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제공

同胞에 檄하노라!!

일본(日本)은 자칭(自稱) 맹주(盟主로) 동양(東洋)의 안위(安危)를 담당(擔當)하였다.

청일(淸日) 아일(俄日러시아-일) 싸움 후 세계강국(世界强國)에 병견(竝肩)하였다.

일본(日本)은 문명국가(文明國家) 법치국가(法治國家)다 라고 장담(壯談)한다.

그들은 과대망상증(誇大妄想症)에 병(病)든 난시(亂視)여서 동양화(東洋和)를 표방하고 한일합방(韓日合邦)을 강변(强辯)하는 것이다.

그들의 기만정책(欺瞞政策)은 저 유명한 형명학자(形名學者) 한비(韓非)와 초고(礎稿)의 마록설(馬鹿說)을 연상(聯想)케 하는 것이다.

과연(果然) 한 민족(民族)이 다른 민족(民族)을 지도(指導)하고 청렴(淸廉)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는 일본인(日本人) 자면(自眠)의 허위(虛僞)요 궤변(詭辯)인 것이다.

그들은 천유년래(千有年來)의 침략(侵略)과 죄악(罪惡)은 폴랜드의 18세기(一八世紀) 죄악사(罪惡史)와 명기(明期)도 암기(暗記)도 못할 사실(事實)임에도 감(敢)히 세계(世界)의 이목(耳目)을 일지(一指)로 엄폐(掩蔽)하고 자칭(自稱) 문명국(文明國)이라 장담(壯談)하는 것이다.

그들이 합방운운(合邦云云) 십년(十年)인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서 살아남은 것일까.

그들의 법치(法治)가 문명(文明)과 동양평화(東洋平和)란 양두(羊頭)를 걸고 구육(狗肉)을 파는 요술(妖術)이 이것이다.

그들 궤변은 즐비(櫛比)한 호가(互家)에 전등(電燈)불에 기차(汽車)소리 마차소리 대포소리 말굽소리 보라! 이것이 법치(法治)의 화엽(花葉)이요 문명(文明)의 소리라고 또 말하리라.

도회(都會)의 거리거리가 얼마나 굉대(宏大)하며 석조정원(石造庭園)에 봄꽃이 향기(香氣)롭고 한 나라 하늘과 국토(國土)는 경명(景明)하고 산해진미(山海珍味)는 풍미(風味)도 하다고.

그렇다. 금수강금수산(錦繡江錦繡山)이 명미(明媚)도 하다.

그러나 보라! 그 화려진미(華麗珍味)는 모두 누구의 것이고

그 굉대(宏大)도 그 고루석조(高樓石造)도 모두 그들의 것이다.

춘생추실(春生秋實 )이 모두 그들의 것이다. 강산(江山)을 횡단(橫斷)하는 기차(汽車)바퀴와 동해(東海)에 정박(碇泊)한 만톤(萬屯)의 함선(艦船)은 이 나라 부(富)와 풍(豊)을 실어가는 약탈귀(掠奪鬼)요, 문명(文明)의 소리소리는 우리 동포(同胞)의 목숨이 짤리고 피와 기름이 째이는 원통한 비명(悲鳴)이다.

보라! 그들이 말하는 그 화려굉장(華麗宏壯)한 뒷골목과 쪽겨난 산언덕바지를, 거지를 긁어서 얼굴 부은 형제(兄弟)와 헐벗어 사지(四肢) 못쓰는 동포(同胞)가 뒤끓는 것이다.

법치(法治)의 첼펜에 얼빠진 시체와 형장(刑杖)에 쓸어진 목숨의 파편(破片)이 흥등거려 굴으는 것이다.

이것이 법치(法治)요, 문명(文明)인 것이다.

약탈(掠奪)의 원흉(元兇) 이등(二藤)의 어량삼천리(漁糧三千里)는 백골(白骨)을 듣는 송장 까마귀 떼가 휘우적거려 날고 무덤을 파는 여우 독수리 무리가 날뛰며 춤을 추는 것이다.

이 참담한 조국(祖國)의 거리에서 동포(同胞)여!

길 잃은 양(羊)떼여! 일간두옥(一間斗屋)도 수무전토(數畝田土) 내 것이 못되고, 묻힐 땅마저 없는 형제(兄弟)여! 죽어랴 살랴 조상(祖上)을 파묻고 비이슬 맞어 자란 목숨이 시체로 썩은들 조상(祖上)이 물려준 자손만대(子孫萬代)에 물려줄 이 강산(江山)을 찾아서 무궁무진 뻗어가며 길이길이 살아야, 어떻게라도 살아야할 동포형제(同胞兄弟)여!       

보고 못 본체 듣고 못 들은 체 말못하는 벙어리 삼천리(三千里) 동(洞)굴이여!

십년(十年)의 밤은 이제야 동터는 아침이어라.

어둡던 냉(冷)장고 동방(東方)에 문이 열리고 봄의 수레들이여라.

남산(南山)장두 강산(江山)을 울리든 대포(大砲)소리는 망국(亡國)의 적종(吊鍾)이 나니라 우리의 수족을 묶었든 철사주사(鐵絲紬絲)를 꺽어 없애는 자유(自由)의 종(鐘)소리인 것이다.

