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정영만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80-1호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경남도문화재위원>

"서울 공연 중에 추용호 선생이 공방에서 쫒겨났다 소리를 들었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뉴스를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부리나케 통영으로 돌아왔다. 다들 집 가치를 운운했지만 난 그보다도 추 선생이 혹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쩌나. 그게 더 겁났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80-1호 남해안별신굿 보존협회 정영만 회장이 8일 하루 종일 추용호 장인을 지켰다.

하루에 겨우 쪽잠 1시간 30분 정도를 자는 추 장인의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살고자 하는 맘을 내려놓을까봐 그걸 자꾸 염려했다.

정 회장은 "솔직히 통영시가 우리 얼굴에 똥칠을 스스로 한 거다. 내가 먼저 통영을 떠나고 싶다. 이런 동네에 등을 붙이고 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예향 통영이라는 말과 400년 통제영 문화, 차라리 이런 말을 말던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겠노. 위정자들이야 시간 지나면 고향 떠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어차피 뼈를 묻어야 할 사람이 아닌가. 인간문화재를 묵살하는 동네가 통영인가. 누굴 위한 행정인가. 우리 시민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또 "통영시가 사람이 문화재지 집이 문화재인가 하고 하는데, 태생을 모르는 소리다. 이는 자기 어머니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우리 예인에게 악기와 옷이 연주의 필수라면 추 선생에게 이 집과 연장은 자기의 모태"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소반집과 그 속에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연장. 그리고 그 연장을 만드는 방법을 추 선생이 눈과 손으로 이어받은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500여 개의 연장과 추 선생의 눈썰미와 예능감, 그리고 이 공방이 있었기에 통영소반의 맥이 이어져 온 것이다. 이 공방은 통영소반의 살아있는 과학이다. 그 어떤 책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만약 통영시 논리대로 한다면 내가 인간문화재이지 4백년 넘게 이어받은 우리 무구와 의상, 심지어 소중히 소중히 다루는 무녀의 머리가채 역시 버려도 그만인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남해안별신굿의 문화재적 재산으로 인정받아 내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이다. 이런 것이 없었다면 나도 인간문화재 지정이 안된다. 그건 문화재청에 물어보면 알 것이다. 추 선생 역시 인간문화재 시험 칠 때 공방과 연장에 관한 점수가 분명히 있었다. 이 공방과 연장이 없었다면 추 선생은 인간문화재 지정에서 분명히 탈락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추 선생 고모할머니와 통영 출신 세계적 음악가인 윤이상 선생의 아버지는 부부였다. 추 선생 아버지 추웅동 장인(1912~1973)은 옆집에 살았던 고모부인 윤이상 선생 아버지로부터 소반 제작 기술을 배웠고, 1973년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왜 이 가치를 모르노. 윤이상 생가터와 함께 그 스토리를 살리면 얼마나 더 멋진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이 집 대들보 상량문에 무진년 4월 18일 보름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1868년이다. 벌써 그 이전에 초가가 있었고, 150년 전 기와로 보수했다는 얘기다. 이 건물이 추 선생 공방을 다 떠나도 하나의 근대문화유산이다. 통영시가 지금이라도 이 공방을 살렸으면 한다. 제발 제발 추용호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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