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계의 혁명 해수점 정숙희 대표, 이색 도전기
통영바다 건너 한국 넘어 세계에서 러브콜 쇄도

 

통영=명품. 이 공식은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온 명성이다.

하지만 임금도 선호한 조선 제1의 통영갓과 통영나전칠기, 통영장석이 서양문물 이입으로 사양화 길을 걷듯이, 통영누비=제1의 혼수품에서 서양 침구류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 현실이었다.

해수점 정숙희 대표.
'아름아름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으로 간판을 바꿔단 통영누비가 이제야 비로소 혁명시대를 맞았다.

통영누비가 기획자와 화가, 그리고 여러 유명 디자이너와 만나면서 단순 침구류에서 명품 가방과 웨딩드레스, 통영바다와 미를 듬뿍 담은 스토리가 있는 명품의 향연으로 변신했다.

통영누비는 통영바다를 건너 한국의 중심 서울, 섬유의 중심 대구에서의 손짓을 넘어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러브콜을 보내는 패션의 아이콘 급성장하고 있다.

그 변신의 주역을 손꼽으라면 단연 통영바다를 담은 해수점 정숙희(44) 대표다.

한 사람의 기획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지난 7년간 몸소 보여준 정 대표.

통영 출신인 그는 스물넷이라는 약간 이른 나이에 은행원인 남편과 연애결혼, 남편 직장 따라 13년 전 통영을 떠났다.

고성 거제 등을 거쳐 울산에 정착한 그녀는 울산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거쳐 대우건설 부동산 이미지 컨설팅은 물론 직접 분양회사를 차려 34개짜리 빌라를 통째로 파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시름시름 통영바다 앓이는 시작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다 7년 전 부부는 아이 셋을 데리고 귀향했다.

통영을 알기 위해 시청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통영시티투어에서 일하다 "통영을 제대로 한 번 팔아보자"는 통 큰 배짱으로 온라인-오프라인 해수점을 동시에 만들었다.

통영바다를 상징하는 이 상점은 통영멸치 만으로도 1억 5천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그는 누비에 눈을 돌렸다.

"바로 이것"으로 주목한 것이 통영누비다.

"누비는 대중성이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 지역에 오면 지역 특산물을 반드시 찾게 돼 있는데 작은 누비 지갑과 도장집 등 1천원에서부터 1백만원에 이르는 것 까지 다양한 상품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서 누비에 눈도장을 확 찍게 됐어요" 한다.

먼저 통영누비 공장을 전부 답사하고 솜씨가 제일 좋은 조성연 장인을 찾아 솜씨와 디자인을 결합하자고 제안했다.

첫 대답은 "NO"였다. 그냥 NO가 아닌 극심한 NO였다. 심지어 "황당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이 점은 조성연 장인 뿐 아니라 전혁림미술관 전영근 관장과의 만남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녀의 끈기와 열정에 반한 이들이 모두 힘을 보탰다. 통영의 최상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상을 지향하기로 결정했다.

단독독점 계약을 체결 후 힘을 합쳐 컨텐츠를 개발하고 디자인을 만들고 통영바다를 건널 준비를 했다.
서울 원단집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니고 샘플을 만드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디자인 유출도 생기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경험이 됐다.

2011년 과감히 주력 상품이던 멸치와 해산물을 정리하고 누비만을 향해 달렸다.

그 열정이 서울시청에까지 소문이 나고 청와대 사랑채에 납품 기회가 주어졌다. CJ그룹에서는 남산타워와 공항에도 납품을 의뢰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침실제품유통기업 (주)이브자리와 단독 계약으로 청와대 사랑채 외국인을 상대로 한 판매만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유보했다. 좀 더 자신있는 제품과 대량 공급 시스템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오랜 생각 끝에 "통영 전통 손누비로 제대로 된 제품"을 콘셉트로 잡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파슨스 뉴욕 출신의 디자이너 SOO LEE(이수련)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통영누비로 졸업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이수련 디자이너가 정 대표의 누비를 보고 바로 가방을 만들어 선물한 것이 서로 인연이 됐다.

그 결과 정영근 작가의 작품에 조성연 장인의 누빔, 이수련 이자이너의 감각이 더해져 정숙희가 기획한 협업이 완성된 것이다.

지난해 통영 전시를 시작으로 그의 행보는 더욱 바빠졌다.

이수련 디자이너에 이어 이상봉 디자이너, 매듭장인 김은영, 장은복 디자이너와의 작업도 계속돼 각종 패션쇼와 작품에 통영누비가 들어갔다.

한국공예진흥원의 관심과 더불어 청와대 사랑채의 제계약, 국내 프랜차이즈 요청은 물론 국비 지원의 프랑스 파리 메숑 오브제 출품 제의, 1억짜리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는 구찌 한국지사장의 통영해수점 방문, 일본에서도 프랜차이즈 해수점 제안을 받은 상태다.

현재 법인화를 위해 해수점 내에 가방 전문 브랜드 누비올, 침구류와 리빙류를 생산하는 통영명품누비-수 브랜드를 세분화했다.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꿈길을 누비다'는 해수점 통영명품누비-수의 작품이다.

전통누비에서 현대적 감각의 소품들까지를 모토로 하는 이번 전시는 전영근 화가의 그림을 배경으로 만든 이불을 접어 통영 바다를 시각화한 누비천이 전시되고 넥타이와 가방 등의 악세서리가 바다위의 갈매기처럼 전시돼 찬사를 받았다.

조성연 장인이 만든 한실 침구류에서 일상의 피곤함을 잠시 잊고, SOO LEE 디자이너의 누비옷과 가방은 남들과의 다른 럭셔리한 삶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통영을 제대로 만들어 세계에 팔기 위한 디자인 등록과 통영누비 명품 패션쇼를 향해 정 대표는 다시 달린다.

1억짜리 가방을 생산하는 구찌 보테가 베너타 이종규 대표는 "통영은 작지만 통영누비는 이태리 장인이 만든 것 보다 세계 명품이다. 해수점 정 대표의 기획력은 충분한 자질을 가졌다. 통영누비가 세계를 장악할 날을 기대한다" 는 말을 남겼다.

머지않아 정 대표의 통영누비가 세계를 누비는 꿈같은 일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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