나오라 형제여! 대도(大道)에로 모실(茅室)에서 피나는 일터 죽음의 공장(工場)에서 염라의 광(鑛)굴에서. 어서바삐.

괭이 들고 산에 간 내 형제(兄弟)여

그물 들고 바다로 간 내 동포(同胞)여

기심 뜯던 들판에서 배짜던 베틀에서 내 누이여!  큰거리로 나오려므나.

조상(祖上)의 유업(遺業)이다. 자손의 기업(基業)이다. 철천의 초연(超然) 성(聖)서러운 판가리다.

삼한삼국(三韓三國) 낙랑(樂浪)때 후예인 일본(日本)이 임진팔년(壬辰八年)을 일으켰고, 인천(仁川) 운요호(雲揚号)의 장계(長計)로 을사(乙巳)의 가면(假面)과 덕수궁내(德壽宮內)의 연극(演劇)이 이제야 도로혀 군대(軍隊)와 경찰(警察)과 칼과 총으로 그들이 묻힐 묘굴(墓窟)을 판 것이다.

만약(萬若) 그들이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전방(前方)을 살릴 시력(視力)이 이섯다면, 원(元) 명(明) 청(淸) 로마(羅馬)가 망(亡)하고 만리장성(萬里長城)이 문허지든 경위(經緯)가 대동(大同)한 진리(眞理)임을 알았다면 그들 군국침략(軍國侵略)의 객기(客氣)에서 정신(精神)을 들려, 동양십억(東洋十億)의 공동각분(公同各分)과 청렴(淸廉)이 있었다면 잇빨에 피칠을 하여가며 자화(自禍) 자취(自取) 하지는 않하였으리라.

삼군(三軍)으로 필부의 마음을 어찌랴.

우황(又況 하물며) 이천만대중(二天萬大衆) 고려나(高麗羅)의 종주문화(宗主文化) 일천만리(一千萬里)의 동양아대륙(東洋亞大陸)을 우망(愚亡)으로 범(犯)함은 노천(老天)이 불객(不客)할지니 그들 백만(百萬) 비우가 인류(人類)의 거리에 역도(逆徒)일 뿐 임진(壬辰)의 치욕(恥辱)도 치욕(恥辱)이거니와 숨막히는 이 비통(悲痛), 분념(憤念)에 산이 돋고 원한(怨恨)에 바다가 끓는지라.

십이종산(十二宗山) 구대강(九大江) 머-ㄴ 조상(祖上)에 정령(精靈)이여, 주수(走獸)여, 소조(小鳥)여, 무룻 이 땅에 목숨을 탄 자(者) 모조리 나서라.

불로 태우런가, 얼어붙은 형제(兄弟)의 체온을 올리련다. 물로서 싯으련가 마라터진 강산(江山)을 축이련다. 힘으로 눌인건가, 전 강산(全江山)이 화산(火山)으로 터지련다.

하늘의 지의(至意)를 어떻게 하랴. 죽음으로 후대(後代)에 사죄(謝罪) 하려거든 어떻게 하랴.

박아지를 들고 우리 문전(門前)에 밥을 비는 슬픔을 자손(子孫)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맛땅히 결의(決意)한지라. 궁천지긍만세무가내하(穹天地亘萬世無可奈何)인저.

호마(胡馬)도 북풍(北風)에, 월조(越鳥)도 남매(南枚)에, 여우도 굴(窟)이 있거늘 오직 우리 머리 둘 곳이 어데멘고.

슬프다. 장추창쇠(張椎創釗)를 가슴에 품고, 와신상담(臥薪嘗膽) 몇 춘추(春秋)며, 장사불복(壯士不復)을 노래한 열사(烈士)가 몇몇이며 지동지서(之東之西) 막막(漠漠)한 벌판에 두만강(豆滿江) 송화강(松花江)뚝에 해 저문 까마귀와 슬프고 새벽 낙엽(落葉)과 굴으며 새벽 한산(閑山) 달에 통곡(痛哭)은 몇 번이며 압강(鴨江) 아침놀에 상심(傷心)은 몇 번이련고.

이성역여(異城逆旅) 고영(苦影)분투 칠전팔기(七顚八起) 일비(一臂)와 쌍수(雙手)의 싸움으로 주인(主人) 없는 송장은 그 얼마며 무리(無理)한 수모를 그저 받고 까닭 모를 타규투옥(打叫投獄) 원수의 총칼에 불귀(不歸)의 원귀(寃鬼)가 된 형제(兄弟)는 그 얼마드뇨.

패자(敗者), 약자(弱者), 생의 조난자(遭難者), 고향상실자(故鄕喪失者), 조국방축자(祖國放逐者), 국경(國境) 없는 유랑(流浪)군이 우리의 별명(別名)이요, 육주오양(六州五洋) 사람 사는 거리 거리 가는 곳마다 한숨이요, 서는 곳마다 발굴우는 소리요 피눈물이였다.

오형삼천(五荊三千)에 막가는 죄(罪)가 나라 벗는 죄(罪)요, 뼈저리는 설움이 망국(亡國)의 설움이어라.

