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이권형

"이 글은 통영에게, 또 나와 통영을 이어주는 고마운 공간 수다에게, 그리고 그 공간을 가꾸는 윤덕현 사장님과 통영의 친구들에게 건네는 감사와 우정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필사의 탐독 (정성일 씀, 바다출판사 펴냄)
"한국영화를 지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지할 것은 좋은 영화지 한국영화여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것이 영화를 사랑 하는 사람의 태도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정말 진심으로 하소연하건대 제가 영화를 보며 느낀 작은 결론 하나, 영화 많이 보지 마십시오. 대부분의 영화는 쓰레기입니다. 좋은 영화는 정말 적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세상을 살 시간은 아주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 세상의 즐거움을, 그 위대한 소설들을, 시를, 미술을, 음악을 즐기시고 난 다음 시간이 남거든 영화를 보시길 바랍니다. 영화는 고작 100년밖에 안 된 예술이기 때문에 그 예술이 수천 년의 전통을 가진 예술을 이긴다면 그것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럼에도 여러분이 정말 좋은 영화를 만난다면,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두 번 보십시오"

2004년 1월 저자 정성일이 '정은임의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에서 한 말이다. 책은 그해 8월 교통사고로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에 대한 애도의 글로 시작한다.

가장 재미있게 영화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를 잃은 슬픔이 느껴지는 글, 좀 더 정확하게는 나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는 슬픔이 느껴지는 글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제목처럼 필사적이고 집요한 쓰기의 향연이다. 그 앞에서 누군가는 손사래를 치고 또 누군가는 주눅들기도 한다. 단정적이고 선언적인 대목도 적지 않다. "고작 100년밖에 안 된 예술"을 통해 깊은 사유를 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 탓이기도 할 것이다. 뭐가 어쨌건 "수신자에게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힘껏 던진" 글의 묶음이다.

'글의 묶음'이라는 점이 독자 입장에서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쓰인 글을 모아놓은 형태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기호에 따라 기분에 따라 꺼내어 차근차근 읽다 보면 날카롭고 처절하기까지 한 그의 비평 활극에 자연스레 감화되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목차 중간에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축구 중계에 대한 통찰이 끼어있는 데 개인적으로 경탄했던 대목이다.

이 책이 다음에 소개할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와 짝패를 이룬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필사의 탐독'은 대체로 '한국영화'를 다룬다. 다음 소개할 책은 점차 나의 관심사가 피부에 닿는 '한국영화'에 대한 감각에서 '좋은영화'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정성일, 정우열 씀, 바다출판사 펴냄)
'필사의 탐독'과 마찬가지로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쓴 글을 모아놓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친절하게 큰 목차를 좌표, 감각, 배움 3개로 나누어뒀다는 것과 만화가 정우열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이다.

'필사의 탐독'을 읽는 것이 책에 배치된 '한국영화'의 지형을 파고드는 과정이라면, 이 책은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우정에 대한 길잡이의 느낌이 더 강하다. 나누어진 목차와 정우열의 만화 덕에 필사의 탐독보다 접근하기 편한 면이 있다.

나와 통영의 첫 인연은 2013년 3월 통영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이다. 2015년에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때 전에 없던 카페를 하나 소개받았다. 그곳 '수다'에는 주인장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커피향과 함께 한켠에는 영화지 '키노'가 진열되어 있었다. 키노로 말할 것 같으면 정성일이 편집장을 맡아 90년대 중후반 영화 담론을 이끌며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의 등대 역할을 한 비평지다.

키노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신나게 읽기 시작했다. 최근 사장님의 전언에 의하면 그렇게 즐겁게 키노를 읽는 손님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영화 좋아하시나 봐요" 그때 나는 상기된 목소리로 정확히 이렇게 물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단 한마디로,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우정" 책머리의 마지막 문장이다. 통영 프린지 페스티벌이 기획되지 않게 되었으니 어쩌면 다시 통영에는 음악가로서 다시 갈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내가 용기 내어 던진 질문이 나와 윤덕현 사장님 그리고 수다와 통영의 우정을 이어주고 있는 것 아닐까.

책머리를 지나 프롤로그 꼭지로 가면 '지구라는 행성에서 영화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관한 작은 가이드'라는 제목의 글이 배치되어있다. 책을 함께 작업한 '영화 친구'이자 만화가 '올드독' 정우열에 관한 글이다.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의 고독함과 그로 인해 용기 내어 자기를 드러내면서 시작되는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태도를 가슴에 안고 같은 외로운 심정으로 초조하게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구 위의 영화 친구 중 한 사람이라는 것"

정성일은 정우열과 함께 작업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문장은 내가 수다에서, 통영에서 공연하고 관객을 만나는 것이 특별해지는 이유도 함께 대변한다. 그곳에서 신나게 키노를 읽었고, 상기된 목소리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레버넌트> 롱테이크 씬에 대한 감탄사를 들었고,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에 대해 처음으로 터놓고 이야기 하며 술잔을 부딪치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멀리서, 서로의 공존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위로하면서 영화를 보고 또 볼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윤덕현 사장님에게 수다에게 통영에게 더 많은 영화 친구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통영과 수다와의 우정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그런 심정으로 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 인천 출신 청년 음악인 이권형씨는 지난 2013년 통영프린지에 참가하며 통영과 첫 만남을 가진 뒤 연대도 에코콘서트, 2015 통영프린지, 강구안 수다 공연 등 통영에서 다섯 차례나 공연을 가진 "인천의 통영마니아"이다. 올해는 공연 활동과 함께 정규 1집 앨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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