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정착한 귀어인들 멘토 활용, 지원 정책화해야"

귀어귀촌 선구자
남해군 '행복한 어부' 이동형씨

"참고할 만한 사례도, 지원정책도 뭣도 없던 시절에 바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움을 얻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행복한 어부'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다"

남해군 이동면에서 소형 연안어선을 운영하는 이동형(56)씨는 우리나라 귀어귀촌의 선구자, 살아있는 역사라 할 만한 인물이다.

이동형씨의 귀어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도 더 된 일로, 요즘처럼 정부나 관련기관의 귀어귀촌 지원정책은 물론 '귀어귀촌'이라는 말조차 아예 없던 시절이다.

서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어촌으로, 심지어 고향도 아니라 연고도 없던 남해군으로 귀어한 때가 서른여섯살이던 1996년이다.

1990년대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면 특히나 유망 직종으로 손꼽히던 시절, 7년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난데없이 "바닷가로 가서 어부가 되겠다"고 하니 집안에서는 당연히 결사반대.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바닷가 생활을 위해, 그리고 각박한 도시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어촌계장 전화번호 하나만을 들고 남해군 바닷가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이동형씨의 바닷가 성공적인 정착은 처음부터 '싹수'가 보였다. 어촌마을과 어선어업 정착을 위해 과욕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간 것이다.

차근차근 성장 "창업보다 경험쌓기가 먼저, 과욕 금물"
지원정책과 각종 교육이 활발한 최근에도, 많은 귀어인들이 사전 준비 부족과 과욕 탓에 융자받은 초기 투자금을 날리고 귀어귀촌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반면에 20년 전 젊은 귀어인 이동형씨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현장에서 배움부터 시작했다. 어촌계장 소개로 정치망 어선원으로 취업하며 귀어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귀어교육과정이 없던 시절, 이동형씨는 어업경영을 현장에서 배우며 월급도 착실히 모아 1년 만에 1.7톤짜리 목선을 마련했다. 월세방도 구해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남해 바닷가에 가족이 함께하면서 정착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귀어한지 5년이 지나며 자망 양망기, 어군탐지기와 플로터 등 장비에 투자하고 목선을 FRP어선으로 바꾸는 등 본격적인 어업인으로서 단계를 밟아 나갔다.

어로작업에 익숙해지며 연 6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수준으로 안정되자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동형씨는 "귀어 10년이 지나 돌이켜보니 너무 일만 하고 고기만 잡고 살았다 싶더라. 지역에 제대로 어울려야겠다 싶어 어촌계 가입하고 총무를 8년 하고 어촌계장을 2년 6개월 했다"며 "어촌계장 하면서 어촌계원들에게 당부한 것은 우리 어업 지키려면 도시에서 온 사람들 보듬어 안아 달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도시에서 바다로 찾아온 후배(?) 귀어인들의 어려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어인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사비를 들여 컨테이너 개조 건물에 '귀어학교'를 세운 것이 지난 2011년이다.

해양수산부가 귀어귀촌 원스톱 서비스 제공을 위해 귀어귀촌종합센터를 국립수산과학원 산하에 설립,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2014년이니 귀어교육이 민간인 세대 귀어인에 의해 몇 년을 앞서 시작된 셈이다.

정부에 앞서 국내 최초 운영한 사설 '귀어학교'
이동형씨는 남해 '귀어학교' 개설에 대해 "동료 어부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내 경험을 전해주기 위해 시작했다"며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10만명은 더 늘었으면 한다. 어촌에는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사설 남해 귀어학교는 지난 2014년 국가로부터 사설교육기관 인가를 받았으며, 올해 수료한 4기생은 20명 중 18명이 수료하고 11명이 정착했다.

그런데 이동형씨는 "지금 5기 교육 신청 인원은 많은데, 예산이 없어서 교육생을 뽑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서포트가 미흡한데도 각종 서류, 서식 요구 등 제약이 많은데 예산지원도 제대로 안될 바에야 그냥 예전같이(2014년 사설교육기관 인가 이전) 내 혼자 마음대로 운영하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귀어학교 운영의 어려움은 물론, 조업 외 개인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함에도 여전히 이동형씨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해서라도 어촌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은 계속돼야 한다"라며 귀어귀촌 상담과 견학을 환영하고 있다.

귀어인들에게 "어촌주민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낫다. 10번 만나면 10번 인사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줘라. 어촌계 가입도 처음부터 기대해선 안 된다. 성실하게 일하고 사람을 대하다 보면 의외로 빨리 정착될 것이다"라며 "조업도 너무 욕심내면 더 힘들다. 필요한 만큼 잡는 게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며, 크게 보면 수산업 전체에도 도움 되는 길이다"라고 조언했다.


