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메인박스 칼럼
정해룡 시인의 날마다 한 생각 - 원문을 지나며

고성에서 14번 국도를 통해 통영으로 가자면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가 있다. 바로 원문(轅門)이다. 원문이란 통제영 당시 군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육로로 통제영에 들어가기 위해서 역시 원문을 통과해야만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원문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 할 것이다.

예전 원문에 검문소가 있어 군경(軍警)이 오고가는 차량들을 무시로 검문하면서 탑승객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신분증의 사진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를 했다. 검문 중에 승객의 인상이 좋지 않거나 태도가 불량하면 더러 곤욕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 고개를 지날 때마다 박경리 소설의 어느 한 구절을 떠올린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타관의 영락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 놓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은 통영에 와서 양반행세를 해봤자 별 실속이 없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일 게다”(《김약국의 딸들》 ‘통영’) 소설에 나오는 죽림고개란 원문을 가리킬 것이다.

나는 또 원문고개를 지나칠 때마다 원문고개 아래에 “通政大夫行咸安郡守前別餉使吳公宖黙事蹟碑(통정대부행함안군수전별향사오공횡묵사적비)”란 선정비가 남아 있는, 조선시대 마지막 청백리로 살다간 고성 부사 오횡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횡묵은 함안 군수였다. 1893년 1월 29일 함안에서 고성부사로 발령을 받아 2월28일 고성에 부임한 후 3월2일 통제사에게 부임신고를 하려고 고성을 떠나 원문고개를 넘고 있었다. 마악 원문에 이르렀을 때였다. 원문을 중심으로 10리 주변의 6개 마을 대표(여섯 동네의 우두머리 백성은 이병교(李炳敎), 위계도(魏桂道), 이성교(李聖敎), 김낙귀(金洛龜), 이교(李敎), 공성로(孔聖魯), 정인숙(鄭仁淑), 송재형(宋載亨), 서상준(徐相俊), 김석찬(金碩贊), 박귀철(朴貴鐵), 김왕석(金旺碩) 등) 20여 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횡묵을 보고 길을 막으며 반갑게 맞았다.

그 이유는 병술년(丙戌年1886)에 대 기근이 들어 들판에서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고 시체 썩는 악취가 진동했을 때 오횡묵이 고종의 특명에 의해 별향사(別餉使)로 파견 되어 통제영의 백성들을 구휼하여주었기에 그 은혜를 기리고자 술과 안주 등의 음식을 준비해 영접코자 함이었다.

오횡묵이 통제영의 백성들을 마치 자신의 피붙인 양 얼마나 헌신적인 애민정신으로 거두어 보살펴 주었던지 그들은 오횡묵을 자비로운 하늘에 비유했고 살아있는 부처로 여겼으며 그 은혜를 살과 뼈에 새기듯 비석에 새겨 받들고 보호해 오다가 오횡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감격에 겨워 너나없이 한달음에 달려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오횡묵이었으니 그가 고성부사로 재임하면서 베푼 선정(善政)은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가리키는 그대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쓴 《고성총쇄록》을 읽어보면 고성이 얼마나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인지를 알 수 있는 이런 구절도 있다. “전에 함안에 있을 때 매양 영남에서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이 함안이라 하였는데, 이 고을에 비하면 함안은 오히려 누워서 다스린 고을이었다. 관리들은 마을에 나가면 침범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대저 바닷가의 풍속이 의례 사납고 거칠어서 그 마음대로 포학한 짓을 하는 것이 보통 고을보다 더하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러함에도 그는 틈만 나면 아전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고성의 구석구석, 곰탁곰탁을 직접 방문하여 민초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목도하고 이를 시정하였으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상부에 지체 없이 보고하여 해결코자 노력했다. 그는 모내기철이면 현장에 나가 격의 없이 농부들과 어울려 독려하고 자신이 지닌 돈을 농부들에게 고루고루 나누어 주는 등 권농에 힘썼다. 고성의 북삼면(회현,구만,마암면)에서 전임 사또들로부터 누적되어 온 적폐 때문에 고성민란이 일어났을 때 오횡묵의 처신에 감복한 북삼면 주민들이 더 이상 사건을 확대하지 않고 오횡묵의 처분에 따랐다. 당시 창궐했던 동학도들이 고성에 쳐들어오려고 하여도 오횡묵이 워낙 청렴하였기에 흠잡을 수 없으므로 그들이 오히려 오횡묵에게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가라며 종용할 지경이었다.

오횡묵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원문고개를 지날 때마다 오횡묵의 행적과 선정을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오늘날 고성군수와 통영시장을 오횡묵과 대비해 보게 되는 것이다. 고성군수나 통영시장은 대 선배격인 오횡묵이 고성부사로 재직하면서 남긴 행정일기 《고성총쇄록》을 가까이 두고 한 번 읽어나 보았는지, 읽어 보았다면 오횡묵을 닮아서 부단히 민초들의 어려움을 찾아 해결하려고 밤낮으로 노력하다 행여 건강이나 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다가 올 군수‧ 시장의 선거에서 재선을 의식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누가 내편이고 누가 내편이 아니지를 따져 내편만 편애하는 편 가르기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나 않은지를.

 

정해룡 시민기자  hannews@chol.com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해룡 시민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