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는 죽여도 돼”

윽. 어디서 많이 듣고 보아왔던 문구다. 말 그대로 ‘빨갱이는 그냥 죽여도 된단다. 빨갱이는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숙적인 바퀴벌레 쯤 되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란. ‘시쳇말’로 포괄적으로 공산주의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고, 구체적으로는 전(全)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나 개인들을 말한다. 예컨대 ‘좌경 종북 세력’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또 어찌 보면 북한체제에서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역시 빨갱이가 되는 셈이다. 본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김정은의 통치 그늘 아래에서 이유야 어찌됐든 표면적으로는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보내는 걸 봤으니까 TV화면상으로...

그런데 말이다. 참으로 요상스럽고 웃기는 것은. 인류가 ‘4차 혁명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왕조시대에 버금가는 북한식 통치방식을 고무 찬양하고 체제전복을 꾀하려는 대한민국 내부의 종북 빨갱이들은 도대체 어떤 인종이길래, 야만과 폭압의 김정은 체제에 덩달아 칼춤을 춘단 말인가. 종북 좌파들을 주장하는 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소위 대한민국 ‘지식인 그룹(교수· 대학생· 대학원생)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진보적 노동자 계급들, 그리고 이번에 촛불을 든 시민들들. 그리고 지상파 언론과 언론인, 정치인, 종교인, 심지어 탄핵에 참여했던 ’법조인‘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사람들 이란다.

같은 핏줄과 친족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인민들을 오직 자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만 여기는 약독한 독재자 김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북한 인민들을 ‘자아 실존적 차원’에서 객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막 되먹은, 이 ‘똥돼지’ 같은 놈에게 대한민국 빨갱이들이 그를 추종한다? 어째 좀 사변적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고, 엄청 겉돌고 삐걱거리는 이 꼬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뭐지.

대한민국 뉴(New)빨갱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머릿속부터 뼛속까지 철저히 자본주의화 된 인간 군상들인데, 생소하고 낯설기 짝이 없는 공산주의의 제도와 규범, 심지어 의식까지도 ‘사회주의인간화’로 되돌아가겠다고? 어쩐지 말이 안 된다. 만일 이 개연성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면, 이들은 ‘사상적 금치산자’ 이거나 고도의 ‘사유체계’를 갖춘 자들로서 북한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변혁의 주체’들이란 말인가? 이 부분 역시 암만 생각해도 논리적 비약에 따른 “구성의 오류‘를 피할 길이 없다. 필자가 이렇게 ’자의적인 해석‘을 주절이 늘어놓는 이유는, 늘 특정시기에 ’빨갱이‘ 운운하는 자들의 ’진원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젠 실체 있는 유령처럼...

똥 누고 밑 구녕 안 닦는 것만큼 찝찝함도 없다.

