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도둑질로 살아가는 아비와 자식이 있었다. 아비가 볼 때 아들의 앞날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았다. 남의 물건을 감쪽같이 도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 심리를 간파하는 데 능숙해야 하고, 속이는 기술이 정교해야 한다.

눈치가 백단쯤은 되어야 하고, 궁리와 조심은 아무리 거듭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는 법이다. 그런데 아들놈은 도둑질의 위험도에 비해 궁리와 조심스러움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리고 탐심이 정교함이나 눈치를 훨씬 웃돌았다. 거기에다 아들은 자신의 도둑질 재주가 아비를 능가한다고 교만을 부리기까지 했다.

어느 날 밤, 아비는 아들을 데리고 큰 부잣집으로 숨어들었다. 곳간으로 간 아비는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소문에 듣던 대로 비단이며 귀한 약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들이 물건에 넋이 팔려 있는 사이 아비는 얼른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도둑이야! 크게 외치며 울타리 옆에 숨었다.

부잣집은 발칵 뒤집혔다. 행랑것들을 비롯하여 집안 장정들이 튀어나와 도둑을 찾아 갈팡질팡 허둥댔다. 집주인 영감은 먼저 곳간으로 달려갔다. 곳간에는 자물쇠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곳간만 온전하다면 다른 물건이야 걱정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심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곳간 안에서 찍, 찍, 찍 서생원 소리가 들렸다. 아니 곳간 안에 쥐가 있다니, 저놈의 서생원이 귀한 비단이나 약재를 쏠면 이크, 큰 낭패가 아닌가. 놀란 주인 영감은 황급히 곳간의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었다. 순간 무엇인가 거대한 검은 물체가 우당탕 튀어나왔다. 마당을 가로질러 튀는 것으로 보아 도둑이 틀림없었다. 도둑이야, 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았다. 주인 영감의 고함소리에 놀란 행랑것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사세가 불리함을 깨달은 도둑은 큰 돌을 찾아 연못에다 훌쩍 던졌다. 그리고 급히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 엎드렸다. 풍덩! 물소리가 밤하늘에 널리 퍼져나갔다. 쫓던 사람들이 우루루 연못으로 달려왔다. 연못에 빠진 도둑이 기어 나오면 잡으려니 벼르고 있었으나 한참 동안 지켜봐도 잠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필경 죽었을 것으로 짐작한 집안사람들은 안심하고 그냥 돌아갔다.

혼비백산, 위기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온 도둑 아들은 아비에게 칼을 들이대며 죽일 듯이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나 도둑 아비는 태연히 대답했다.

너에게 스스로 도둑의 기본 기술을 터득하게 하기 위해 꾀를 낸 것이었다. 곳간에 자물쇠를 채워두었으므로, 네가 겁을 먹고 잠자코 있었더라면 누가 도둑이 들었으리라 의심했겠느냐.

잠잠해지면 내가 데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 지혜를 발휘하여 쥐 소리를 내 주인영감으로 하여금 자물쇠를 열도록 유도하고, 다급해지자 연못에다 큰 돌을 집어던져 사람들의 추적을 따돌려 스스로 위험을 벗어나지 않았느냐.

내가 바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내가 돌보지 않아도 될 만큼 너의 기술이 향상됐음을 알게 되어 오늘 나는 매우 기쁘구나, 하고 빙그레 웃었다.

사숙재 강희맹 어른께서 아들 구손(龜孫)을 위해 '다섯 가지 가르침', 즉 훈자오설(訓子五說)을 지었다. 여색이나 재물이란 작은 것으로도 몸을 더럽히고 집안을 망칠 수 있으므로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마땅함을 가르친 담사설(   蛇說)용맹과 재예가 출중한 자로와 염구를 제치고 노둔한 증자가 공자의 고임을 더 받은 까닭은, 증자가 자신의 재주 모자람을 알고 늘 겸허히 낮은 데로부터 시작하여 높은 데를 지향하고 노력한 까닭이다.

그러니 재주나 힘(돈, 배경 등)만 믿고 교만하지 말고 항상 게으름을 경계하라고 가르친 등산설(登山說). 설령 어떤 꾐에 빠져 한때 황탄한 길을 걸었다할지라도 잘 못을 뉘우치고 본분으로 돌아가 날로 자기를 새롭게 가다듬으면 지난 허물을 만회할 수 있으므로 이를 명심하라는 삼치설(三雉說). 잘못을 타이르는 아비를 원수처럼 여기며 반항하던 아들이, 아비 돌아가고 세상인심과 직접 부딪쳐본 뒤에야 그 고마움을 깨닫고 후회한다는 내용의 요통설(尿桶說). 그리고 앞에 든 도둑 아비와 그 아들 이야기인 도자설(盜子說) 등 다섯이 그것이다.

일찍이 18세에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선 후 이조판서, 좌찬성등 큰 벼슬을 살고 세자빈객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최고 명저로 꼽히는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여한 당대 최고 문장 사숙재 어른께서 어찌 구차하게 험한 도둑을 예로 들어 자식의 가르침을 삼았겠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득(自得), 즉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따로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얼마 전, 가출한 자식 때문에 가슴에 피멍이 든다는 어떤 아버지의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손찌검 한 번 한적 없고, 조기유학도 보냈으며, 성심성의껏 보살폈으나 가출한 지 벌써 1년 6개월, 제 발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가르침의 어려움은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는 모양이다.

거기에다 또 특목고, 대학입시 등 여러 교육 정책이 바뀔 모양이다. 공급자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교육제도의 태생적 강제성을 두고 교육독재라 비난하는 말도 들린다. 스스로 깨달아 얻는, 즉 자득의 이치를 요체로 하는 교육제도를 실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 생각 때문인지, 사숙재 강희맹 어른의 훈자오설의 가르침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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