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어귀촌, 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부족하다"

다시마와 미역으로 인생 2모작
기장군 최일천씨

"아이고 참 미안하게, 길게 시간 내기 어려운데. 연중 제일 바쁜 때 오셔가지고..."

지난달 26일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임진왜란 유적지인 '죽성리 왜성' 바로 아래 자리잡은 최일천(52)씨 수산물 건조작업장은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널어둔 다시마가 꼬이고 엉킨 탓에, 최일천씨 부부는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다시마를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앉아서 여유있게 인터뷰할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말린 다시마 출하작업을 보던 기자도 한 손 거들려 나서기까지 했다. 최일천씨 부부와 함께, 절친한 유통상인 부부까지 두 커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트럭에 싣고 나서야 잠시 한숨 돌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처럼 기장군 어촌마을의 5월은 멸치, 다시마를 말리느라 분주한 시절이다. 특히 다시마의 경우 건조 및 출하작업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가 5월 중순이다.

특이한 것은 죽성리 마을 포구와 공터에는 주로 멸치 말리는 곳이 많고, 죽성초등학교 뒤 언덕 '왜성' 주변에 미역과 다시마 건조장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지역 특산 수산물에 자부심과 애향심
"우리 동네 경치 대단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다시마도 경치 못지않게 예쁘다고 생각한다"

최일천씨 건조장의 다시마 귀퉁이를 살짝 떼어 맛을 보니 짭짤하고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 빛깔은 여행객의 감탄을 자아내는 기장 죽성리 앞바다 반짝거리는 물결처럼 윤기를 띠고 있다.

그는 다시마가 기장을 대표하는 수산물로 떠오르고 있다며 "기장군 수산물 하면 멸치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미역과 다시마도 고품질을 자부한다"라며 "특히 기장 다시마는 전라도 완도 등 타지방보다 표면이 더 끈적하면서 알긴산 함유가 많고 가격도 두배 정도 비싸다. 다시국물을 내면 구수한 맛 때문에 최고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건조 작업이 끝나자마자 유통상에서 금방금방 다 사간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최일천씨는 미역과 다시마를 약 2ha 양식하고 있는데 12월 중순부터 7월까지 다시마 작업에 집중하고,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뒤 9월부터는 미역 양식에 들어간다. 생산한 미역과 다시마는 반정도 도매상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대변항에서 직판한다.

그는 "다시마는 6월 말까지 건조작업을 다 완료해야 한다. 6월 중순 넘으면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5월이 가장 좋다"며 "나는 다시마를 8톤 정도 생산하고 있는데, 오늘 실어가신 분은 몇 년 전 우연히 내 작업하는 것을 보고 '깨끗하게 작업하는게 마음에 든다'며 주문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절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특산 수산물과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큰 최일천씨이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도시 울산에서 전형적인 도시인으로 살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 바다는 일한 만큼 돌아온다"
최일천씨는 기장군 출신이지만 울산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울산시청 공무원으로 15년을 재직한 뒤에도 10년간 중소기업 간부로 근무했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녔지만 스트레스가 심해 40대 많지 않은 나이에도 고혈압, 비만, 편두통, 허리 협착증(디스크)까지 몸도 마음도 힘든 시절을 보냈다.

건강 문제와 함께 "이대로라면 노후가 보장되기 힘들다"는 판단에 가족과 함께 귀어를 결심해 2009년 9월 고향 기장으로 돌아왔다. 기장에서 미역·다시마 양식을 하던 부친이 그해 별세한 것도 이유가 됐다.

먼저 귀향해 가업을 이어받은 동생을 도우며 2년간 바다일을 배우다가, 2012년부터는 직접 양식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선친의 어촌계원 자격과 함께 양식장 1ha를 승계받고 어촌계 마을양식장 1ha 임대를 보태 본격적으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한 것이다.

바다에서 성실하게 땀흘려 일하다 보니 도시에서 아프던 몸은 오히려 건강을 되찾아,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허리도 아프지 않게 되었다.

어엿한 어업경영인으로서 공무원 시절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삶의 질'을 회복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해조류양식협회와 어업영영인 연합회 등 어업인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고향 동창 모임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일천씨는 "아무래도 내 경우, 아무 연고 없이 귀어한 분들보다는 정착이 상대적으로 용이했을 것이다"라면서도 "사실은 바다도 바다사람도 냉정하다. 봐주는 게 없다. 도시에서 귀어했다고 마을에서 주변에서 먼저 도와주고 그런 일은 정말이지 없다. 2년정도 바다에서 마을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이니 주변에서 인정해주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귀어인으로 알려지면서 최일천씨에게 견학을 오는 귀어 희망자들도 많았다.

