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자 문학교수 박진임 엮음…423페이지 운초 박재두 예술세계 총망라
한국시조시인협회 지난 19일 출간 기념 박재두 시조세계 재조명 세미나

때아닌 구름 - 이차돈에게

 

천 년
다시 천 년
살도 뼈도 삭았으리

그날
하얀 무지개
믿음의 서릿발은

때아닌
구름을 몰아
안마당에 부린다.

언제던가
살갗 밑에
굳어 앉은 날개

새로 돋으려나
가려운 겨드랑이

떨그럭
끊어진 하늘
징검다리 놓는 구름

1967년 박재두 시인.

운초 박재두(1936-2004). 자상하고 부드러운 언어를 구사, 자연스럽고 편안한 서정 시조시인으로 정직함의 대명사였다.

2018 선생 사후 14년. 아버지를 꼭 닮은 딸 박진임 평택대 교수가 운초 박재두 시인의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박재두 시전집 '꽃 그 달변의 유혹'을 펴냈다.

이 전집의 제목 '꽃 그 달변의 유혹'(도서출판 고요아침)은 운초 선생이 1997년 율동인 시조 선집을 손수 편집 발간할 당시 당신 대표작  모음의 제목으로 붙인 것을 박진임 교수가 그대로 따왔다.

제목 아래 "살아있는 동안 내 시는 미완성이리"라는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던 그 치열한 창작의 자세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운초 박재두 선생은 1936년 10월 14일 통영군 사량면 양지리 가난한 섬 농부의 2남 4년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의 형편으로 쉽게 학업을 할 수가 없었지만 고학이나 다름없는 생활로 사량면 양지초교 제1회 입학생이다. 이후 통영중·통영수산고를 거치고 부산사대 미술과를 졸업했다.

1957년 통영수산고 재학시 동인지 '심해선' 활동으로 이미 문학활동에 심취했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인 196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조 '목련'이 당선되고, 그해 서벌, 김교한, 김춘랑, 조오현 등과 시조동인 '律(율)'을 결성해 창간호를 냈다.

66년 한산중학, 67년 통영중에 이어 이듬해부터 5년간 통영여중고에서 교편을 잡다가 72년 진해중으로 옮겨 12년간의 공립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1972년 진주에 신설된 삼현여중에 부임했다.

1975년 시조집 '유운연화문'(流雲蓮花文)을 내고, 이 시조집으로 제15회 경상남도 문화상을 받았다. 1976년 한국문협 진주지부장에 선출되고, 이듬해 부정기 문예지 '문예정신'을 창간해 주간을 맡아 12년간 발간을 했다. 1983년 진주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6년간 매진했다.

끝없는 창작열로 1984년 제5회 정운시조문학상, 제4회 성파시조문학상을 받았고, 1989년에는 시조 '바람없는 날'로 제11회 가람시조문학상을, 1992년에는 '때 아닌 구름'으로 제1회 이호우 문학상을 받았다.

1977년 삼현여고를 거쳐 1988년 삼현여중 교장으로 재직 중 뇌출혈로 쓰러져 6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2004년 1월 12일 생을 마감했다. 2016년 박재두 시비 '별이 있어서'가 그의 고향 산양섬 능양마을에 건립, 한국 시조문단이 총 출동해 기념했다.

운초는 평생 동안 1975년 '유운연화문' 단 한권의 시집만을 상재했다. 그래서 1975년 이후의 발표작들은 책으로 묶이지 못했고, 또 이미 발표한 작품도 수없이 수정, 동일한 작품을 두고도 다양한 판본의 텍스트가 존재했다.

박진임 교수는 이 모든 자료를 이 책에 다 담았다. 심지어 유운연화문 시절 버렸던 초기 습작들도 실었다. 1950-60년대 문화 지형도를 파악하는 재료로 남기고 싶은 이유였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1964년 등단부터 1975년 '유운연화문' 발간 전까지의 발표작들을 엮은 것이다. 1950년대 고교시절 동인지 '심해선'에 실었던 습작도 포함시키고, 운초 선생이 스스로 불만스러워했던 미수록 작품도 수록했다.

동인지 '율'(왼쪽에서 두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책의 표지화가 박재두 시인의 그림).


'시조문학'과 '율' 동인지 등에 수록된 작품들도 발표 당시의 철자법을 그대로 살렸다. 수정된 부분은 작품의 변모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그 과정을 모두 수록, 운초의 흔적을 최대한 담아냈다.

제2부는 '유운연화문'에 수록된 작품들 중 제1부와 겹치지 않는 34편과 '이런 역사 Ⅲ, Ⅳ'로 구성됐다. 그리고 전집의 마지막에 '유운연화문' 수록작 전부의 목록을 첨부했다. 이는 절판된 지 오래돼 남아있는 것이 적은 까닭에 시집의 규모와 구성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제3부는 '유운연화문' 간행 이후 발표한 작품들 중 1986년까지의 발표작들을, 제4부는 1987-1997년의 발표작을 모아 묶었다. 

별도로 기타의 행사시나 축시, 교가 등도 모아 5부로 묶었고, 끝에는 작품들의 발표시기와 지면 등을 도표로 만들어 후대 연구시에 참고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운초 선생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그린 그림들과 잡지의 표지화 등도 수록, 박재두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한다.

이 책의 편자인 박진임 교수는 "2004년 선친이 별세하고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2004년 시작한 원고 수합작업이 2006년 한 번 중단됐다. 2015년 거의 마무리에 이르고도 또 한번 중단해야 했다. 그 시간대를 통과한 편자의 삶이 이 책의 갈피갈피에 스며있다. 이 책은 선친의 시를 묶은 것이면서 동시에 필자의 삶의 흔적을 모은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어쩌면 편자 자신일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 "이 책은 한국 현대 시조단을 가꾸어 오신 모든 분들의 공으로 이뤄진 책이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던 선친의 그 치열한 창작의 자세를 기억하면서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이렇게 엮어 부끄럽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이 책의 편자 박진임은 1964년 통영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 영문학과에서 학사 학위, 오리건 주립대학 비교문학과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 박사후 과정 연구원, 스탠포드 대학교 풀브라이트 강의 교수, 남가주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2004년 '문학사상'으로 평론계에 등단했고, 현재 평택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편 (사)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장 이지엽)는책 발간을 기념 지난 19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박재두 선생 시조세계 조명 세미나'를 개최했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경남문인협회, 경남시조시인협회, 통영문협이 공동 후원한 이 세미나는 '박재두 시조문학과 율동인'이라는 주제로 전국 문인 200여 명이 참석, 열띤 토론을 펼쳤다.

부산시조시인협의회의 추모 퍼포먼스로 시작된 이번 세미나는 강희근 경상대 명예교수와 유성호 한양대 교수, 편자인 박진임 평택대 교수가 발제를 맡고, 김남규, 석성환, 유순덕씨가 토론자로 나섰다.

강희근 교수는 "같은 진주에 살면서 동지적 관계의 문우였는데, 일찍 작고해 빚진 느낌도 있었다. 이번 전집이 발간, 그의 작품 세계를 정독할 기회가 주어져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고, '박재두 시조,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발표했다.

유성호 교수는 '박재두 시조의 역사와 자연'을 주제로, 엮은이이자 딸인 박진임 교수는 '박재두 시조와 율동인'에 대한 주제 발표로 운초 선생의 시조세계를 재조명, 큰 박수를 받았다.

1992년 이호우시조상 수상(초정 김상옥 선생과 함께).
시화 '모란'과 '연꽃' (습작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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