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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임진왜란 참전기, 이순신의 사실성과 국제해전 객관성 입증 중요 기록”일본인이 본 임진왜란 ‘烈祖垂統篇’ 연구하는 박형균 통영사연구회장

사단법인 통영사연구회 박형균 회장은 임진왜란의 기록을 조선의 입장 뿐 아니라 적국인 일본의 입장, 그리고 영국 해군 제독의 눈으로 본 제3자적 시각 등 다각도로 연구하기로 유명하다.

통영사연구 제2집 국역 조선해전(원전명 The Influence of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일본정치사와 해양의 영향)과 통영사연구 제5집 국역 조선 이순신전(원전명 文祿征韓 水使始末 朝鮮 李舜臣傳) 역시 이런 작업으로 발행, 이미 미국 유수대학에서 소장하고 싶다는 공문이 쇄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1892년 일본인 측량기사가 저술한 '조선 이순신전'은 (사)통영사연구회에 의해 2006년 통영시비지원사업으로 국역됐다.

통영사연구 제2집 조선해전으로 국역된 이 책은 일본의 정치사에 미친 해양의 영향(The Influence of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이 원전이다.

국역본은 1921년 영국해군 제독이었던 G. A Ballard가 저술하고 뉴욕 E. Putton & Co사가 발행한 일본의 정치사에 미친 해양의 영향(The Influence of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책 중 제2장 16세기의 조선전쟁만을 발췌 번역,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14년간 이순신과 직접 대결한 와키사카(脇坂) 가문의 열조수통편(熱祖垂統篇)을 연구, 번역작업이 한창이다. 그 기록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박형균 회장에게 직접 들어본다.

 

열조수통편(熱祖垂統篇)이라는 책은 과연 어떤 기록물인가.

와키사카(脇坂) 가문의 가보(家譜:家記) 중의 하나이다. 열조(烈祖)는 위업을 이룬 선조이고, 수통(垂統)은 대업의 기초를 닦아 자손에게 이어받게 함을 뜻한다. 그래서 기사의 대부분은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무장으로서의 일대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제19-25장은 그가 조선에 출진하여 치른 임진왜란 참전기로 일본의 안목에서 바라보는 임진왜란의 기록이라 전사연구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일본 전기(戰記)에 흔히 볼 수 있는 허구나 과장이 없고 특히 한산해전에서는 패하였으나 와키사카 야스하루의 무장으로서의 인품마저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의 여러 기록의 사실성을 더욱 입증해 줄 뿐 아니라 국제해전으로서의 객관성을 받침해 주는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발간년도를 알 수 있는가.

책의 발간년도는 알 수 없으나 일본 연호 관정 십년 무오 십이월 십팔일(寬政 十年 戊午 十二月 十八日)에 손자 협판안비(脇坂安斐:와키사카 야스히)가 책의 서문을 썼으므로 1798년을 발행년도로 유추할 수 밖에 없다.

 

발굴 계기와 시점은.

이 도서는 와키사카 야스하루의 고향인 타쓰노(龍野)의 주도(州都:도청소재지)인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姬路市) 시립도서관의 소장(도서 번호:#110092780) 도서이다.

2004년 6월 타쓰노 향토사담회와 학술연구교류에 관하여 협의차 도일했을 때 히메지시립도서관을 방문하여 일본의 해군사에 관한 고자료를 열람하던 중, 협판가보(脇坂家譜)·수군지(水軍志)·조선역수군사(朝鮮役水軍史:1942년 간행)와 함께 이 열조수통집을 발견하여 일본인 지인을 통하여 복사하였다.

내용은 협판가보와 거의 줄기가 같으나 전쟁에 관한 기록, 특히 일본군이 쓴 해전기록으로는 더 이상 상세한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리마 세이호(有馬成甫)가 1942년 그의 저서 ‘조선역수군사(朝鮮役水軍史)’에서 최초로 이순신의 장계와 협판가기(脇坂家記)를 대비, 상응시켜 국제해전으로서의 한산해전의 전황을 재구성한 바 있는데, 이때 왜 열조수통편은 소개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안했는지가 실로 궁금하다.

 

해독 및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이 책의 내용이 난해한 일본의 소오로붕(候文:고어체)으로 씌여 있다. 그래서 일본의 지인(明神 證: 전 야마쿠치대학 교수)을 통하여 1단계로 일본의 현대문으로 고치고, 2단계로 난해한 시대용어 해석을 다시 의뢰하는 등, 서두르지 않고 전문의 대의를 이해하는데,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시 말하면 한산해전은 국제해전이므로 우리가 교전 상대가 바라본 해전기록은 이순신 해전사를 세계화 하는데, 더 없이 중요하므로, 국역하여 연구자료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래서 과분하게 번역에 착수했으나 도처에 암초(暗礁)라 군데 군데 전문인의 자문을 구하다 보니 얼거리를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의 기록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순신의 장계는 승자의 기록이고, 열조수통편은 패한 자의 기록이지만 나무에 비한다면 이두 기록의 둥치는 톱니바퀴의 양날처럼 일치한다. 다만 일본의 기록은 패전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둥치에 가지와 잎을 달고 있다. 그래서 해전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정해(精解)를 거듭하여 번역서 발간을 고려하고 있으나 그 시기는 미정이다.

김영화 기자  dal3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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