되풀이 되는 ‘순환논리의 오류’는 차치하더라도.<가짜뉴스>가 판치고 실체 없는 ‘늑대의 출몰’을 목놓아 외쳤던 ‘양치기 소년’의 우화같은 소동이 이직도 벌건 대낮, 서울 한 복판에서 횡행하며 돌아다닌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가짜 인터넷 뉴스>를 만들어 배포하는 자들에 의해 현혹된 60∼80대 노년층은 ‘근거 없는 실체(악의적으로 편집된 공짜 신문)’가 ‘팩트(Fact)’인 양 광분하고, ‘구국의 결단’을 시도 한다느니 하면서, ‘아스팔트 위의 피 바닥’을 거론하는 그 자체가 이젠 역겹다 못해 딱할 지경이다.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의 ‘에세이(Essay)’ 표지 제목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한 대목으로 여겨질 만큼 안쓰럽다. 이 지면을 통해 필자는 노년층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후기 현대의학계에서도 불변적으로 진단하는 인간의 뇌(腦)구조는 물리적인 나이가 들면 들수록 판단능력과 인지(認知능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퇴조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사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힘든 노년층들에게 ‘기존 신문 형식과 똑같은 ‘절차와 활자내용(그럴 듯하게)’을 수록하고, 또 시시각각으로 가짜 SNS 내용들이 본인 휴대폰으로 전송되면 고마움(?-스스로 소외된 세대라고 인식함-)을 느껴 곧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찰해보면 ‘악의적인 선동’을 펼치는 자들은, 노년층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정치적 반사이익’을 꾀하려는 이 ‘잔당(殘黨)’들이야말로 ‘빨갱이들의 소행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과거 한국 전쟁 당시 빨갱이들은 ’붉은 완장(하빠리들)‘을 차고 동네 곳곳을 휘 젖고 돌아다니면서 양아치(폭력세력)‘들과 규합하여, 자기 ’입맛(?)‘에 따라 주민들을 ’인민재판식‘으로 처단한 사례들을 떠 올려보라. 이게 어디 인간의 표피를 두르고 할 짓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번에는 ’극우‘들이 벌건 대낮에 흉기로 무장하고 그것도 대한민국 ’공권력‘ 앞에서, 이렇게 ’샤우팅(Shouting)’했다. “빨갱이들을 잡아 때려 죽이자!” 누가 빨갱이 인가?. 그들의 눈에는 ’빨간 칠을 한 얼굴이 보인단 말인가? 전자는 실제 살인 행위를 저지른 자들이라면, 후자는 살인 미수에 가까운 공갈 협박과 선동 혐의다. 샤이 보수들이여!(Shy tory – 수줍은 보수 지지자들이란 말로, 영국에서는 숨은 ‘보수 표’를 일컫는 말로 사용됨) 그대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겠는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제왕적 권력을 행사했던 대통령도 구속되는 마당에, 존재한다면, 일개 ‘한줌’도 되지 않는 이 땅의 종북 좌파들이 대한민국체제를 전복시킨다고?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위대한 자유대한 국민들을 뭘로 보고, 이 ‘찌질한’ 종북 좌파들에게 놀아난단 말인가. 혹자는 필자에게 구닥다리 유물에 불과한 식상한 ‘빨갱이 개론학’을 들고 나온 ‘불편한 진실’에 대해 ‘재수’ 없다고 ‘왕소금 세례’를 퍼 부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을 어찌하랴. 마치 ‘똥 누고 밑 구녕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함이 묻어 있음을’... . .

빨갱이 고장(?)과 왕실장 김기춘.

빨갱이(종북좌파). 1960∼80년대 ‘반공교육’이 ‘정점’을 찍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 ‘정부의 보도지침’에 따르면 인혁당사건, 동백림사건, 민청학련사건, 광주사건, 부림사건, 등이 이른바 북괴의 지령을 받은 대한민국 빨갱이(간첩)들의 난동 사건이란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오래 전부터 ‘대법원’에서 모두 ‘국가특권 지배층’에 의해 조작 날조된 사건이라고 판명했었다. 말 그대로 온 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사건들이다. 정치학 용어로 전형적인 ‘정치적 상징 조작에 해당된다. 시대는 바야흐르 너도 나도 숨쉬는 이 시·공간에서 한 차례 ‘대폭풍’이 일어났었다. ‘종북좌파 척결로 명명된 이 ’시나리오‘는 일명 ’문화계 블랙리스트. 전직 대통령도 13가지 사건 항목 중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구속 수감된 ’죄질‘에 포함된 사건이다. 핵심 주도자였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해당 똘마니 장·차관들은 줄줄이 은팔치(?)를 차고 차디찬 감방으로 속속 직행했다.

정부(그들의)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예술인(단체나 개인)들은 여지없이 좌파로 찍혀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던 것이다. 예로부터 건강을 위해 식탁 위의 반찬도 골고루 먹으라고 했건만, 이건 지독한 ‘편식(?)’위주의 식사가 아닌가. 예술이 무엇이든가? 미적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들의 창조활동이라고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다. 과거 조선의 ’사대부(士大夫)‘들도 ’육예(六藝)‘를 갖추는 것은 ’인간적 결실‘을 맺기 위한 ’기본 교양‘의 일종으로, 인격도야의 ’수양론‘으로 삼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예술은 학문과 마찬가지로, ’비판 대 반비판‘으로 인간행위의 총체적인 요소를 포함하여, 그 속에는 ’리얼리티(Reality)’를 중심으로 ‘풍자’와 ’알레고리(Allegory)‘등으로 하여금 진정 가치 있게 나아가야 할 ’나침반 역할‘을 제시해왔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술의 본질이 뭔지를 제대로 알기나 했던 것일까? 입맛에 따라 누구는 ’좌익‘이 되고 누구는 ’우리편(우익)‘이 되는 세상이었다. 참으로 단조로운 ’패튼방식‘, 즉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왕실장 김기춘.

