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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신문-통영예술의향기-충무고·욕지중·제석초교 공동기획
'예향1번지, 한산신문을 통한 학교현장에서의 지역문화예술NIE'
4백년을 이어온 문화예술교육, 한산신문-시민문화서포터츠 통영예술의향기 12년의 대장정
예술1번지 2019 통영 최고의 문화학교=충무고, 지역예술NIE를 통해 학교상 재정립 한창
6월 21일 박우권 예술의향기

■ 2019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 한산신문 응모사업


지역의 꽃=시민, 신문의 꽃=독자, 학교의 꽃=학생
바다의 도시 푸른 통영 예술 DNA의 주인공 '충무고'


바다의 도시 푸른 통영,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혈관 속에는 대대로 예술가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이를 '통영 예술 DNA'라고 명명했다.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3도수군 통제영이 있었던 이 곳. 바로 통영이라는 도시 명칭의 근원이 여기서 출발한다. 나전칠기, 두석장, 갓, 통영소반, 남해안별신굿, 통영오광대 등 400여 년의 세월 동안 통영 12공방은 통영 공예의 산실로, 그리고 다양한 예술문화로 조선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세월은 흘러 400여 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최남단 항구도시 통영의 문화예술문화는 대한민국의 제1 중심에 서있다.

이 시대에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그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한산신문과 시민문화서포터즈 통영예술의향기가 지난 12년간 지역민과 함께 펼친 다양한 문화예술NIE를 이제 학교 교육현장에 접목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시민 4백여 명이 주인공인 통영예술의향기와 한산신문이 한산신문을 매개로 학교 속 학생들과 소통하고 교감 중이다.

그 교감의 주체는 통영문화예술의 중심에 서 있는 통영예술의향기 박우권 회장을 비롯 20여 명의 이사들과 한산신문 김영화 편집국장과 강송은·박초여름 취재기자이다.


제4강 박우권 통영예술의향기 회장
한산신문과의 문화운동 12년, 감동 스토리를 말하다


인구대비 예술인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시 통영!

지난 6월 21일 드디어 통영예술의향기 박우권 회장이 충무고등학교(교장 박양동) 학생들과 2시간에 걸쳐 '한산신문과 통영예술의향기 12년 활동을 통해 발굴한 지역문화예술 현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교육동아리 에듀윌과 도서부, 경찰을 꿈꾸는 꼼작마라 빵야 등 3개 동아리 50여 명이 학생들이 눈을 반짝인 박우권 회장의 강의는 저 멀리 영국의 스톤휀지와 이스트 섬의 모아이 석상, 그리고 김춘수 꽃 시비로까지 이어졌다.

2007년 한산신문의 독자의 작은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거대한 문화운동으로 발전한 김춘수 꽃 시비건립운동은 통영문화운동의 이정표로 기록됐다.

한산신문과 민간문화서포터스 통영예술의향기가 시민 4백여 명과 함께 한 이 운동은 또 다른 문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초정 김상옥 아트거리와 청마 유치환 100주년 깃발축제 및 청마 흉상 건립 등 통영 문화운동의 주인공이 여전히 지역민임을 입증했고, 공공디자인은 이제 통영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리고 이 운동에 감동한 유족이 김춘수 유품 전부를 통영에 기증, 김춘수 유품전시관이 건립된 데 이어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통영문학상 제정의 모태로 작용했다.

그 결과 호남 제주 기자단 연수프로그램은 물론 타 지역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방문객들이 쇄도했다. 

하지만 통영예술의향기와 한산신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깃발의 시인·편지의 시인 청마 유치환, 세계가 극찬한 마술의 펜 김용익,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 시조학의 아버지 초정 김상옥, 꽃의 시인 김춘수….

박 회장은 교과서에 수록된 예술인들만도 열거하기만도 버거운 일, 길가 서 있는 벅수조차도 시 한수 거뜬히 한다는 예향 통영의 문화예술사업은 물론 통영 바로알기 운동, 통영문화예술 탐방 등 다양한 문화교육사업을 한산신문과 손잡고 진행하고 있다.

맨 처음 시작한 김춘수 추모사업에서 확대, 청마 유치환, 꽃신의 작가 김용익, 초정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아동문학의 선구자 주평, 창작음악의 활화산 정윤주까지 확대했다.

통영의 유명예술인 6분의 추모제는 기본이고 한산신문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탐방을 진행한 지도 벌써 12년째이다.

