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동에서 서로 흘렀다가, 저녁에는 서에서 동으로 흘렀다. 남해 바다와 서해 바다는 다르지만, 물은 같은 물이었다. 흘러가면서 변할 뿐이었다. 서쪽으로 흘러가서 변한 아침 물이 달포 뒤엔 다른 물로 바뀌어 돌아왔다. 그렇다고 통영 바닷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통영의 물이기도 하고, 통영의 물이 아니기도 했다.

그렇게 흐르고, 섞이고, 변신하며 어울려 살았다. 법과 제도가 있고, 권력과 병영이 있고, 주소와 호폐가 있으니 구분은 지었지만, 물밑으로 흐르는 '그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통영과 한양을 구분 짓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따졌지만, 이쪽저쪽을 아우르는 '그것' 또는 '거시기'의 존재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대신 '너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통제사와 군인들만 드나든 것도 아니다. 팔도의 장인들이 흘러들었다. 돈 되는 곳에 기술자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한양의 궁궐과 양반가, 지방 세도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통영산'이라는 브랜드는 기술자들에게 최고의 로망이 되었다. 작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사농공상의 세상에 어깨 펴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가족을 굶기지 않고 부양할 수 있는 넉넉한 터전이었다.

눈썰미 좋고 힘센 어부들이 살맛나는 고장이었다. 물산이 풍부하니 거간꾼도 모여들었다. 비즈니스맨, 회계사, 금융업자, 물류 노동자, 상선과 화물선의 선원, 소매상과 도매상까지 밤낮으로 모여드니 통영은 물 반 사람 반이었다. 이 고장에서 통영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 시절 통영 사람들은 '통영 안 사람'과 '통영 밖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

내륙의 여느 큰 고을처럼 모두가 땅에 매여서 살아가면 수직의 구조가 중요하다. 땅을 가진 자와 땅에 매인 자, 큰 땅을 가진 자와 작은 땅을 가진 자 사이에 위계질서는 분명했다. 소수의 양반은 지배하고, 다수의 양민과 천민은 지배를 받았다. 그런 관계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신분과 돈과 권력의 경계는 쉬 허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통영은 달랐다. 경계는 불분명했고, 한 세대 안에, 짧게는 수년 안에 돈과 명예와 권력이, 신분이 뒤바뀌었다. 일명 기회의 땅이었다. 이런 '열린' 곳에서 '안' 사람과 '바깥' 사람을 따지는 건 소용없었다. 그래서 양반들은 원문성 밖에 갓을 벗어두고 들어왔다. 권위가 천대받을 위험을 예방하고, 크고 작은 기회를 잡기에 유리했다. '안' 사람과 '바깥' 사람의 경계가 없는 곳에서 스스로 '바깥' 사람임을 강조함으로써 진짜 '바깥' 사람으로 똥값 처리될 위험이 제일 무서웠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선진국'과 '선진 도시'는 모두 사람이 모이고, 섞이고, 흐르는 곳이었다. '안'과 '밖'을 구분 짓지 않고 더불어 살았다. 구분 짓는 순간 이익은 실종되고 손실은 커졌다. 반대로 사람이 모이고, 섞이고, 흐르게 하면 '선진'이 되었다. 그곳에는 당연히 돈과 권력도 모여들었다. 돈이 많은 곳에 사람이 모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고, 기회가 많은 곳에 돈이 몰렸다.

선진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들게 해야 한다. 통영 사람이 아닌 사람도 흘러들어 통영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하물며 통영에 살고 있고, 통영에서 살아갈 사람, 더 크게는 통영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영 사람이 아니라고 구분 짓고, 자르고, 내친다면 명품은 고사하고 후진 고장이 되기에 십상이다.

하루를 살아도 통영 사람이고, 통영 꿈만 꾸어도 통영 사람이다. 나는 통영 사람이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