그가 누구이든가 이 지면에서 그의 ‘프로필(Profile)’을 거론하는 자체가 역겹다. ‘건강한 시대나 사회’는 매 순간마다 빛의 굴절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는 것처럼 인간의 인종과 의식, 그리고 개성들을 ‘다양성’의 입장에서 인정하고 존중한다. 즉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정신- Tolerantia)’에 가깝다, 그런데 위에서 잠시 언급한 ‘한국현대사’에서 이처럼 단조로운 ‘간첩단 사건’을 몰아갔던 인혁당, 동백림, 민청학련, 조작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그가 중심에 서 있었다. 대(代를)이어 충성했던 그는 이제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져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말았지만, 이번 ‘국회 청문회’에서 보여 줬던 그의 ‘세치 혀’는 국민들로부터 ‘공분(公憤)’을 사기에 충분했다. ‘거짓’과 ‘오만과 편견’, ‘기만전술’까지 그 어느 하나라도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새로 얻은 별칭 ‘법꾸라지(신조어로 향후 국어사전 표제어로 실릴 듯)까지... 그는 불쌍하고 죄 없는 지식인들을 사형으로 몰아갔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국민 ’홍조근조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권력의 둥지’속에서 승승장구했다. 원래 ‘빨갱이의 수뇌부와 친일파’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단다. 과거 해방공간(1945∼50년)은 ‘야만과 폭압의 세월(무질서와 혼돈)’이었다. 이들이 그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시류에도 잘 편승해야하고 또 처세술에도 뛰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야만의 시절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이 왕실장도 예외는 아닐 듯 싶다. 과거 그의 행적(유신헌법)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처세술과 ‘간과 쓸개’에 잘 붙었는지 알 수 없지만, 더욱 한심한 것은 요즘 극우세력들은 이 자를 향해 ‘구국의 충신’ 이라 추켜세운다. 아마도 대를 이은 충성대가를 인정받은 것이리라. 김기춘은 ‘공석’이든 ‘사석’이든 박근혜에게 ‘대통령님’이 아니라. ‘주군(主君)’이라 불렀단다. 지금 대한민국이 봉건사회로 회귀했단 말인가? 아니면 평소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봐 왔던 것일까?

각설하고, 여하튼 이분의 ‘단순논리’ 혹은 ‘궤변’을 풀어보면 참으로 씁쓸하다. 역설적이게도 세계적인 음악의 거장이자. 통영의 자랑스런 인물, 윤이상 선생님도 이분의 표현대로 라면 빨갱이가 된다. 60년대 후반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동백림 사건은‘ 윤선생님께서 옥고를 치른 후 그를 국외(독일 등지)로 추방시킨 결정적인 배경이 된다 이 거장은 살아 생전 “한시도 내고향 통영 앞 바다를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다고 했다” 매년 ’통영 국제 음악제‘가 통영 ’남망산‘ 공연관에서 열리면 세계적인 음악 거장들이 직접 통영을 찾아 ’바이올린 협주‘와 이분 ’교황곡‘을 연주한다. 필자가 다녔던 초등·중등·고등학교 ’교가‘도 윤이상 선생님께서 작곡하셨다. 그런데 이 ’빨갱이 음악선생(김기춘의 논리)‘은 통영을 너머 전 세계가 그를 추모하고 고무 찬양한다. 너도. 나도. 대다수 통영시민들도 윤선생님의 ’음악세계‘와 ’인품‘을 고무 찬양한다. 지금 통영에는 윤이상 선생님의 <기념관>과 <길거리>도 있다. 이 정도 되면 내 고향 통영도 ’빨갱이 고장(?)‘이 아니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

<다음 주에 ‘서 박사의 세상 돋보기’ 2탄이 연재 됩니다.>

 

서정욱
철학박사, 前.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외대/한양대 강사, 現. 「대치위너스카이」입시학원장, 現. 「통&박」대입전략연구소장., 現. ㈜요술지팡이(동영상 플렛폼)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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