이런 다양한 노력으로 통영예술의향기는 2017 박명용통영예술인상 공로상을 수상했고, 한산신문 김영화 기자는 지역신문 컨퍼런스 최우수상과 2011 한국지역신문협회 올해의 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박우권 회장은 "지난 12년간 통영 문화시민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운동을 펼쳐왔지만 이제는 한발 외연을 확장, 학교현장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의미있는 사업이라는 판단이다. 앞으로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충무고 현장에서의 통영문화예술NIE 사업에 전념하겠다. 학생들의 깊은 관심에 더욱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5강 '대를 이은 손맛, 오미사 꿀빵 이야기'
정창엽 대표 "오미사 꿀빵의 꿈, 100년 기업으로 성장"


'예향 1번지, 한산신문을 통한 학교현장에서의 지역문화예술NIE 프로젝트'의 제5강 역시 지난 23일 충무고에서 개최됐다.

이번 수업은 통영예술의향기 이사를 맡고 있는 오미사 꿀빵 정창엽 대표가 강사로 나섰으며, 공부동아리 '에듀윌'과 독서동아리 학생 20여 명과 교감을 나눴다.

정창엽 대표는 '대를 이은 손맛, 오미사 꿀빵 이야기'란 주제로 수업의 문을 열었다.

시작에 앞서 학생들에게는 꿀빵을 맛보는 달콤한 시간이 제공, 학생들의 흥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통영하면 꿀빵,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오미사 꿀빵은 전국에서 그 맛을 인정받을 정도로 유명한 통영 대표 간식이다. 한입 베어 물면 푸짐한 팥소가 입안에 가득, 그야말로 꿀맛이다.

통영 꿀빵이 유명해 진 것은 비록 몇 년이 되지 않았지만, 꿀빵의 역사는 6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오래된 역사다.

오미사 꿀빵의 창립자는 정창엽 대표의 아버지 정원석씨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통영으로 피난을 오게 된다. 제빵사로 일을 한 그는 일을 그만두고, 당시 배급되던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신혼이었던 1963년 당시 그의 아내는 집 앞에서 과일 좌판을 했고, 그는 좌판 한 귀퉁이에서 꿀빵을 만들어 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꿀빵은 통영여중·고등학생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빵집 옆에는 오미사라는 세탁소가 있었기에 학생들은 옆집 이름을 붙여 오미사 꿀빵이란 이름을 붙였고, 빵이 먹고 싶을 때는 "오미사에 가자"고 했다고 한다. 빵집에는 여학생들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이름이 없었던 빵집은 학생들에 의해 탄생하게 됐다.

이제는 오미사란 이름을 가졌던 세탁소는 사라지고, 오미사 꿀빵집만 남아있다.

오미사 꿀빵은 그 후 적십자병원 앞 조그만 가게를 열었고, 꿀빵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꿀빵이 잘 팔리는 만큼 가게 세도 올랐고,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게 낫겠다고 판단, 현재 본점 자리에 집을 샀다.

창립자 정원석씨의 아들 정창엽 대표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을 생각은 없었다.

타지에서 건설일을 했던 정 대표는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꿀빵일은 하기 싫었다. 그럴 때 마다 지인들은 '왜 그 좋은 일을 놔두고 다른 곳에서 일을 찾느냐'고 말씀들을 하셨고, 결국 제가 꿀빵을 배우러 통영으로 다시 오게 됐다. 제가 꿀빵을 배우겠다고 한지 이틀 만에 아버지께서 자신의 비법을 전부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그렇게 아버지 밑에서 꿀빵을 만들고 배우면서 2007년 오미사 꿀빵 2호점을 냈다.

그는 "1999년 유명 방송사 프로그램에 충무김밥, 굴밥 등과 함께 오미사 꿀빵이 통영 대표음식으로 소개됐고, 그때 이후부터 꿀빵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미사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과 그 계기가 스토리텔링이 됐던 것 같다. 인터넷과 택배가 확산된 덕분에 오미사 꿀빵이 유명해 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창엽 대표는 "2007년까지는 아버지 이름을 통해 꿀빵의 스토리가 전해졌다면, 그 이후부터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운영부분에 있어서도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 여력이 된다면 주변 이웃도 도울 수 있는 방침이 돼야 50년에서 100년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봉사와 기부는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말하는 정창엽 대표는 지역 내에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쌀과 장학금 기부부터, 소상공인 시설개선 사업 등 이웃을 위한 참된 사랑을 베풀고 있다.

그는 "오미사 꿀빵이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100년 기업으로 가는 것이 제 꿈이다.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노력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화 기자  dal3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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