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남면에 자리잡은 한 박신장. 일찌감치 생산 시즌에 돌입했다.

5개월여의 휴식기를 끝내고 다시 기지개를 킨 남해안 굴 생산업계가 본격적인 생산 시즌에 돌입한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생굴 초매식(수협 첫 경매)이 기점이다.

일부 박신장은 이미 가동을 시작한 가운데 초매식을 전후해 경남 남해안 박신장들이 일제히 출하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시즌, 대미수출 중단에다 내수소비 급감 등 잇따른 악재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에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유난히 컸지만 이번에도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발 방사능 공포가 수산물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우면서 애꿎은 국내산 수산물까지 덤터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생굴 역시, 시즌 초기 가격형성의 바로미터가 될 사전 출하 물량 유통단가가 평년 대비 20%가량 떨어지는 등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찮다.

반대로 이번 사태가 생굴 소비에는 오히려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굴의 영양학적 우수성이나 안전성이 이미 검증된 만큼 그동안 수산물을 꺼려온 소비자들의 기호가 굴 소비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통영 등 350여 박신장 시즌 채비 분주

 
국내 굴 생산어업인 대표단체인 굴수협(조합장 최정복)은 지난 8일 자체 간담회를 통해 오는 17일 '2014년산 햇굴 초매식'을 갖기로 최종 확정했다.

2011년부터 생굴 위판사업을 시작한 통영수협(조합장 서원열)도 같은 날 생굴 위판장을 개장한다.

연례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굴 초매식은 그해 생산된 생굴의 출하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자리다. 통영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굴 생산업계는 통상 초매식을 기점으로 이듬해 6월까지 8개월여의 긴 생산시즌을 보낸다.

경남 남해안 일원에 자리잡은 굴 박신장은 줄잡아 350여 곳. 50여 곳은 이미 지난달 말께 굴 까기에 나섰고 나머지 300여 곳도 초매식과 동시에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한다.

시즌 시작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박신여공 등 작업에 투입될 인력을 확보하고 생산 시설을 점검하는 등 막바지 채비가 한창이다.

용남면 소재 한 박신업주는 "이미 작업을 시작한 곳도 더러 있지만 우린 초매식 당일부터 작업할 예정이다. 몇 달 묵혔더니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다. 여공이 못해도 50명은 필요한데 지금 확보한 게 40여 명 남짓이다. 개시 전까진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매출↓…새 시즌 기대감↑

앞선 시즌, 못내 아쉬운 성정표에 만족해야 했던 지역 굴 생산업계는 다가 올 시즌에 어느 해 보다 큰 기대를 걸었다.

굴수협과 통영수협을 합친 2012-2013시즌 총 매출은 815억원 상당으로 전년 981억원에 비해 160억원이상, 20%가량 줄었다.

특히, 생산 시즌을 평소 보다 한 달가량 연장하고 물량을 200여 톤 이상 많이 생산하며 발버둥쳐 봤지만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실적 부진은 올해 초 시작된 극심한 내수부진 여파가 컸다. 12월 들어 때 이른 한파가 찾아오면서 굴 가격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 제철이지만 며칠째 계속된 영하권 추위에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었다.

여기에 지난해 5월 불거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한국산 패류 수입중단 조치로 인한 수출부진도 하나의 요인이 됐다.

시즌 종반, 생굴 소비를 이끌어야 할 수출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가뜩이나 재고가 적체된 생굴 시장에 공급과잉 현상이 한층 심화된 탓이다.

생굴 가격이 바닥을 치자, 5월 들어 일찌감치 시즌을 조기에 종료하는 박신장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그런데 소비 부진으로 시즌 출하를 마쳐야 할 재고가 넘쳐났다. 일부 박신장들이 수협에 위판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굴수협은 생굴 위판을 평년 보다 한 달여 가까이 연장했지만 부진을 만회하긴 역부족이었다.

방사능 공포, 악재냐? 호재냐?…가능성은 반반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등장, 기대는 점차 우려로 변했다.

일본발 방사능 공포였다. 일본 정부가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가 인근 바다로 유출된 사실을 2년이 넘도록 숨겨오다 최근에야 인정하면서 인접한 한국으로까지 번졌다.

한번 불붙은 불안 심리는 '일본산'에 대한 막연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특히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들어간 곳이 바다인 탓에 일본산 수산물을 향한 거부감이 심각한 수준이 됐다.

그런데 국내산 수산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품 안전성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일본산 국내산을 가리지 않고 바다에서 난 것들 전반에 기피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소비시장인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수산물 소비 감소세가 뚜렷한 가운데 안전성이 입증된 국내산 수산물까지 도매급으로 매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일주일 뒤면 출하를 시작해야 하는 굴 생산업계로선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우려가 현실이 될 공산이 높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생굴 위판을 시작한 고성수협의 경우, 하루 600여 상자(1상자 10kg)가 꾸준히 매물로 올라오고 있지만 평균 가격이 1상자 3만원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이는 4~5만원이던 평년에 비해 20%이상 떨어진 수치다.

한 박신업주는 "앞서도 다음에 잘해보자는 심정으로 한 달 정도 일찍 문을 닫았는데 이번엔 방사능이다 뭐다해서 또 불안, 불안하다. 일단은 잘 될 거라 보고 시작은 하겠지만, 장담은 못 하겠다"고 푸념했다.

이에 반해 방사능 공포가 예상 밖의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FDA가 식품 안전성을 보장하는 바다에서 생산되고 영양학적 우수성이 입증된 남해안 굴은 안전한 수산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대안으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굴수협 관계자는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긴 이르지만 걱정만큼 내심 기대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전반적인 수산물 침체 속에서 굴이 대체 식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며 "기대반, 우려반이지만 시작하는 시점에선 기대치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굴수협은 방사능 안전성 확보를 위해 초매식과 동시에 시즌 내내 수협 위판장을 통해 거래되는 매물 전량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