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지역문화 공간의 새 이름>

①개인의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

②동네서점의 변화, 편견을 깨다

③책-사람-책방 함께 공존하다

④통영에서의 작은 책방, 현재와 미래

작은 책방의 시대가 왔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기존의 출판 및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다양한 주제를 지닌 독립출판이 확대되고 있다. 대형서점에서 볼 수 없었던 귀한 책부터 개성 넘치는 책들까지, 전국 곳곳에 작지만 독특한 지역만의 개성으로 무장한 서점들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역마다 늘어가고 있는 작은 책방들은 지역의 지식문화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거점으로써 단순히 책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독특한 공간 연출, 독자 중심 운영, 책과 관련 행사 및 전시·공연 개최, 독자 공동체 형성 등의 특성을 가진다.

또한 지역문화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내·외에서 문화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기획취재는 지난 3년간 한산신문 ‘책읽는 통영’ 캠페인의 그 연장선상으로 올해는 전국의 ‘작은 책방’을 직접 돌아보며, 책방이 지역 문화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독서분류법 아닌 시, 사랑, 정치, 자연으로 서가 구성

‘무규칙 협동 큐레이션’ 프로젝트 통한 추천 책 입고

무명서점은 제주의 옛 시간을 품은 고산리에서 2017년 10월말 문을 연 동네책방이다. 책방은 고산우체국 사거리 유명제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무명서점 정원경 대표는 17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동네빵집에 기대어 가려는 마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자유로운 책 읽기를 꿈꾸는 마음으로 이름을 잊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방 이름은 무명서점이다.

무명서점은 ‘이름 모를 책들의 여행’이라는 모토 아래 모든 책을 시, 사랑, 정치, 자연 4가지 주제로 서가를 재배열했다.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독서분류법이 아니다. 연애소설이 치열한 정치가 되고, 시처럼 낭독하고 싶은 철학책도 있다. 자연의 운명이 걸린 SF소설, 사랑에 빠진 실용서 등이 4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자리를 잡고 진열 돼 있다.

무명서점은 새 책이었던 헌책과 헌책이 될 새 책이 공존하는 책방이기도 하다. 책방 운영자의 취향만으로 책을 선정하지 않고, ‘무규칙 협동 큐레이션’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을 입고해서 판매한다. 책 추천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장르 불문, 이유 있는 추천 등 독자들만의 ‘그 책’을 무명서점 인스타그램, 트위터, 메일로 보내면 된다. 소개하려는 책 사진과 추천 이유를 한두 문장으로 간단히 남겨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를 달면, 무명서점이 그 책을 입고하는 방식이다.

무명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지역(이)주민, 제주여행객, 책이 있는 곳이라면 시골 어디라도 찾아오는 책방여행자들이다. 주제별, 맥락별 서가구성을 거부감 없이 즐기는 독서 내공을 갖춘 분들,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제주 관련 책을 찾는 분들도 많다.

정원경 대표는 “한 사람의 취향, 특별한 경향보다는 무명서점을 찾는 독자들의 안목과 선택이 만들어낸 균형 있는, 또 끊임없이 변하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책방을 꾸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 책과 헌책, 신간과 구간, 그리고 기성출판 책과 독립출판 책을 가리지 않고 함께 진열하고 있다. 이 무질서 속에서 이름 모를 작은 책을 보물처럼 찾아낸 여행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야말로 책방 운영의 기쁨”이라고 밝혔다.

 

독자가 선택한 책, 출고기록 온라인 공개

낭독모임, 독서모임, 초청 낭독회 등 ‘다양’

책을 좋아해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꿈꿔왔던 정원경 대표는 서울 금호동 작은 책방인 ‘서실리북스’를 방문, 머릿속으로만 해왔던 생각을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 정 대표는 우연히 지인에게 현재 무명서점 책방이 있는 공간을 소개를 받았고, 2달 동안의 준비를 거쳐 2017년 10월말 문을 열었다.

그는 “요즘은 크고, 세련된 좋은 책방이 많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책방은 그것이 아니었다. 서울 ‘서실리북스’를 방문하고 나서 이런 책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이 가지고 있는 큐레이션이나 자유로움, 낡은 책들이 이루고 있는 조화로움이 새롭게 다가왔다. 제가 생각해왔던 좋은 책방 모델을 발견한 것이 무명서점을 여는데 큰 계기가 됐다. 서울 ‘서실리북스’는 저에게 있어 책방의 책방 같은 곳”이라고 무명서점 탄생 계기를 말했다.

일반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무명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를 찾아볼 수 없다. 서가 마다 꽂혀 있는 책들은 비슷비슷 뒤섞여 있기 때문에 책방을 방문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자기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선택한다. 작은 책방의 무질서한 책들 속에서 자연스러운 책 선택이 이뤄지는 곳, 그것이 무명서점이 추구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책방이 입고기록을 남기는 대신 무명서점은 출고기록을 남긴다. 정원경 대표는 책방을 열고 지금까지 거의 매일 책방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되짚어보고, 매일 책방을 찾는 여행자들이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 기록하는 시간에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매일 책방을 찾는 여행자들이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 출고의 흐름도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책방을 들려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낸 이들이 자신이 발견한 소중한 책을 들고 마음에 드는 책방 공간에 선다. ‘찰칵’, 정원경 대표의 카메라엔 주인을 만난 책과, 책을 고른 주인공들의 행복한 순간이 담긴다. 그렇게 모인 사진들은 곧바로 무명서점 온라인으로 오픈된다. 각자의 취향을 저격한 책, 구매 이유, 각자의 이야기가 무명서점을 통해 전해진다. 출판 시장이 보여주지 않는 이름 모를 책들, 독자들이 발견해낸 책들이 오늘도 무명서점을 드나들고 있다.

