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신밧드의 모험>을 보고서 '모험'을 꿈꾸며 자랐다. <타잔>에서는 원시림의 생명력을, <육백만 불의 사나이>에서는 첨단기술의 놀라움을, <은하철도 999>에서는 우주의 광활함을 느끼고, 상상하고, 감격했다.

신밧드는 페르시아어로 힌드바드, 인도의 바람이란 뜻이다. 인도양의 계절풍을 이용해 여행을 다녔던 바다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신밧드의 모험>은 인도양을 누비던 페르시아 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각색한 모험 이야기다.

계절풍은 대륙과 해양의 온도 차로 인해 부는 바람으로 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계절풍을 뜻하는 몬순(monsoon)이라는 영어 단어도 계절을 뜻하는 아랍어 마우심(mausim)에서 비롯되었다.

겨울에는 인도양 북동부에서 서쪽의 동아프리카 해안으로 건조하고 더운 북동 계절풍이 불고, 여름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이런 계절풍을 이용해 아랍과 페르시아의 상인과 뱃사람들은 인도와 동남아, 중국까지 무역 여행을 다녔다. 아랍의 문물과 동양의 문화가 어우러지며 인도양 세계를 구축했고, 이 물결이 지중해로 흘러들어 르네상스의 토대가 되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동쪽 사람들도 역방향으로 바다를 오갔다. 그렇게 바람 따라 물길 따라 인도양을 넘나드는 사람의 물결은 천 년 넘게 이어졌다. 중국 광저우가 주 목적지였던 아랍 상인들의 일부는 중국 연안을 따라 북동진했고, 푸젠성 천주나 장강의 하구 양주에도 거류지를 형성했다.

바로 이곳에 장보고의 신라방이 있었고, 동방의 신라 사람들은 서역의 아랍 사람들과 문물과 우정을 나누었다. 경주 괘릉의 무인석상은 페르시아 군인 모습으로 당시의 인적, 물적 교류가 고스란히 이 땅의 문화로 남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분에서 출토된 토용들도 서역인의 모습을 띤 것이 꽤 많다. 그렇게 아랍 사람의 삶은 서라벌에 뿌리내렸고, 처용의 설화를 낳았다. 서역 사람의 형상을 한 처용은 역신을 물리치고자 하는 신라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서역의 천일야화는 신라 땅으로 흘러들었고, 통영 바닷가 사람들도 이미 오래전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를 듣고 살았을 것이다. 당시의 항해술로도 6개월이면 서역의 이야기를 동방의 바닷가에서 들을 수 있었다.

풍문으로 이야기만 전해오지는 않았으리라. 인도양을 지나고 말라카 해협을 지나고 남지나해를 지나고 청해진에 당도한 서역의 배들이 마지막 항로를 따라 서라벌로 나아가면서 통영 앞바다를 지나쳤을 것이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통영 바다의 절경에 푹 빠졌을 것이고, 호기심 강한 몇은 분명 통영을 찾았을 것이다.

먼 훗날 통영 시인이 처용을 노래한 데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음 직하다. 서역에의 꿈은 아직 통영 사람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

저자 주. 김춘수의 시, <처용단장>에서 처용은 이미 통영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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