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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덕의 시조 '새, 꽃등을 달다' 읽기제6회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수상작
  • 김보한 시민기자·시인
  • 승인 2020.07.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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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세상을 돌아 감나무에 날아든 새/문득 스친 눈빛에 안절부절 숨 고르다/상처 난 가지들마다 꽃등을 걸어 주고//비바람 뙤약볕에 떫은맛 삭힌 감들/서리꽃 진 이른 아침 두고 간 인연인 양/눈시울 붉어가면서 아픈 밤을 품어준다//내일은 괜찮을 거야, 아픈 나무 잠재우다/몸 살짝 돌려 앉아 두 발 가만 모으고/예리한 겨울바람 민낯 토닥이는 낮은 햇살//울 수도 없는 나무를 읽어 주던 새의 눈매/감빛 물든 간절한 맘 홍시 끝에 남겨 두고/푸드득, 깃털을 떨구고 간 하늘 한켠 따뜻하다

 

가람 이병기는 『시조는 창(唱)이냐 작(作)이냐』[신민(新民), 1930.1.]를 통해 시조는 창(唱)이 전제되는 고시조와는 달리 읽히는 시조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화기 시조 이후 고시조의 퇴보가 눈에 띄게 드러났으며, 이는 현대화의 모색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발버둥친 모습으로 남아있다. 시조는 이 ‘읽히는 시조’에서 더 나아가 오늘날에 들어서는 의미의 시조로 탈바꿈하고자 기획하고 그 결과물을 드러내고 있다. 말하자면 현대시조는 시화(詩化)의 경향에 전진하고 있는 경우라 여겨진다. 시조가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시조(詩調)로 또는 시(詩)적 형상화로 내용면에서 ‘작(作)’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만치 현대시조가 다양 다변화되어간다는 말이다. 의미의 생성은 시(詩)의 기법에서까지 찾게 되며, 수작의 시와 뛰어난 시조는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결코 손색이 없다는 데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현대시조시인 중에 타고난 재력 꾼인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꿈꾸는 이 세계는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 사고로 인정되어지는 실정이다.

위 시조의 「새, 꽃등을 달다」는 이러한 면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있는 작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내용면에 있어서 1연은 새+상처 입은 감들에 눈길이 쏠린다. “아득한 세상을 돌아 감나무에 날아든 새”는 사리판단이 명확하고 주위를 아우르는 대상이다. ‘아득한 세상’은 고통을 감내하고 역경을 견뎌온 세월을 담고 있다. ‘문득 스친 눈빛’은 감나무의 주인쯤 연상되질 않을까. ‘새’가 “안절부절 숨 고르”는 것은 “상처 난 가지들마다” 걸려있는 아픈 감들 때문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 허망한 장난을 멈추어 서서 관망한다. 명예롭게 아픔관련 상처투성이의 감들은 새들의 먹잇감이 되다 남아 ‘꽃등’으로까지 승화시켰다.

2연은 떫은맛 삭힌 감들에 대한 연민이 깃들어 있다. 감나무가 생산해 낸 설익은 맛의 풋감은 “비바람 뙤약볕”을 거쳐야만 옹골차지는 것이다. 아울러 “서리꽃 진 이른 아침”에 이르러서야 숙성된 당도를 구가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치성을 드린 행위인가. 경건하게 두손을 모으고 “눈시울 붉어가면서 아픈 밤”을 품는 데에까지 진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연에서는 아픈 나무에 대한 위로의 의미화이다. 감을 생성시켜 맛난 홍시로 거듭나게 한 감나무는 감의 어미이다. “내일은 괜찮을 거야” 다독여 위로를 해도, 다반사 새들에 의해 ‘감’들은 몸살을 앓는다. “몸 살짝 돌려 앉아 두 발 가만 모으”는 모습은 날아온 새의 표정으로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화자도 응시한다. 여기에 더불어 있는 “예리한 겨울바람 민낯 토닥이는 낮은 햇살”까지 등장시킴으로써 시적 긴장에까지 도드라지게 된다.

제4연에서는 남은 홍시나 상처 난 감에 대한 새의 배려이다. “울 수도 없는 나무”의 애절함을 “새의 눈매”에서 화자는 읽게 된다. “감빛 물든 간절한 맘 홍시 끝에 남겨 두고” 떠난 새에 대한 안도는 절정에 도달한다. “푸드득, 깃털을 떨구고 간 하늘 한켠 따뜻하다”는 데에 와서는 화자의 해피엔드를 엿볼 수 있다.

유순덕 시인은 그의 당선소감에서 초정 김상옥 선생님의 아픔의 미학 사상을 깊이 사랑한다며 앞으로의 시의 길에 있어 “아픔과 괴로움, 아름다움의 슬픈 종교의 삼위일체를 깊이 새기며 노력하겠”다고 했다. 위의 시조는 ‘아픔’의 현상을 미의 시학으로 이끌어 낸 값진 시이다.

이 시조는 그의 옛집에 그가 “사랑하는 몇 백 년 된 늙은 감나무”를 통해서 얻은 시라 한다. 배경을 수용하는 통찰력과 시적 상상력 그리고 시적 구성력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수작의 시편을 보게 되어 기쁘다. 감과 감나무는 새와의 갈등에 집중되고 있다. 화자는 그 무대를 관전 평하였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선정 평에서 “의식의 지향에 어울리는 언어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시적 의장이 두드러진다. 적절한 행갈이를 동반하여 생동하는 리듬을 형성하는 방법도 수준이 높다. 무엇보다 비유와 이미지의 곡절이 구체적인 실감을 유인하여 감동을 자아낸다. 삶의 지각하는 감각이나 태도가 진지하고 진실한 어조로 나타나고 있다. 마음의 율동을 형성하면서 열린 형식을 창조하였다”고 했다.

유순덕의 위의 시조에서, 시를 써내는 터치마저 잽싸고 민감한 데에 대해 한 번 더 박수를 보낸다.

 

 

김보한 시민기자·시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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