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도시도 나라도 모두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 그것을 품격이라고도 하고, 빛깔이라 부르기도 하고, 결이라 부르기도 한다. 통영은 결이 남다르다.

결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그렇다고 결이 같은 것들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 비슷하지만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결을 이루는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구동존이(求同存異)이다. 그러니 결이라고 해서 하나로 뭉뚱그려 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실재를 보기 위해서는 결 전체를 보면서 동시에 결의 작은 부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주민이 보는 통영의 결과 관광객이 보는 결은 다르다.

고운 결은 곳곳에 있다. 나무에도 결이 있고, 옷감에도 결이 있고, 축담에도, 바다에도 잔잔하게, 때로는 장쾌하게 결이 흐른다. 고운 결 중에 고운 결은 사람의 결이다. 인품이 고운 이에게서는 아름다운 자연 못지않은 훌륭한 결을 만날 수 있다.

지역의 결은 어떨까? 거칠고 투박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결이 있고, 섬세하고 감미로워 편안한 결이 있다. 거친데 눈길과 손길이 가는 결이 있고, 부드러운데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결도 있다. 통영의 결은 어떨까?

통영은 세 가지 결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의 결, 역사의 결, 문화의 결. 아마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각각의 결에 어울리는 색깔은 무엇일까? 통영 바다의 결은 누가 뭐래도 파랑이다. 짙푸른 바다, 쪽빛 바다. 코발트빛 바다, 에메랄드빛 바다, 산호빛 바다, 통영의 바다는 파랑이다. 생명, 창조, 소통, 이동, 수렴의 빛깔이다.

통영 역사의 결은 붉은색이다.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피가 끓어오르고, 때로는 아프다. 이순신 장군의 마음도 붉은색이었고, 격군과 사수의 손도 붉은색이었고, 백성들의 눈도 붉은색이었다. 제승당을 에워싼 솔숲도 붉은색이다. 따뜻함, 안온, 열정, 발산의 빛깔이다.

통영 문화의 결은 흰색이다. 흰색은 모든 것을 품은 색이다. 파랑과 빨강과 노랑 삼원색의 빛이 합쳐지면 흰색이 된다. 통영의 바다와 역사와 삶이 어우러지면 흰색이다. 통합, 근본, 변화, 관용, 무한의 빛깔이다.

원시시대 인간이 맨 처음 발견한 색도 흰색이었다. 흰 빛이 있어 삶이 있었다. 세상 만물을 두루 비추며, 온기를 전해주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는 빛은 흰색이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흰색을 그리도 좋아했나 보다. 흰색 옷을 즐겨 입으며, 스스로 세상의 근본이 되어(재세이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홍익인간). 함께 하는 이의 옷을 보며 꿈을 잃지 않으려 했다.

천지인 삼재가 공존하며 두루 순환하고 회통하는 세상처럼, 파란 바다와 붉은 역사와 하얀 문화가 어우러지는 통영. 발산하는 바다와 수렴하는 역사와 발산과 수렴을 무한반복 하는 문화. 들끓는 생명력으로 창조하는 파란 바다와, 삶을 따뜻하고 안온하게 보살피며 때로는 뜨겁게 달구는 붉은 역사와, 관용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무한 변주를 잉태하는 하얀 문화의 힘이 순환하고 회통하는 통영.

통영의 결이 참 곱다.

저자 주. 사진은 조탁 기법으로 빚은 김재신 화가의 작품 "동피랑 이야기"입니다. 작품 사용을 허락해주신 김재신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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