야가 혼란스럽다. 하지만 기존 질서가 무너지니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다. 최근 K-방역 모델이 세계 표준이 된 것처럼, K-산업을 일구어서 세계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 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학습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가 끝날 무렵 시민들이 매우 반가워한 장면이 있었다. 여덟 명의 종교인 가운데 통영 사람이 두 분이나 계셨다. 한 분은 통영 출신이었고, 또 한 분은 통영에 살고 계셨다. 서호동이 고향이신 분은, 통영 사람들의 섬세함을 강조하며, 뛰어난 예술성과 창의성을 잘 살려 어떤 통영이 되어야 할 지 연구하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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