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일곱 순둥이 용석이(가명). 통영의 작은 섬, 사량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또래에 비해 왜소한 체구에 초라한 행색, 어눌한 말투, 굼뜨는 행동 탓에 용석이는 늘 외톨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와 자식을 돌보기엔 무언가 부족했던 아버지의 존재는 용석이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 요인이 됐다.

그저 남들이 다 가는 곳이기에 갈 나이가 됐기에 시작된 학교생활. 학교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외톨이 용석이는 즐거웠다.

하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더하기 빼기조차 용석이에겐 버거웠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학년이 오를수록 뒤쳐졌다. 결국 언제부턴가 혼자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뒀다.

여느 아이들과 달랐던 용석이를 학교는 '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특수학급을 꾸릴 여력이 없는 외딴 섬마을 학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었다.

그렇게 용석이는 친구와 선생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어느새 열여섯이 돼버린 용석이는 지난해 중학교를 졸업했다. 친구들은 고교 진학을 위해 육지로 떠나고 용석이는 홀로 섬에 남았다. 사량도에 고등학교가 없어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진 용석이는 섬을 떠돌았지만 주변인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배려는 없었다.

그러길 꼬박 1년 여. 사연을 접한 지역 장애인보호단체의 도움으로 용석이는 올해 특수학교인 통영잠포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2.

지적장애 2급의 태진이(가명). 출산과정에 발생한 불의의 의료사고에 태진이의 지능은 3살 아이 수준에 멈춰버렸다.

막내아들에게 붙여진 장애라는 꼬리표. 바라만 봐도 가슴시린 태진이를 아버지 태용(가명)씨는 있는 그대로 가슴에 품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편견, 장애에 대한 불편한 시선, 가슴 한 구석에 박히는 비수들을 묵묵히 참아낸 세월이 벌써 17년째다.

돌부처 같던 태용씨였지만 지난 9일 찾아간 국민연금공단에서 결국 언성을 높였다.

1년 만에 찾아온 장애등급 재판정 통보 탓이었다.

보통 재판정 주기는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정도다. 관련 법규상 명시된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게 태영씨의 설명이다.

태용씨는 "지적장애의 경우, 한달간 3차례에 걸쳐 전문 의료진의 진단을 받은 뒤 다시 기관 심사를 받아야 한다. 병원도 창원과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이 아니면 안된다.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에 시간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특히 태진이는 최근 간질 증상까지 보이는 탓에 병원 진료가 여의치 않은 상황. 이런 저런 불편을 하소여하러 공단을 찾았지만 담당 직원의 무성의하 태도가 못내 서운했다.

태용씨는 "오로지 행정 편의 위주다. 직원은 쉽게 '그냥 새로 진료받고 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당사자나 보호자 입장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런 불편과 현실적 한계 탓에 겨우 등급을 받고도 재판정 과정에서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통영시 인구의 5%가 장애인…관심과 배려 필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이 수립, 시행되고 있지만 주변인들의 무관심 속에 제도권에 들지 못한 채 겉도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의 한계와 절차는 장애로 고통 받는 이들을 두 번 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통영시에 따르면 관내 등록된 장애인 수는 지난 2006년 5,896명에서 꾸준히 늘어 2011년 현재 7,59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통영시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수치다.

15개 장애 유형 중 지체장애가 4,296명으로 가장 많고 시각장애 800명, 뇌병변 711명, 청각장애 668명, 지적장애도 499명이나 된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치는 장애등급 심사기관인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1~6등급의 판정을 받은 인원이다.

실제 장애가 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인원도 부지기수라는 게 지역 장애인보호단체의 설명이다.

(사)느티나무 경상남도장애인부모회 통영시지회(지회장 김철용, 이하 부모회)에 따르면 통영지역 섬마을과 육지 변두리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2~3명의 장애인이 자체 사례발굴을 통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앞서 소개된 용석이 역시, 부모회가 지난해 8월께 발굴해 낸 사례자다.

김철용 지회장은 "찜통 더위가 한창인 때에 용석이는 두꺼운 긴팔옷을 입고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있지만 자녀를 양육할 만한 사회성이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또래와 남달랐던 용석이를 행정기관과 지나온 학교에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인 조치는 없었다.

