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박기호, 세계 7대륙 최고봉 세 번째 원정길…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간다

가왕 조용필의 노래 탓일까?

언제부턴가 한국인에게 '킬리만자로'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단어는 '표범'이 돼 버렸다. 하지만 직접 가 본 사람은 안다. 킬리만자로에는 표범이 없다는 사실을.

해발 5,894m,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놓은 산봉우리인 킬리만자로는 열대지방이지만 정상 부근엔 만년설이 쌓일 정도의 저온의 환경이다. 애초부터 표범이 살 수 있는 기후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굳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찾아 '인증샷'을 찍고 오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에 도전 중인 통영 산악인 박기호씨.
통영 산악인 박기호(43)씨다.

1993년 네팔 로부제(6,124m) 등정을 시작으로 미국 요세미티(단일암벽 1,050m), 히말라야 촐라체(6,440m), 북미 최고봉 맥킨리(6,194m)와 유럽 최고봉 엘브르스(5,633m)까지 총 7차례의 원정길을 모두 성공시킨 통영 최고의 산악인이다.

국내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그가 맥킨리, 엘브르스에 이어 세계 7대륙 최고봉 정복을 향한 3번째 원정 대상으로 킬리만자로를 택했다.

오는 25일 인천을 출발, 뒷날 현지에 도착해 곧장 등정에 나서는 9박10일 일정으로 꾸렸다. 산친구로 인연을 맺은 경북 구미의 한 산악회 18명과 동행한다.

"한 번 웃자고 한 얘기예요. 진짜 표범이랑 인증샷 찍으러 가는 건 아닙니다. 하하".

철근도 떡볶이처럼 씹어 먹을 것 같던 스무살 청춘의 대학 신입생 시절, 밴드동아리 앞을 서성이다 당최 자신이 없어 등 떠밀려 들게 된 등산부. 그곳에서 산을 만났다.

"제가 좀 둔해요. 머리 회전도 느리고. 근데 등산부 선배를 따라 처음 산에 갔더니 머릿속이 시원해지면서 시쳇말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데요. 산 밑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그런 것들이 마구 밀려오는데 이거구나 싶었죠".

산이 주는 맛과 멋에 푹 빠졌다. 틈만 나면 산으로 갔다. 그러다 1993년 네팔 로부제로 첫 원정길에 올랐다.

"1년 넘게 준비했는데 처음 떠나는 원정이라 그런지 오로지 두려움 밖에 없었어요. 부끄럽지만 출발 전날엔 친구들과 소주 한 잔하면서 무섭다며 울기까지 했죠".

하지만 출발 전 걱정과 달리 로부제 등정은 쉬웠다. "사실 로부제는 네팔에서도 제일 낮은 등급의 봉우리예요. 흔히 말하는 초보자 코스정도죠. 날라 다녔어요".

과한 자신감이 생겼다. 3년 뒤 북미 최고봉 맥킨리로 갔다.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정상을 밟았다.

그런데 맥킨리에서 20년 넘게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점 하나가 발견됐다. 좌우 턱관절의 밸러스가 맞지 않는 악관절 이상이었다. 이는 고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겐 치명적인 결함요소다.

고도가 높아지면 기압은 낮아진다. 때문에 평지에선 나타나지 않던 몸의 이상증상이 산 정상에 오를수록 발현되는데 악관절 이상은 산소공급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가뜩이나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산소결핍은 자칫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3천미터 정도 지날 즈음부터 숨이 너무 가뿐거예요. 일단 등정은 마쳤어요. 귀국해서 진단을 받고선 악관절 이상을 알았죠. 그래도 맥킨리에선 두발로 걸어 내려왔는데, 2003년 가이드겸 해서 따라나선 로부제 재등정에선 아예 기절해 버렸죠. 걸을 땐 의식적으로 숨을 쉬니까 괜찮은데 잠잘 땐 무의식 상태잖아요. 순간적으로 산소가 부족했나봐요. 뒷날 깨어나지 못한 채 하루정도 기절해 있었죠".

이후 악관절 밸런스를 맞춰주는 교정기(스플린터)를 장만했다. 교정기를 장비해도 위험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해서라도 가야했고 가고 싶은 게 '산'이었다.

지난해 유럽 최고봉 엘브르스 정상에 선 박기호씨.

어느 순간 삶의 '0순위'가 돼버린 산 때문에 직장을 잃을 위기도 있었다.

