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통합돌봄, 마을에서 움트다>

①“밥 열 술이 한 그릇 되다”
②“동갑내기 세 할머니 한 집 살이”
③“안심마을에서 이뤄지는 통합 돌봄”
④“우리는 모두 돌봄 브로드캐스터”

태조 왕건이 한숨 돌렸던 곳, 천 년이 흘러 안심마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이 됐다.
안심마을에는 어린이집, 방과 후 학교, 어린이도서관, 식료품점, 카페 등 20여 개의 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사회적기업·마을기업·비영리민간단체·사회복지법인이 모여 있다.

스스로의 수요를 공동체의 수요로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마을공동체

“제군이 패배함으로 왕건이 난을 피해 한 줌의 땀을 식히고 숨을 돌리니, 이곳을 안심(安心)이라 불렀다”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 대구·경산 시민들에게 통상 반야월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20년간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온 마을공동체가 있다. 태조 왕건이 한숨 돌렸던 곳, 천 년이 흘러 안심마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이 됐다.

안심마을에는 어린이집, 방과 후 학교, 어린이도서관, 식료품점, 카페 등 20여 개의 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사회적기업·마을기업·비영리민간단체·사회복지법인이 모여 있다.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던 장애·비장애 아동들은 어느덧 성인이 돼 직장 동료가 됐고, 청년이었던 부모들은 눈가의 주름살이 하나둘 생기며 아직도 마을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안심마을공동체의 20년의 발자취는 ‘한사랑어린이집’과 함께 시작했다. 당초 장애아동을 보육했던 한사랑어린이집은 2003년 안심마을로 이전 후, 장애·비장애아동 통합어린이집으로 전환, 장애를 향한 치료적 접근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비장애아동의 건강한 동반성장을 강조했다.

여기에 부모들도 힘을 실었다. 지난 2008년 어린이도서관 ‘아띠’를 개관, 주중에는 엄마들이, 주말에는 아빠들이 돌아가며 도서관을 관리·운영했다. 어린이도서관의 성공적 운영은 기폭제가 돼 방과 후 마을학교, 생활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스스로의 수요를 공동체의 수요로’ 확장한 족적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취학 전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의 비전, 이는 어린이도서관과 방과 후 학교로 이어졌고, 일자리까지 연결돼 자립하는 꿈을 실현했다.

‘안심협동조합-땅과 사람이야기’는 안심마을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을 한다. 
이곳은 로컬푸드를 지역 주민에게 공급하며 카페를 통해 장애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 주민 동아리 활동도 지원한다.

‘안심협동조합-땅과 사람이야기’
법 제정 이전, 마을커뮤니티 형성

안심마을에는 장애아동과 그 가족을 비롯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다양한 조직이 있다. 그중 ‘안심협동조합-땅과 사람이야기’는 마을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을 한다.

주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안심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기 전, ‘안심주민생활협동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발족해 주민과의 소통에 앞장섰다. 친환경 로컬푸드를 통해 지역 주민을 만나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장애·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행복한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꿈을 담았다.

지난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자 이듬해 협동조합으로 전환, ‘땅 이야기’(로컬푸드 매장)와 ‘사람이야기’(카페)를 운영하는 중이다. 이곳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공급하며 공동구매가 이뤄진다. 또한 카페를 통해 장애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주민 동아리 활동도 지원한다.

법과 정책이 뒷받침되자 안심협동조합은 더욱 탄력을 받았고, 조합을 통해 아동 돌봄, 장애 돌봄, 어린이 공동육아 등으로 주민들이 모일 수 있었다. 조합의 성장과 함께 안심마을도 성장한 것이다.

안심협동조합을 비롯 안심마을의 조직들은 처음부터 조합을 만들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수요를 마을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법이 제정되는 타이밍을 만났고, 공동체의 수요를 충족하는 법인의 형태에 맞게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속가능 안심마을공동체…민관 거버넌스 必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힘내라 넥스트 안심!”

