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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김상옥 시비(詩碑)를 만나다
  • 김보한 시민기자·시인
  • 승인 2020.09.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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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김상옥 선생은 2004년 10월 31일(84세)에 안암동 고려대병원에서 타계하셨다. 빈소는 서울 삼성병원에 마련되었다. 빈소에서 나는 이틀을 꼬박 울었다. 첫날 저녁 노중석 시조시인 발의로 초정선생 시비를 건립하자는 제의가 잠깐 있었다. 자금은 초정 선생께서 생전에 관련된 2,500만원으로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다수가 남망산공원에 설립을 제의했고 선생의 생전 유언대로 하자는데 동의하였다. 제반 통영의 추진사항은 필자가 맡기로 했다. 11월 3일 판교공원묘원의 사모님 곁에 안장식은 거행되었고 그때도 줄곧 울었다. 필자는 곧바로 '한산신문'에 조시를 써서 발표하고 이어서 남망산공원에 선생의 시비 건립을 위한 홍보의 글이 실리게 되었다.

얼마 후, 초정 선생 사위(김성익, 인하대 초빙교수 역임)와 딸(김훈정)(이하 시비건립 추진측을 ’추진 측‘이라고 한다)께서 통영을 방문하여, 한 차례 만남의 기회를 가지고 시비 건립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 이후 전화상으로 ‘추진 측’의 노력으로 도비 5,000만원을 배정받아, 시비 건립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이때 필자가 2,500만원을 합하자는 제의를 하였으나, ‘추진 측’과 노중석 시조시인과의 의견조율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남망산 시비 건립 건은 먼저 필요충분조건으로 통영시 문학·문화단체의 협의가 이루어져야만 된다는데 있었다. 승인은 필자가 맡았는데 이때까지는 순조로웠다.

이 승인자료를 지참하고 ‘추진 측’(사위)과 김재승 사학자(작고, 한국해양대학교 겸임교수 역임)와 필자가 진의장 당시 시장님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고, 통영시에서 이에 동참하는 계기로 시비 6,000만원을 상정하기로 매듭을 지었다. 시의회의 승인은 3,000만원으로 확정되었다. 총 사업비 8.000만원의 자금이 모아진 셈이었다.

이 이후의 추진은 ‘추진 측’에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추진 측’의 의욕에 반해 통영시는 이를 수용함에 있어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어느 날 김재승 사학자가 필자의 집으로 찾아와 시비건립 제1안 ‘“시인의 뜰”-김상옥 봉선화 정원 조성 기획안-’을 두고 갔다. 장소에 관한 추진은 다시 필자가 맡게 되었다. 장소는 12곳이 지정되어 있었고 이곳은 공원법에 위반이 되어 불가하고, 또는 외국 유명 각각의 조각물 영역 밖에 선정 되어져야 한다는 조건 때문으로 난관에 처해 있었다. 현재의 자연공원법이나 해상국립공원법은 그 당시와는 판이한 법적 제약성을 완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간 제자리걸음으로 일관했음은 이해할 정도였다. 시비건립 제1안에 이어 제2안도 무산되고 제3안이 타결 되어 현재의 시비건립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근 2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을 때이다. 그간 7∼8차례 가량 담당부서와 의견조율은 있었고 담당계장도 3차례 부서이동이 된 때이다. 이 최종안(3안)도 추진 중에 통영시와 ‘추진 측’의 상반된 의견으로, 도비 및 시비를 모조리 반납한다는 극한점에 도달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통영시는 최초로 장소 선정을 협의했던 곳으로 자리를 고정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추진 측’과 릴레이 협상 끝에 마무리하게 되었다.

시비가 크레인으로 처음 남망산에 자리를 잡던 날, 시청 담당계장과 ‘추진 측’과 필자와 그리고 황양호 전 도의원이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 황양호 전 도의원은 ‘추진 측’에게 남망산공원에 시비건립한 공을 필자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간 실무진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며,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룰 수 없었음을 전한다. 이날 ‘추진 측’도 설치 후에서야 흐뭇하게 느끼진 않았지만 그나마 긍정적이었다. 2007년 3월 29일에서야 남망산공원에서 시비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시비(높이 1.9m× 길이 3,3m)와 시비주변에 석조시비 10개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으로 기억이 닿는다. 시청 담당자로부터 ‘초정(草丁) 시비’ 이전에 관해 의견을 전해왔다. 그때는 설치된 장소보다 바로 위쪽 너른 잔디밭으로 지정하였다. 초정 선생께서는 생전에 최정규 시인께 한 곳을 필자에게는 다른 한 곳을 선정하였는데, 이곳은 필자에게 지정한 가까운 곳(그 당시는 탁구장이 있던 곳 부근이다)이기도 했다. 필자는 담당자에게 ‘추진 측’의 연락처를 알려드렸다. 이후 별다른 기별이 없어 무산되었는가하고 무심하게 세월만 흘려보냈다.

일전에 엉겁결에 ‘초정 김상옥 시비’가 현재의 곳으로 이전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추진 측’에서 최종적으로 희망했던 곳 부근으로 여겨진다. 근 13년을 버텨와 이젠 널리 홍보가 되었는데, 알만한 이들은 수월하게 여기던 곳을 두고 새 둥지를 튼다고 한다. 아쉽지만 어쩌랴. 한산도에서 통영항을 아우르는 최상의 적지라는 것이다. 이곳의 장소는 약간 비탈진 곳으로 시비가 건립되기엔 우려도 없지는 않지만 어쩌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종전의 시비건립 장소가 눈에 선함을 나만의 생각일까. 문득 남망산 드는 입구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비가 뇌리에 떠올려졌다. 허구한 날을 협소한 길목 자리함에도 아랑곳없이 버텨온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올해는 초정 김상옥 선생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무쪼록 새 장소로 건립해 두었으니 대중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으면 싶다. 나아가 앞으로는 좌불안석하지 않고 무탈하여 각광받는 명소가 되길 소원한다. 이 자리를 빌려, 초정 김상옥 선생님과 사모님께 명복을 빌고 빈다.

김보한 시민기자·시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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