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한 시인, 시민기자

《통영시지편찬위원회》는 지난 6월 21일 『통영시지』 증보판을 발간했다. 발행면수는 총 3,550쪽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20년 만에 증보판이 발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중에서 필자는 제10편 제1장 ‘문학’부문 읽기를 통해서 통영 근대문학사의 진면목을 다시 더듬어보기로 한다.

먼저 필자는 2003년경부터 통영의 근·현대문학인 발굴에 본격적으로 심혈을 기울여왔다. 16년차에 이른다. 그간 탁상수의 발자취와 시세계 고찰󰡕[김보한, 풍해문화재단(이사장:이철성) 연구총서 제 5집, 2015.3.30.]과 장응두의 인생과 시세계 연구[김보한, 시계학술신서 제 1집, 2016.7.25.]의 연구서를 발간했다. 이 외에도 「이중섭 통영 풍경화 연구」와 통영작고 유명문학인 및 예술인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통영시지』 증보판 문학부분 중에 근대 유명 통영문학인 늘샘 탁상수, 백조 김남주, 황상 고두동, 하보 장응두 등의 조명은 큰 결실로 보인다.

그 중에서 백주 김남주의 초기 시 발표는 번역시인데 창작시로 보일 수 있다는 점과 현상일등(懸賞一等) 당선소설(當選小說) 「小作人 金첨지」(1927년)가 단순 소설 발표로 게재된 것이나, 이 분들 외에도 참새지 동인들의 구체적인 활동사항, 그리고 그 당시 통영거주 유명문인 등, 적지 않은 근대 문학인이 발굴되어져 있음에도 빠져 있다는 것은 아쉽다.

특히 백조(白鳥) 문학 동아리는 없었거나 있었다면 의미가 미미했다고 보는 게 맞다. “통영백조사에서 경영하려던 강습소 불허(동아일보 1924.3.2.)”로 보아 잠깐 명칭을 사용했음은 인식할 수 있다.

〈청마의 형 유치진의 「나의 수업시대」〉(동아일보, 1937년 7월 22일)에 의하면 토성회에서 「토성(土聲)」지와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데, 일부 동경유학생이 포함된 모임의 성격인 “토성회는 나의 고향의 우인과 선배로서 조직된 문학청년의 모임이었다.-(중략)-그때 멤버를 대강 생각해 보면 박명국, 김성주, 최두춘, 장허, 그리고 나의 아우인 치환 외 7, 8명이었다-(중략)-문학청년이 하는 상습(常習)으로 우리도 동인지를 가졌다. 동지에는 시가 만헛다. 나는 창피막심한 시를 썼다. 치환은 그때 중학 2,3학년 소년이었으나 상당한 시재를 보이고 있었다.―유치진 「나의 수업시대」”(동아일보, 같은 날짜)로 보아 1926-27년 경 통영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이 「토성(土聲)」지 운운은 기껏해야 회람지 성격으로 떠올려진다. 근거 자료는 진짜로 없다. 당시 취재 기자의 혜안이 과한 탓에 동인지로 전언 게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쏠린다. 이 과정에서 동경 유학인(유치환, 유치상)과 관련된 근거 동인지로는 소제부가 있다. 이 『소제부』(1930년)의 발간이 동경이라기보다 부산일 가능성(전 동아대학교 박철석 교수 증언)이 높다는 것도 주지해 볼 사항이다.

이런 점에서 〈제 2절 일제강점기의 통영문학〉 중에서 (-1920년대)에 들어가서는 1920년대 중반기부터 근대시절의 유명문학지나 동아일보 독자란 등에서 활동한 통영인, 또는 《참새》지 동인의 전국문학 활동사항이나 그 외 통영거주 문학인의 몫으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리고 〈제6절 통영 출신 문인들〉 중에서 〈시인〉 순서에 가서는 누가 보아도 유치환시인 다음에 최삼한기 시인이 들어가야 맞아진다. 최삼한기는 유치환에 의해 문학인의 길을 따랐다는 증언이 있다.

또한 조석래(719쪽)시인은 1980년대 시인들과 자리 잡기(줄서기)는 한참 무리수를 두었다. 그 시절 등단시점은 현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이나 중앙 유명문학잡지(현대문학, 현대시학, 시문학, 문예중앙 등)에는 2-3회 추천을 거쳐야 했으며,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실천문학 등에는 신인상 또는 기성 대우 발표지면을 할애했다. 지역신문사 신춘문예출신은 다시 한 번 유명문학잡지에 작품을 발표(신인상제도)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중앙유명잡지에서 간간이 그간의 실적(시집발표, 지역무크지 작품발표 외)을 토대로 해서 신인이라기보다 기성시인대우로 중앙유명잡지에 기성시인과 동등하게 게재하게 함으로써 시인의 대우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점 등을 유념해 볼 때 조석래시인 본인의 제출 자료 근거에 의거하면 2000년대 시인으로 판단해도 합당할 성 싶다.

필자의 경우는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당해 년에 부산문인협회 시조분과에 입회하고, 시집 2권의 발간과 문예중앙에 시 「비둘기」「귀뚜라미 소리」를 발표하고, 부산 지역무크지에 다수의 시를 발표해 1987년에 부산시인협회에 가입 활동할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이 지면 관계상 큰 틀에서 문제점을 제시해 보았다. 하지만 그간 집필자의 노고는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1990년대 들어 수많은 시인들의 출현을 세세히 조명하였다는 점 등에 있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독자시단

물가(物價)

 

허경균<재경통영향인>

 

시장에 둘러오면

수북하던 장바구니

무거웠나봐

담아온 물건은 많이 줄었다

 

오손 도손 가정생활

가난한 사람들 속도 모르고

올리려면 조금이나 올리지

올라도 보통이나 오르나

 

공공요금 임금 십원, 백원 올리면

세금 얼마나 더 걷히나 나아지나

물건 값 덩달아 오르는 것

이는 평범한 생활 속에 닿아지는 것을

어쩌면 좋아 또 저 이름이 생기고

 

곳곳의 쓰임이야 좋으련만

마음은 오붓한 가정이더라

가벼워진 장바구니에

우리 서민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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