벽옥(碧玉) 같은 조국(祖國)의 하늘 기름진 이 강산(江山)을 두고 갈 곳이 어데라느뇨.

제 어깨로 제 모뚱이를 지니는 못할지니 형제(兄弟)여 금수로 살려는가?

나라 없는 개가 되랴. 이 피빼인 목청으로 조국도성(祖國都城)은 분화(噴火)로 터졌다.

삼천리(三千里)는 전민족(全民族)의 함성(喊聲)과 발대죽마다 핏물 흐르는 장엄(莊嚴)한 세기적(世紀的) 행진곡(行進曲)이 시작(始作) 되었다. 

동포(同胞)여! 대도(大道)의 거리로 나오려므나. 봉사여, 귀먹이여, 입 있는 벙어리여, 굶주리던 내 동지(同志)여, 삼천리(三千里) 내 땅, 내 거리, 내 형제(兄弟), 내 누이, 절통히 죽은 젊은 혼들이여, 모조리 나오려므나.

주인(主人)이 없었으면 누가 대답(對答) 하랴. 갖던 것 오게 하고, 꿀인 것 펴게 할 가소(可笑)로운 주객전도(主客顚倒)의 판가리다.

어둠과 슬픔과 춥고 굶주림으로 어린 후대(後代)를 달랠느뇨.

아-황량한 내 산하(山河)여, 참참한 내 조국(祖國)이여, 이 학살의 거리 총알같은 내 동포(同胞)여, 현대(現代)에도 살 수 없고 미래에도 살 수 없는 형제(兄弟)여, 어서 바삐 뛰어 나와 이 성스러운 대열에 발 맞추려므나.

하늘도 땅도 청산(靑山)도 녹수(綠水)도 가담하리.

폭(暴)을 폭(暴)으로 갚을 비겁(卑怯) 아니요, 한마디 대답이 승리(勝利)인 것이다.

철석(鐵石)같은 우리의 신념(信念), 벽력같은 우리의 함성(喊聲), 적(敵)의 창(槍)과 투구는 이미 땅에 떨어졌나니, 소양(昭陽)한 대지(大地), 구십춘광(九十春光) 거칠 것, 막힐 것 없는 정의(正義)의 개선, 회천동지(回天動地)의 나팔(喇叭)이다.

강산(江山)을 뒤흔드는 함성(喊聲), 아침 해 칠색영채(七色靈彩)에서 오려온 한(韓)나라 기간(旗竿), 이천만(二千萬)의 손으로 매어 올리렴, 하늘 높이 청천(靑天)까지…

一 . 나라 생각 외(外)에 일체(一切) 구구(苟苟)한 욕심(慾心)은 도적질이다.
二 . 우리에게 자유(自由) 아니면 죽음을 다오.


권남선(權南善) 김형기(金炯綺) 배익조(裵益祚) 양재원(梁在元) 모치전(牟治田) 강세제(姜世濟) 허장완(許章完) 이학이(李學伊) 진평헌(陳平軒)
 

격문을 등사한 미농지를 산 나카무라 상점 영수증. 통영문화원 복사소장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 독립선언서' 낭독과 필사 챌린지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필사 챌린지는 독립선언서 38개 문장을 지목받은 주자가 한 문장씩 릴레이로 이어 쓰고 48시간 이내에 SNS 인증 후 다음 참가자 3명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100년 전 우리 통영은 어떠했을까요? 3.1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을까요?

목숨 건 통영 만세운동의 첫 출발은 3월 8일 송정택 사랑방에 1919년 3월 8일 경성 배재고에 재학 중인 진평헌이 귀향, 양재원 권남선 등 19명의 청년이 송정택 사랑방에서 거사를 결의하면서 시작됩니다.

D-데이는 3월 13일(음력 2월 12일) 통영장날이었습니다. 3월 9일 김형기가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상 나카무라 상점(中村商店)에 가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할 미농지 2천매을 구입하고, 그날 밤 8시경 통영면서기 이학이가 통영면사무소의 등사판을 한 대 훔쳐내여 비밀리에 산양면 사무소에 집결합니다.

하지만 서울의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지 못하자 진평헌을 주축으로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쓴 '동포에게 격하노라' 격문을 1천여 매 등사하고, 태극기 수 백개를 만듭니다.  

그러나 일본인의 밀고로 10일 새벽 일본 경찰에 발각, 주모자 모두 체포, 투옥됩니다. 바로 나가무라 상점 영수증이 문제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경에 붙들린 주모자 즉 격문에 이름이 적힌 9명이 대구와 부산형무소에서   1년∼6개월의 징역을 살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이학이(당시 22세), 허장완(당시 21세) 등 세 열사가 옥중에서도 독립정신을 굽히지 않아, 심한 고문에 의해 옥사하거나 가석방돼 나와 숨졌습니다.

목숨을 건 통영의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통영의 독립 선언서-동포에게 격하노라!!' 이어 읽기 및 필사 챌린지를 한산신문이 제안합니다. 내년 101주기 통영 3.1운동 기념식에서는 이 격문이 우렁차게 울러 퍼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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