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한(시인•문학평론가)

차영한(시인, 문학평론가)

늘 편견 된 질문도 무의식의 본능에 의해 지워지면서 다음에 오는 질문에서 느낌의 유혹은 더 무서운 욕망의 팔을 뻗게 됩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실재는 사막으로의 환대”말입니다. 말하자면 무의식적 환상이 창조하는 생산성의 뒤에서 의식적 환상은 음침한 도시처럼 어떤 분위기를 모면하는 깨달음으로 스스로 보려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늪이 되는 거울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리의 독수리가 삼나무 잎을 깃털 속에 넣는’ 어떤 집중력으로, 다시 날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의식의 변화입니다. 의식이란 ‘선택적 주의집중’ 또는 ‘지각적 자각 상태’라고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이 정의했듯이 외부 또는 내부에서 반복된 경험의 힘에서 작동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로 인식의 동기가 되는 무의식적 환상의 날갯짓입니다. 불안에서 긴장순간이 제공하는 의식은 무의식적 쾌감으로 전이되어 오인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변화를 과감히 시도해야 살 수 있듯이 말입니다. 마치 ‘10분 간격으로 태양이 폭발’하는 것처럼 끝없이 움직이며 아름다운 비밀을 극지 점에서 탐구할 때 번쩍하는 섬광은 나의 열정으로 불타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직접 이집트의 예술탐방에서 ‘룩소르’신전 앞을 걷다가 그날의 퍼즐을 풀지 못해, 또 다른 내가 무모하게 도전하려던 땀방울이 사막 속으로 흡인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비명소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나의 꿈이 비상하려던 몸부림을 잊지 못합니다. 다시 날아오르는 어떤 싱싱한 분노가 그때의 억압을 토해내는 마그마의 열광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최초로 탄생하는 눈알을 보던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찾아 헤매던 나의 눈알을 제일 먼저 들고 뛰어오던 아프리카의 한 여인처럼 흰 창이 많은 눈매가 이상야릇하게 이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최초의 매혹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밤과 낮의 뚜렷한 구분이 강렬하게 빛났고, 그 빛을 따라 움직이는 나의 걸음은 사하라 사막의 일몰을 볼 때도 꿈의 배꼽처럼 새카만 점으로 꿈틀거렸습니다. 새로운 눈동자가 새로운 질문으로 나를 엄습해오는 경이로움은 현란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꿈을 안고 살아남아야 하는 삶의 섭생만이 나를 지금까지 모험의 세계로 내던져 왔던 것 같습니다. 오랜 종교적 전통과 같은 낡은 관념은 새로운 내 영혼의 불빛과 대결하여 나를 더 멀리 볼 수 있는 빛을 탄생시키고 있었습니다. 앤터니 이스트호프의 글처럼 “꿈은 하나의 생각이 하나의 경험으로 변환 된다”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의 무의식적 환상은 철학자들의 상징성까지 정복하게 될 저 너머의 세계로 갈 것이지만, 아무도 나를 안내 할 자는 없습니다. 오직 나 자신뿐입니다. 그것은 내가 몸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한, 별들은 내 뇌파 속의 이데아와 속삭일 것입니다. 나의 아이돌라를 넘나드는 정령처럼 상상력들이 절묘하게 비행하여 이제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로 가시화될 날만 기다립니다.

날아다니는 나의 컴퓨터들은 페로몬의 향기로 타신 할 것이며, 빛의 충전으로 우주의 핏줄을 타고 비행할 것입니다. 때로는 옛 둥지를 찾듯 잉카나 마야문명의 미스터리를 찾아 무전여행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Paul Hogan의 말처럼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욕동은 사실상 새로운 신(神)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만의 탑욕과 절망의 폐허를 지나 제국의 무덤 같은 곳을 통과하는 등 0과 1의 디지털이 만들어 내는 매트릭스, 그리고 빛과 빛 사이의 왕래가 단축될 것입니다. 화염의 늪에서 서식하는 파충류의 공격을 벗어나 우주를 지배하는 가장 안전한 둥지를 찾을 것입니다. 끈적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순식간에 지울 것입니다. 성장기간은 짧아지고 생명은 상대적으로 연장되는 시대는 자연주의적인 사다리개념이 아니라 필연적인 환원주의로, 내가 나를 밖으로 날게 할 것입니다.

비로소 뒤처리하는 의식적 환상이 나를 인도할 것입니다. 잊혀 지지 않는 신전, 거울단계의 동일성에서 벗어나 의식적 환상이 ‘하늘그림 초원’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죽음의 회랑’ 같은 공상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도시‘u시티’가 도래할겁니다.

역시 이스트호프가 말한 것처럼 “환상은 관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나 서사로 바꿔 꿈을 통해 표현”하는 등 소망충족을 느끼게 될 날은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판타스마의 날개를 달고 높이 나는 날은 우주택시가 왕래하는 날이 확신되었음과 같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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