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3일 통영시 항남동 한 길모퉁이에 작은 빈소가 차려졌다. 그토록 오고 싶어하던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78세의 나이로 타계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한 빈소였다. 당시 윤이상의 빈소를 차린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기관에서 부정적이고 조문하는 이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던 때였다. 김상옥 시인이 당당하게 위원장을 맡았다. 선생을 고향에 오지 못하게 한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빈소까지 차리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더 짓게 된다며 고향 후배로써 할 도리를 해야겠다며 빈소를 차리게 했다.

또한 선생이 고향땅을 밟지 못한 것이 끝내 후회돼 미륵산 정기를 타고 어릴 적 뛰어놀던 용화사 흙이 독일로 보내져 선생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그런 후 세월이 흘러 선생을 기리는 선생을 기리는 음악제가 열리고 음악당이 세워졌지만 아직도 선생의 이름은 없다. 그의 동상도 없다. 그가 자랐던 생가터 옆에 '윤이상메모리홀'이 그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로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조용하게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묘소를 방문한 소식이 들렸다. 지난 5일 김정숙 여사는 베를린 인근 스판다우의 가토우 공원묘지에는 있는 음악가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찾았다. 올해로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은 김 여사는 윤 선생의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김 여사는 "살아생전 일본에서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시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겨울이면 붉디붉은 꽃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열매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던 동백나무가 선생을 지키게 됐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라고 위안하지만 못내 고향에 모시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모든 게 용서되고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곳인 고향인데도 그를 감싸 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를 기리는 행사가 제대로 열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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