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손 대표인 이명 3.1동지회 사무국장이 현충원 이장 봉행 후 활짝 웃고 있다.

한산신문이 발굴한 통영 3.1 독립운동 이성철(李聖哲) 애국지사가 2020년 봄 국립 대전 현충원에 이장, 드디어 보훈(報勳) 품격에 맞는 예우를 받게 됐다.

독립유공자 후손 모임 3.1동지회 통영지회 이명 사무국장의 할아버지인 이성철 지사는 동생  이봉철(李奉哲) 등과 만세운동을 하기로 모의하고, 수 백매의 태극기를 준비했다.

형제는 1919년 3월 18일 통영 장날 오후 3시경 함께 중앙시장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 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했다. 이날 시위에는 한문학당 관란제(觀瀾齋)의 학생들도 참여했다.

당시 장날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호응, 3.1운동의 열기를 이어갔다.

그는 당시 긴급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 부산지방법원 부산감옥에 수감돼 있다가 통영지청에서 공무집행 방해로 태형(笞刑) 90형(刑)을 받았다.

출감 뒤 그는 다시 민족운동에 대한 염원을 불태웠으나 장독(杖毒)으로 수개월 고생하다가 끝내 사망했다.

동생 이봉철은 김기정 징토사건에도 가담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독립운동으로 애국지사의 칭호를 형보다 훨씬 먼저 얻었다.

이성철 지사가 그 당시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들의 가족들의 증언과 기타의 자료에서 인용되고 있으나 그 형벌이 미비하고, 1차적 자료의 미비로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등재되지 못했다.

특히 그 당시 가족들은 후손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 호적상에서 이성철 지사를 지우는 이른바 독립운동가 호적 세탁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한산신문은 1993년 7월 22일 14면 정갑섭의 '이야기 인물사' 그 첫 번째 기사로 통영청년단과 이성철·이봉철 형제의 독립만세운동을 집중 조명했다.

이후에도 한산신문은 4차 3천700여 명이 참여한 일제강점기 통영의 독립운동을 끈질기게 탐사 보도하고 유족 역시 이를 근거로 일본 재판기록문 찾기에 나서 결국 호적에서 삭제된 이성철 지사를 되살려 냈다.

이 노력으로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고, 애국지사 명칭을 봉헌했다.

지난해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족들이 봉평동 묘역에 잠들어 있는 이성철 지사를 국립 대전 현충원 이장을 희망했고, 국가가 화답했다.

가족 대표 이명 3.1동지회 사무국장은 "지난 4월 22일 현충원 제5묘역 제391호에 영면한 이성철 애국지사는 우리 모두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이다. 한산신문이 첫 단추가 되어 그 이름이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됐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한산신문과 항일독립운동기념관 시민문화운동을 펼쳐 통영 역사의 한 축을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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