그는 "면사무소와 학교에서 관심 또는 보호 명단에 올려놨지만 그뿐이었다. 아이가 일반 학생들과 섞여 알아듣지도 못한는 수업을 받고 있는데도 부모 보살핌 없이 동네를 돌아다는데도 누구도 관심을 갖고 돌보려 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행정이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기관 명부에 올라있는 대상만 챙겨도 방치된 상당수 장애인들이 사회적 울타리에 들어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여의 도움 끝에 용석이가 받은 장애등급은 지적장애 2급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와 절차…장애등급 포기까지

어렵사리 제도권에 안착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으로 등록돼 장애인연금과 세제해택을 받는 이들도 일정 주기에 따라 장애 재판정을 받아야 연속적인 수혜가 가능해 진다.

현행 장애인보호법은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최초 장애등급 판정 이후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단위로 재판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종합병원 중 보건복지부장관이 별도로 지정한 3차 의료기관에서 장애에 대한 소견을 받아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넘기면 기관 심사를 거쳐 등급이 부여된다. 기관심사에만 한달이 걸린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재판정 여부나 주기에 대한 기준이 현실이 맞지 않는다며 수년째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좀처럼 반영되지 않고 있다.

특히, 외형적 이상을 통해 명확한 진단이 가능한 지체장애와 달리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뇌 병변장애 등 발달장애는 의료진의 주관적 판단 여지가 많은 탓에 재판정을 둘러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달장애는 신체적 발달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만 어느 순간 뇌와 정신의 발달이 정지된 장애를 의미한다. 의학적으로 정신지능이 70이하에서 멈춘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장애 정도에 따라 1~3급으로 나뉜다. 1급은 정신지능이 34이하, 2급은 34~49이하, 3급은 70이하다.

지적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뇌의 발달이 정지돼 개선의 여지가 없는데도 기관에선 천편일률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재판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철용 지회장 역시, 지적장애 1급의 아들이 있는 탓에 이런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그는 "비장애인이 교육받은 것의 50%를 기억한다면 발달장애아는 잘해야 1~3%미만일 정도로 학습능력이 떨어진다. 학습이 안되니 사회성도 떨어진다. 학습을 통해 버릇처럼 숙달이 되는 것이지 장애의 정도가 나아지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지회장은 "장애가족을 둔 식구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은 말 할 수 없이 크다.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는 더욱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정을 위해 치러야할 부담이 현재로선 너무 크다. 면제가 힘들다면 장애의 특성을 감안해 주기를 늘리는 게 합당하다"며 "오죽하면 이런저런 여건상 재판정을 못받겠다며 등급을 포기하는 부모들도 있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관계 기관은 "현행 법령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재판정에 대한 기준이 관계 법규에 정확히 명시돼 있다. 주기의 경우, 앞전 판정시 자문의사의 판단과 개별 장애 정도에 따라 미리 고지를 해 주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적장애 보호자들의 주장에 대해선 "지적장애는 의학적으로 고착된 장애가 아니다. 교육과 관리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크다"며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신 "현재 재판정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개정안이 지난달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불편이나 불만 사항들이 상당수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장애등급심사 의무재판정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장애등급판정기준'(보건복지부 고시) 개정안을 공포했다.

개정안은 장애등급과 관련해 3회 연속 동일 등급이 나와야 가능했던 재판정 예외 대상을 2회로 축소·완화하는 것으로 골자로 한다.

기존 관련법은 시장·군수·구청장은 등록된 장애인에 대해 주기적으로 장애등급을 재판정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장애등급 심사업무를 위탁받아 장애 유형별로 매 2년 또는 3년마다 계속해서 장애등급 재판정을 실시해 왔다.

예외적으로 ▲장애상태가 완전히 고착된 경우(예를 들어 신체의 일부 절단 등) ▲3회 연속(최초 장애인 등급판정+2회에 걸친 재판정) 장애등급을 판정한 결과 동일한 등급이 나오는 경우에 한해서 재판정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등급심사제도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최초 장애등급 판정+1회 재판정 시 재판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동일 등급 유지 조건도 삭제됐다.

덕분에 첫 번째 재판정시 장애상태의 호전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재판정 대상에서 바로 제외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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