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산신문 29면에 전(前) 시장님의 '고마운 인연과 통영의 꿈' 칼럼을 읽고 덧붙이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됐다. 3가지 projects에 몇 가지를 첨가한다면.

7월 초, 발갛다 못해 하얀 햇살은 끝이 뾰족한 송곳처럼 따갑다. 나는 그 햇살을 당포에서 맞았다. 왜냐? 지금으로부터 425년 전 4월, 벌떼처럼 현해탄을 넘은 왜군들이 부산포를 순식간에 점령했겠다. 경상좌수사는 지레 겁부터 먹고 도망쳤고, 급보를 전해들은 경상우수사도 전함들(타고 도망칠 전함만 남기고)과 무기들을 수장시켜 버렸다. 그해 5월 6일에 일본 수군이 당포로 쳐들어왔다.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축성한 당포성은 작지만 지형을 이용해 지어 견고했다.

하지만 허무하게 함락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이, 강풍에 쓰러지는 볏잎처럼 죽었고, 부녀자들은 겁탈을 당했다. 그 보고를 받은 이순신이 거북선 2척을 앞세워 동진(東進)하여 요충지 당포성을 탈환했겠다. 6척의 함선을 가진 원균부대와 함께.

그런 아픔과 슬픔이 있는 당포성. 예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도 일부가 재현돼 있어 안타까우면서 반가웠다. 당포성이 이럴진대 통영성은 어떠한가? 현재. 이 성이 비록 이순신 장군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조선 수군을 총 지휘한 수군통제사들이 조선말까지 근무했었고, 12공방의 예술을 뿜어낸 곳이 아니던가? 다행스럽게  12공방이 재현되자 기존의 세병관과 함께 자못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한산대첩의 현장-한산만을 내려다보게 됐다(철빔 주차장이 매우 눈에 거슬리지만).

통영의 정체성을 확고히 살리려면 이 통영성이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 당장, 전부가 안 되더라도 북포루에서 양쪽 날개 같이 동서로 갈라 내려와, 현재 서포루와 토성고개까지라도 복원해야 한다. 나머지 부분은 점차로 수년, 아니 백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게 첫 번째라면 다음은 나전칠기의 재(再)르네상스를 위해 나전칠기국립박물관을 통영에 건립해야 한다. 낙랑시대 때부터 시작된 옻칠문화를 이어 받은 고려는 왕의 명령으로 나전칠기가 국가적 사업이 됐다. 그 후 어디에서 제일 부흥기를 맞았나? 바로 통영이다.

12공방에서 출발해 일천구백칠팔십대는 그야말로 호황이라 통영 경제가 나전칠기로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폭탄을 맞고 쓰러진 폐허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몇몇 장인들과 그 계승자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박물관을 유치하고, 통영케이블카공사(公社) 같은 통영나전칠기공사를 만들고, 민·관·학 클러스트를 조직해서 높아진 눈의 높이에 맞추어 제품들(작은 관광상품에서 문갑 장롱 싱크대 같은 큰 것까지)을 만들자. 처음부터 잘 되는 일은 없다. 실패도 있을 터. 나전칠기의 재부흥은 통영의 경제뿐 아니라 인구 증가와 대한민국의 미적 문화를 한층 더 높일 게 틀림없다.

세 번째는 매물도의 친환경적 친수하적인 관광지 개발이다. 천혜의 섬 매물도는 우리 통영의 보배이다. 그런 섬을 그리스 산토리니섬처럼 만들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자. 기계에 구속 받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고, 자연과 함께 하는 섬으로 가꾸면 분명히 사람이 주인이 될 터이다.
대소매물도 사이에 보행자 다리를 놓고 크루즈를 들어오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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