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모자를 쓰고, 와이셔츠를 입었다. 한복도 갓도 부채도 없다.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와 운동화를 신었다. 리듬은 전통인지 최신인지 헷갈린다.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진다. 클럽에서 울려 퍼지는 힙합 같은 판소리에 어깨가 들썩인다. 떼창으로 따라 하는 청년들의 신들린 듯한 표정이 압권이다.

'조선의 힙'이라 불리는 이날치의 공연 모습이다. 판소리가 이렇게 중독성 강한지 미처 몰랐다. 익숙한 것이 낯설어서 오히려 편안하다. 익숙하기만 하거나, 낯설기만 하면 불편했을 것이다. 낡은 것이 바삭바삭하고, 묵은 것이 산뜻하다. 판소리꾼의 흥스런 어깨 춤사위를 너도나도 따라 한다. 북 대신 드럼이, 부채 대신 기타가 리듬을 타고 흥을 돋운다. 네 명의 젊은 소리꾼과 두 명의 베이스 주자, 한 명의 드러머가 저마다의 흥을 끌어올린다.

흥은 국내에서만 먹히는 게 아니다. 해외의 잠재적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만든 "Feel the rhythm of Korea"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 폭발이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한국적인 흥에 모두가 어깨를 들썩인다. 판소리패 이날치와 앰비귀어스 댄스 컴패니, 한국관광공사의 합작품이다. 전통에 무관심했던 청년들의 목소리가 드높다. "세금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판소리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는 청년들의 안부 인사말이 낯설다. "오늘도 1일 1범 하셨나요?" 동영상에서 들려오는 "범이 내려온다"는 가사는 중독성이 무척 강하다. 수궁가의 한 대목이 힙한 청년들에게 그야말로 "먹혀들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범이 내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귀에서 가시가 돋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친다. 마니아층을 넘어 팬덤으로 나아갈 지경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묶인 일상의 스트레스가 훅 날아가 버린다.

그날도, 다음날도 소년은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드리운 낚싯대는 출행의 방편일 뿐이었다. 왜 밤마다 집을 나서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만 가끔 있었다. 무얼 잡으러 가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바다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길이 통행증이었다.

소년을 처음 바다로 데려간 이는 아버지였다. "조용히 배 한가운데 앉아서 고기가 뛰는 소리와 다른 어부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다는 공명판 같았고, 하늘엔 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 앉아 있기를 즐겼다. 어린 나이였지만, 스스로 즐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바다는 팽팽했고, 별빛은 날카로워서 아팠다.

텅 빈 바구니를 지고 들어오는 소년을 향해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이 녀석아, 그리도 좋으냐?" 그때 한 소쿠리 별빛이 정갈한 마당에 쏟아졌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툭! 쏟아졌다. "아버지, 저는 꼭 바다 같은 음악을 할 거예요." 정지문을 나서던 어머니의 눈에 큼직한 왕별 하나가 마당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훗날 소년은 음악가가 되었고, 시인이 되었고, 소설가가 되었고,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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