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책 읽는 통영 - 정도선 (전 진주문고 팀장)

 

“끝없이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뒤쳐지지 않는다는 내 마음속의 불안은 사실 내가 교육 받아온 강박이었음을 깨닫는다.” -가족의 시골 中 -

집에 가만히 앉아 하루 중 한두 시간 남짓 들어오지 않는 햇살을 즐기고 있다가 문득 불안해진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다간 도태 되지 않을까”

다급한 마음에 책이라도 펼쳐본다. 머릿속에 넣진 못하고 눈으로만 읽는, 실소를 금치 못할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답답한 마음을 환기시키려 창문을 열어보지만 보이는 건 앞집 창문 뿐. 마음이 더욱 죄어 온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늘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좀처럼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한다.
더군다나 용케 그것들을 이겨내고 서울의 속도에 맞춰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넘어 자괴감까지 든다. 도시는 그렇게 나를 짓눌러만 갔다.

그러던 중 나는 끝내 이 게임을 버텨낼 자신이 없어 경남 산청의 시골마을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순조로웠다.

삶은 단순해졌으며, 하루 종일 집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가만히 누워있어도 좀처럼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발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대자연은 왜 이제야 내 품으로 들어왔냐며 가진 것들을 모조리 내 놓는 듯했다. 도시에서보다 가난해졌지만 가난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그간 삶을 위로 받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잠시. 아름다운 것들은 금방 익숙해져서 더 이상 보여 지지 않았고 때마침 찾아온 겨울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맹렬한 한기만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외로웠다. 봄이 되어 꽁꽁 얼었던 것들이 녹아들어갔지만 마음만은 녹지 않았다.

사고와 마음가짐은 서울에서와 다름이 없는데 터전만 바꾼다고 해서 삶이 나아질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엎치락뒤치락, 우린 계속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시골에서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만난 어느 가족의 귀촌일기. 서울에서 경북 안동으로 이주한 후 삼년 동안의 일기를 엮은 포토에세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과함이 없이 덤덤하게 일상을 나열한다.

굵직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없이도 계절의 순리대로, 시간의 흐름대로 경험한 일상 속에서 삶에 대한 철학과 애정이, 시골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저자의 외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은 글뿐만이 아니라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잘 찍은 사진은 찍는 이의 마음과 표정이 눈에 보이는 사진이라고 했던가.

300년된 고택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하고 밭을 일구고 공방까지 하는 쉴 새 없는 삶 속에서도 뭔가 고목같이 단단해 보이는 그녀.

내가 도시와 시골에서 느낀 불안에 대한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그녀처럼 단단하고 뿌리 깊은 고목이 되는 것. 물론 쉽진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삶, 지금의 나와 우리를 믿고 사랑하다보면 어느 샌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나니 지금 눈 앞, 겨울의 황량한 시골 풍경도 정감 있어 보인다.

* 책 읽는 도시 통영’ 캠페인의 필자로 참여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의미로 남해의봄날에서 출간한 도서 중 원하시는 책 두 권을 선물합니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