지역특산 어종 '돌장어' 브랜드화
포항 김영운씨

동해안, 포항 하면 떠오르는 수산물은 일단 '과메기', '대게', '돌문어'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새롭게 떠오는 히트상품으로 '영일만 검은돌장어'가 있다.

연간 300여 톤이 생산되는 영일만 검은돌장어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앞바다에 대량 서식하며, 일반 붕장어보다 몸체의 색깔이 검고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적다. 빠른 물살이 있는 검은돌 사이에서 성장해 육질이 특히 단단하고 식감이 좋다는 평이다.

지난 2014년 포항시 주최로 시작한 '영일만 검은돌장어 축제'도 올해 4회째로, 6월 23~25일
사흘간 영일대 해수욕장 일원에서 개최되어 관광객과 식도락가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영일만 검은돌장어가 포항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것은 도시에서 유입된 귀어인의 힘이 컸다.

특산물 살리고 어민 소득 증대 기여한 귀어인
검은돌장어를 히트상품으로 만든 주역 중 한사람은 지난 2010년 경기도 포천에서 포항으로 귀어한 김영운(62)씨다. 검은돌장어 영어조합법인 설립을 주도했으며 지역 수산물 축제에도 도시에서 사업을 한 경험으로 아이디어를 보태고 있다.

김영운씨는 25년간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렸으나, 하청업체 부도로 실의에 빠졌을 때 부인의 제안으로 처가가 있는 포항 바닷가로 귀어를 결심하게 됐다.

이동형씨와 마찬가지로 김영운씨도 큰 돈을 들여 배나 작업장을 마련하기 전에,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는 것부터 어촌 정착의 단계를 밟아 나갔다.

포항 동해면 흥환리 주민들이 운영하는 장어 통발, 대게 통발배에서 일하며 어업기술을 배워나가는 동시에, 마을 주민들과도 교분을 쌓았다.

그렇게 3년여 일을 배우니 귀어 기반을 갖추고 "이제 좀 고기잡이 일과 어촌 삶을 알겠다" 싶어 2011년 12월 포항수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으며, 정부의 '귀어인 창업자금' 지원을 통해 소형 연안통발어선, 장어잡이 통발 등 어구를 구입하고 어엿한 어업인이 됐다.

뜻이 통하는 장어통발 어민들과 함께 조합법인을 설립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김영운씨는 "영일만 특산 검은돌장어가 어획된 후 부산 기장 일대로 유통되고 일본으로 수출되는 등 외부지역으로 유출되는 양이 많은 것을 보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생산자들이 개별적으로 중간상인들한테 팔다 보니 결과적으로 남좋은 일만 시켜주는 모습이 많았다"며 "검은돌장어를 특산품으로 개발하고 유통구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조합법인을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영운씨는 설립 이후 조합법인 사무국장을 맡아 운영 사무를 보는 동시에 직접 어획에서 음식점 납품까지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조합법인 설립 후 중간유통상에 휘둘리던 어가도 크게 상승해 어민소득 증대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2014년에는 검은돌장어가 포항시 대표 음식으로 선정되었으며, 그해 9월에는 '제1회 포항 영일만 검은돌장어 축제'가 개최되며 검은돌장어 영어조합법인은 축제 기획과 운영에도 참여했다.

검은돌장어영어조합법인 김영운 사무국장은 "검은돌장어는 앞으로 포항에서 더욱 비중있는 수산물이 될 것이며, 조합법인 규모도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이제는 영어조합법인 집하장을 조성하고, 검은돌장어를 전국에 유통망을 만드는 게 당면 목표"라고 말했다.

"선 귀어 정착자 멘토 활용 부족 아쉽다"
김영운씨와 영일만검은돌장어 스토리는 전국적으로도 화제가 되어 '한국인의 밥상', '여섯시 내고향' 등 지상파 방송과 신문 보도도 여러 차례 탔다.

그러다보니 귀어를 희망하는 도시인들이 때로는 알음알음으로, 때로는 귀어귀촌종합센터를 통해 안내받고 서울에서 멀리 포항 어촌마을까지 견학을 오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김영운씨는 많은 귀어인들 중에서도 특히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이나, 모범사례를 귀어귀촌 교육에 활용은 상담과 일시적인 견학 정도로 그치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다.

김영운씨는 "내 사례를 보고 포항에 귀어한 사람들도 있고, 지금도 꾸준히 귀어 견학으로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재워줄 곳도 없고 개인이 귀어희망자를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선 정착자를 멘토로 적극 육성 활용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부와 센터가 운영하는 멘토가 있기는 하지만, 멘토 선정 기준을 보니 대학교수 등 전문가라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착한 귀어인을 멘토로 활용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되면, 그 귀어인이 귀어귀촌 교육의 지역거점이 될 수 있다. 공무원들이 귀어교육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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