무명서점에서는 낭독모임, 무모한독서모임, 시인초청 낭독회 등 독자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무명서점 낭독모임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에 독자들이 책방에 모여 같은 책을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함께 읽는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가느다란 희망’의 책, 존 버거의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카슨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 등을 읽었으며, 어느덧 14번째의 책 낭독을 준비 중이다.

책 읽는 이웃들이 제안하고 시작한 북클럽 무모한독서모임은 잔잔한 수면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루는 물무늬를 뜻하는 물둘레처럼 한 권의 책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하면 서점원인 정원경 대표가 참여자를 모집, 원활한 독서모임 진행을 위해 홍보, 도서 주문, 장소 제공, 진행 코디 등을 지원한다.

시인 초청 낭독회도 펼쳐진다. 김소연 시인, 임솔아 시인, 송재학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작은 책방에서 진행되는 낭독회에는 최대 30명이 옹기종기 모여 시인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시와 시인, 시인이 담아낸 시들을 함께 나누는 일, 이 모든 것은 독자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무명서점이 선사하고 있다.

고산리 강지혜 시인과 함께하는 ‘무명서점 시차’

주민과 책방이 함께 하는 것=지역과 책방의 상생

무명서점은 지난해 ‘2018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정원경 대표는 ‘시와 당신을 가까이, 무명서점 시차(시와 함께 차차 친해지기)’라는 주제로 시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 고산리에 살고 있는 강지혜 시인과 함께 7개월 동안 함께했다.

정 대표는 “운 좋게 한국작가회의에서 공모한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돼 시, 사랑, 정치, 자연의 책으로 이루어진 무명서점에서 시와 독자들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일반 독자들은 시를 어렵게 느끼는데 그 거리를 좁히고자 ‘시와 차차 친해지는 시간’을 마련했다. 무명서점 시차가 시작되면서 시차 여정의 안내자 강지혜 시인과 독자들이 시를 함께 낭독했다. 불편하고 어렵던 시는 독자들에게 명백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을 안에서 새로운 문화적인 시도를 한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지역에 계신 작가분과 협력해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음이 좋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목적했던 대로 사람들이 직접 시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시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계기와 경험을 제공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무명서점 같은 작은 책방들은 일반적인 대형 서점들처럼 출판사에서 위탁해 주지 않아 대부분을 책방 운영자가 매입을 한다. 매입을 하는데 한계가 있고, 책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많이 소개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제적인 한계가 있다.

정원경 대표는 “아직까지 파는 책보다 사는 책이 많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무명서점이 지역민들에게 아무생각 없이 와서 나에게 맞는 재밌는 책 한권을 찾을 수 있는 곳, 그렇게 생각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지역에 있는 책방이 지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다면 그 책방이 있음으로 풍성하게 마을 사람들이 놀 수 있는 사랑방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같은 곳은 임대료 문제로 인해 책방들이 오래 유지되기 어렵지만 제주도는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이 덜 하다. 하지만 점차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긴 하다”며 “그랬을 때 책방이 사라지는 것을 지역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책방이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마음이 생긴다면, 그 책방은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았던 책방이고 영향을 줬던 책방이다. 주민들의 도움에 의해 책방이 유지될 수 있다면 지역과 책방을 서로 살리는 것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솔아 작가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 추천

무명서점과 삐삐책방의 큐레이션 공유 약속

정원경 대표가 시민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임솔아 작가의 첫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이다.

2013년 등단한 임솔아 작가는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2017년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시적인 문장 안에 진중한 사유를 함축해 써내려 간 작품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책방을 찾는 독자분이 임솔아 작가의 시집을 같이 읽어 보고 싶다고 하셔서 독서모임을 준비하며 작가님께 초청 요청을 하게 됐다. 선뜻 와주신다고 해주셔서 자연스럽게 낭독회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임솔아 작가는 시도 소설도 잘 쓰는 작가다. 젊은 작가이지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힘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책은 20~30대의 삶에 대한 현실적인 아픔을 담담하면서도 서늘하게 담아낸다. 단지 아프게만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따뜻한 시선, 약한 것들을 강하게 살려내는 힘도 있다. 임솔아 작가가 쓰는 글은 언제나 읽고 싶은 준비가 돼 있다”며 책 추천 이유를 밝혔다.

정원경 대표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매년 봄, 통영을 찾는다. 그때는 무명서점을 일주일간 문을 닫고 오롯이 휴가를 보내는 기간이다. “통영이 좋으니까 매년마다 통영을 찾는 거겠죠?”라며 수줍은 고백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봄, 통영을 찾아 우연히 통영의 작은 책방 ‘삐삐책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곳은 정말 작고 귀여운 곳이었다. 책방에 있으면서 좋은 기분을 받았다. 또 먼 거리에 있지만 무명서점과 삐삐책방이 함께 큐레이션을 공유하기로 약속하고 왔다. 제주 무명서점이 추천하는 책을 통영에서, 통영 삐삐책방이 추천하는 책을 제주에서 만날 수 있도록 책방의 서가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너무 바쁜 관계로 아직은 실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꼭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 이것이 실행된다면 삐삐책방에서 무명서점이 추천하는 책들을 볼 수 있다. 무명서점이 추천한 책을 통영시민, 통영을 찾는 분들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 서쪽 끝에 위치한 무명서점은 석양이 특별히 아름다운 곳이다. 따라서 무명서점의 영업시간은 오후 1시부터 일몰 무렵까지다. 정원경 대표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책방을 마감하고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일몰지로 달려간다. 오늘도 책방 운영을 끝내고 서쪽으로 넘어가는 강렬했던 하루의 마지막 해를 보고 있을 그녀는 무명서점을 다녀간 독자들과, 책방을 지키고 있는 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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