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고백

'통영 사랑' 시인인 척 했다
헌데 내내 속앓이를

미뤄 둔 숙제 땜에,
아직 전편을 정독 못하고 있다니
이번엔 기필코.. 선생님 죄송합니다

[시작(詩作)노트]

박경리 선생님은 생전에 명정골 동백꽃이 50번 피고 지는 세월 안에 고향을 방문, 어릴 적 뛰놀던 세병관 기둥을 잡고 회한의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1969년 6월부터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해 25년 만인 1994년에 완성,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사반세기에 걸쳐 세상 일과 단절하고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한 채 1부를 쓰던 중 암 선고를 받고 수술까지 받으면서, 3만1천200 장 원고, 5부 20권, 700명이 넘는 등장 인물로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긴 호흡을 자랑하는 본격 대하 장편 소설을 완성하였다.

"동학운동에서 광복까지의 파란 많은한국 근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한반도남단의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하여 진주, 통영, 경성과 만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전체를 무대 삼아 펼쳐진 작가의 상상력은 소설을 넘어 한민족의 방대한 역사기록으로 남았다"고 비평가들은 얘기 한다.

모든 삶에 내재한 서러움과 상대의 서러움을 아는 것에서 나오는 연민의 감정은 토지를 관통하는 주된 정서로 자리 잡았다. 토지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의 실상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절대 절명의 고독 속에서

오로지 "글기둥 하나 잡고 눈먼 말처럼 연자매 돌리며" 토지를 썼다고 회고한다. 그는 불행을 오히려 순도 높은 창조의 질료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토지는 25년간 아픔을 안으로 안으로 삭이면서, 고독과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거둔 위대한 전리품인 것이다. 처절한 고독 속에서 한(恨)의 근원을 캐내, 생명 사상을 잉태하는 크고도 넓은, 깊고도 따뜻한 모성(母性)의 장을 펼친 것이다.

"(...)
붓대 하나의 힘/붓대 하나의 자유/
붓대 하나의 생명이/청산을 밝히고/
홀로의 높으심으로/혼을 빚은 불멸의 자취가/ 영원의 문을 엽니다/
미물을 연민하고/인간을 연민하고/
자신을 연민하고/죽음조차 연민하시던 삶
(...)"
이란 김혜숙 시인('박경리 선생님 영전에')의 싯귀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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