대학에서 어류 양식학을 전공, 졸업 후 종묘생산업을 시작했었다.

"일의 특성상 1년에 2~3달 정도 휴식기가 있어요. 몇 개월 열심히 일해서 목돈 마련하고 쉬는 동안 원없이 산을 다닐 수 있다는 계산이었어요. 정말 딱이다 싶었죠. 근데 웬걸요. 하루도 제대로 쉴 날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 접고 2005년에 취직한 곳이 경남항운노동조합 통영연락소였다. 이 곳에서 통영항으로 입항하는 화물선이 싣고 온 각종 물자를 하역하는 일을 했다.

"체력훈련은 기본이고 영하 20℃ 냉동 화물칸에선 저온 적응훈련도 할 수 있어요. 산악인들에겐 안성맞춤 이죠(웃음)".

문제는 해외 원정 등반의 경우, 짧아도 열흘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갓 입사한 신참이 열흘이란 시간을 비우기란 쉽지 않았다.

"입사 1년이 조금 지나서 2006년에 맥킨리를 다시 가게 됐어요. 차마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추석연휴를 껴서 14박15일로 다녀왔죠. 그렇다고 소문이 안나겠어요".

결국 한달 근신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찾아왔다.

"서울 항운노조 본소에 통영 향인분이 계셨나 봐요. 평소 '한산신문'을 보셨는데 당시 신문에 났던 저의 등반 기사를 보시고는 항운노조의 명예를 빛냈다면 포상을 지시하셨죠. 당연히 징계는 당장 풀렸고 대신 표창을 받게 됐죠".

덕분에 그해 또 한 번의 해외 원정 기회를 얻게 됐다. 지구상에서 최고 큰 바위로 일컫는 요세미티 원정이었다.

당초 꾸려진 원정대는 기호씨를 포함해 5명이었지만 출발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이런저런 이유로 3명이 포기해 버렸다.

남은 사람은 단 2명뿐, 공교롭게도 남은 1명이 20대 여성이었다. 그것도 시집을 안간 처녀였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탓에 아내가 극구 반대했다.

"제가 포기를 잘해요. 추진력도 별로구요. 근데 산은 포기가 안되더군요. 특히 요세미티는 처음 산을 배울 때부터 꿈꿔오던 대상이었어요. 아내는 '절대 안된다'고 하고 전 '죽어도 가야겠다'고 대판 싸웠죠. 실랑이 끝에 '그럼 같이 가던가'했더니 단박에 '그래 가자'하더군요".

결국, 아내가 요세미티 원정대에 합류했다.

"사실 당시 아내가 둘째를 가졌어요. 3개월 정도였죠. 일반 산행도 아니고 요세미티는 완전 암벽등반이예요. 암벽에 매달려 식사하고 잠도 자야 해요. 아내는 그래도 가겠데요. 홀몸이 아니라 절반 정도에서 포기해야했죠. 대신 제가 아내 몫까지 다했어요".

이번에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하면 7대륙 최고봉 중 3곳을 그의 발아래 두게 된다. 물론, 통영출신 산악인으로선 최초다.

남은 건 아시아 최고이자 세계 최고인 에베레스트(8,848m)와 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 남극 빈슨매시프(4,897m), 남미 아콩카구아(6,960m) 등 4곳이다.

기호씨는 남은 이들 모두를 평생의 목표로 잡고 끝없이 도전해 나갈 작정이다.

결코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다. 다만, 변변한 스폰서가 없는 탓에 비용이 늘 걸림돌이다. 지금도 원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이 쉬는 토, 일요일이면 날품팔이 시장에 나간다. 그렇게 1년여 를 쉼 없이 움직여야 빠듯하게 예산을 맞출 수 있다.

"벌이가 넉넉지 않다보니 부업을 해야 해요. 그래야 아내 눈치도 덜 받겠죠? 킬리만자로까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나머지 원정 비용이 만만찮아요. 에베레스트는 입산비용만 1억원 상당에 달하죠. 그래도 포기란 없어요.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봐야죠. 내 꿈이니까".

올해로 산악인생 23년째, 가장 인상에 남은 풍경을 물었다. 답은 의외였다.

"세계의 유명산을 두루 다녀봤지만 그 곳만한 데가 없었던 것 같네요. 비온 뒤 설악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정말, 말을 잃게 만들어요.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세요".

엘브르스 등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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