안심마을 축제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안심마을 축제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인심마을은 초창기부터 자립적인 조직체들로 구성돼왔기에 재정적인 면에서 지자체와의 직접적인 연계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확장된 마을의 규모를 생각할 때, 이제는 민·관 거버넌스(협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 조직이 마을에서 재밌게 살아왔지만, 더 많은 사람이 누리려면 시스템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예컨대 민·관 거버넌스를 통해 ‘통합돌봄센터(가칭)’가 건립되면, 지역사회통합돌봄의 거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으면, 처음에 부모는 막막할 따름이다. 정보 하나 없이 갈 곳 없는 이들에게 ‘통합돌봄센터(가칭)’과 ‘안심마을네트워크’의 연계는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경험으로 부모와 면담을 통해 조금씩 해결, 노인돌봄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통합 창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심마을공동체 초창기 구성원들도 이제 나이를 꽤 먹었다. 이들은 다음 세대가 바톤을 이어받아 언제나 그랬듯 마을에서 즐겁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이에 화답하듯 안심마을의 다양한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 새로 이주해온 청년들은 지난해 5월 ‘다음 세대 안심을 위한 청년 모임’을 만들었다. 장애·소수자·교육의 영역에서 열정을 품은 청년들이 안심마을에 어떤 새바람을 불러일으킬지 몹시 기대된다.

“대구 안심마을공동체는 자치·인권·협동을 지향합니다”
'안심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 '마을과자치협동조합' 이화선·이정미 이사

안심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가운데)과 마을과자치협동조합 이화선(왼쪽)·이정미(오른쪽) 이사가 활짝 웃고 있다.
안심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가운데)과 마을과자치협동조합 이화선(왼쪽)·이정미(오른쪽) 이사가 활짝 웃고 있다.

대구 안심마을은 생각보다 큰 지리적 면적과 방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어 샅샅이 살펴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연락이 닿은 안심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 마을과자치협동조합 이화선·이정미 이사와의 만남은 안심마을의 기나긴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들은 안심마을이 걸어온 여정 속에서 초창기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이다.

안심마을은 행정의 관리나 민간 차원의 컨트롤 타워 없이, 각 구성원이 자생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장애·소수자·교육·먹거리 등 공동체의 수요를 충족해 왔다. 그렇기에 모든 조직을 아우르는 공동의 목표는 꼽을 수 없지만, ‘자치·인권·협동’이라는 지향점을 바라본다. 마을과자치협동조합 이정미 이사는 이 공동체성이 잘 드러나는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 마을의 발달장애 아동이 횟집 수족관을 파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물고기들이 밖으로 나와 상품성이 떨어져 모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심마을은 이 문제를 공동체의 마음으로 해결했다. 본인이 내고 싶은 만큼 비용을 지불하고 잔치처럼 횟집에서 마을회식을 열었다. 안심마을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고 각자 생각하는 이슈도 다르지만, 우리 마을의 공동체성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소개했다.

이화선 이사는 안심마을공동체의 관계망을 촘촘히 하는 ‘안심마을사람들(안심마을네트워크)’의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초창기에 비해 단체가 늘어나면서 소홀해진 관계를 회복, 매달 정기회의를 가지며 마을 축제를 기획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화선 운영위원장 또한 자녀 교육을 위해 한사랑어린이집을 선택, 장애·비장애아동 통합돌봄에 동참했던 엄마다.

그는 “돌봄이라는 키워드는 안심마을 초창기부터 지역사회에서 풀어나갔다. 한사랑어린이집과 어린이도서관 ‘아띠’처럼 지역 주민과 교류하며 자연스레 ‘서로 돌봄’이 이루어졌다. 만약 이것이 복지 시스템에 의한 캐어의 개념으로 진행됐다면 지금의 마을공동체성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심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은 “상상해보면 마을공동체 활동을 30~40대부터 해온 사람들은 10년 뒤 은퇴, 직업적으로는 손을 때야 한다. 아마 황혼기에 접어들면 마을 구성원들이 노인돌봄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껏 각자 수요에 따라 조직을 형성했듯, 노인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 않겠나. 노인공동생활을 꾸리거나 이 또한 조합을 통해 돌봄자를 고용하는 다양한 모습을 그려 본다”고 덧붙였다.

세 사람은 통영지역의 마을돌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각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공동체로 모인 사람의 성향이 다르기에 대구 안심마을의 사례가 모든 마을공동체의 모델이 될 순 없다. 그저 주민들이 마을에서 이뤄 나가고 싶은 일을 모으고 하나씩 실행해 나가면 된다. 통영은 행정에 의해 마을마다 물리적으로 좋은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해 주민이 주인의식을 갖고 다양한 활동의 장을 펼치면 좋겠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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