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예총 주관 통영시·원주시·하동군 연계, 공연 전시 체험 다채
5월 4∼5일 서피랑공원과 박경리공원 일원, 추모제는 박경리 묘소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 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통영이 낳은 문학의 어머니 박경리(1926-2008). 그토록 사랑하던 고향땅에 영원히 귀환한 지 만 11년. 이제는 이순신 장군 독전 소리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미륵산 기슭에서 통영의 영원한 어머니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5월 5일은 어린이날 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한국이 낳은 대문호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를 기리는 특별한 날로 지정됐다.

짧은 육신의 삶을 살았으되 대붕같이 유유자적하던 한국문학의 어머니 박경리는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하며 스스로 떠남을 홀가분하게 여겼으나 남은 이들은 큰 상실감과 슬픔에 몸부림쳤다.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는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했다. 표루도,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해 25년 만인 1994년에 완성,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생전 명정골 동백꽃이 50번이 지고 피는 세월 만에 고향을 방문, 어릴 적 뛰놀던 세병관 기둥을 잡고 회한의 눈물을 보였다.

“고향이란 인간사와 풍물과 산천, 삶의 모든 것의 추억이 묻혀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 인생의 모든 자산이며 30여 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 고향 통영을 떠난 세월은 생존 투쟁의 나날이었다. 충렬사 동백꽃이 50번이나 피고 지고 나서야 도착한 고향 통영, 나는 세병관 기둥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그가 떠난 지 만 11년. 또 다시 눈이 시린 연두빛. 이제는 떠나보낸 슬픔 보다는 그를 추억하는 문학축전으로 박경리의 예술혼을 부활시킨다.

여든 두 살의 나이로 영원한 삶의 터전인 고향으로 돌아온 박경리 선생 11주기를 맞아 ‘2019 박경리 문학축전’이 5월 4∼5일 생가가 있었던 명정동 서피랑공원과 산양읍 박경리기념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통영시는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박경리 선생 추모제를 개최, 박경리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예향 통영의 위상에 걸맞은 문학축전으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2019 박경리 문학축전’의 주 행사장은 박경리 선생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자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서문고개와 명정동 일대를 부각하고 시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서피랑 공원으로 선정했다.

학생과 시민, 원주·하동 등 선생과 관련된 지역의 예술인 등이 동참하는 문화축제인 ‘2019 박경리 문학축전’은 통영예총 8개 단위지부가 주축, 오는 5월 4일 11시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5월 5일까지 공연, 백일장, 경연대회, 체험·전시, 어린이 행사 등이 펼쳐질 계획이다.

특히, 통영여행 중 촬영한 사진이나 통영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을 전송해 응모하는 ‘모바일 사진촬영 대회’도 열린다.

또 어린이날을 기념, 통영의 화가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미술작품을 완성하는 ‘화가와 함께 하는 어린이 미술체험’ 등 이색적인 체험행사도 개최된다.

통영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박경리 선생 11주기 추모제 및 박경리 문학세미나는 5월 5일 11시 30분부터 박경리 묘소와 박경리기념관에서 진행된다.

통영예총 관계자는 “무엇보다 박경리 선생의 문학적 배경이자 박경리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서피랑에서 문학축전을 열게 되어 뜻 깊고, 앞으로도 시민과 관광객이 박경리 선생을 기억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전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9 박경리 문학축전’과 함께 5월 4∼6일 세병관이 있는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에서 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의 주관으로 ‘통영무형문화축전’ 행사도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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