그는 "귀어귀촌센터가 부산 기장(국립수산과학원)에 있던 시절에는 견학을 나한테 많이 보내더라. 센터가 서울로 옮긴 뒤로는 견학자는 많이 줄었다"며 "귀어도, 현장 견학도 부부가 같이 와서 보고 들어야 한다. 혼자서 결정하실 일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예비 귀어인들에게는 "어촌으로 오는 분들이 많았으면 한다. 사실 바닷가엔 일손이 모자라다. 처음엔 저도 내려오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한해 한해 가면서 더욱 삶이 윤택해지는 것을 느낀다"며 "제대로 준비되고 마음만 있다면 어촌에는 일이 많다. 바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한 만큼 돌아온다"고 말했다.

귀어귀촌 지원정책에 대해 "융자지원 자금은 적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얼마나 되나 따져보면 금액상한선을 낮추더라도 지원 조건을 완화해주는 게 어떨까 싶다"라고 짚었다.

 


"시련 있어도 좌절은 없다"
완도군 장창현씨

이번 기획취재를 위해 귀어인들을 업종별, 지역별로 사전 조사하며 새삼 확인한 부분은 "어느 정도 정착에 성공한 사례의 대부분이 고향 부모님의 가업을 이은 경우"라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대도시에서 어촌마을로 귀어해 정착하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취재에 '가업승계' 사례를 가능한한 줄이려다 보니 취재대상 결정과 섭외도 꽤 까다로운 일이 됐다.

기자의 주변에서도 귀어귀촌 사례 추천이 많았지만, 대부분 '가업승계'인 탓에 고민 끝에 결정한 기르는어업-양식 부문 취재대상은 전남 완도군의 장창현씨다.

장창현(58)씨는 완도 출신으로 지난 2011년 고향에 귀어했지만 수협 근무, 부산에서 일식 레스토랑 경영, 위생설비 사업 등 도시에서의 경력이 다채롭다.

무엇보다 장창현씨 사례에 주목한 것은 그가 귀어를 위해 선택한 어종(?)때문이다. 단연 독특한 사업아이템인 '갯지렁이 양식'으로 눈에 띠었다.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데다 바닷가도 아닌 내수면양식이라 더욱 이슈로 삼을만했다.

전남 타 시군에도 갯지렁이 양식으로 화제가 된 젊은 귀어인이 있지만 자수성가보다는 친지의 도움이 컸다고 보았기에 제외, 결국 완도 장창현씨에게 연락하고 인터뷰를 청했다.

'내수면 갯지렁이 양식' 개척 도전, 그러나...

그런데 장창현씨는 전화 통화에서 "와도 정말로 볼 게 없는데, 다른 사람 알아보는 게 어떤가"라고 극구 사양했다. 일에 방해가 안 되도록 하겠다고 누차 양해를 구하자 "먼 길 온다는데 일단 보자"고 허락은 떨어졌다.

그렇게 지난 2일 찾아간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해림수산' 현장은 처음에는 의아함을, 나중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했다. 장창현씨의 400여평 비닐하우스 시설 안에 이제 더 이상 갯지렁이는 없기 때문이다.

장창현씨는 지난 2011년 귀어 이후 수년간 도전해오던 갯지렁이 내수면양식을 고심 끝에 올해 6월 철수하기로 했는데, 어쩌다 그 시기에 기자가 찾아가게 된 것이다.

지난 2일 망석리 해림수산 내수면양식시설은 기존의 갯지렁이 시설 철거에 한창이다.

그런데 장창현씨는 "당초 사업성이 높다고 봤고 준비도 열심히 했지만 실제는 역시 다르더라"며 "결단은 빨리 내리는 게 좋지 않겠는가. 비용과 노력이 아깝지만 미련을 갖고 질질 끌면 안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건 인정해야 한다"라며 오히려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사실 그동안 장창현씨가 갯지렁이 내수면양식 사업화에 들인 공은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전공 대학교수를 멘토로 삼아 양식기술을 공부했으며, 경남 고성 부경대 수산과학기술센터에서 8개월간 갯지렁이 양식기술을 연구했다. 해림수산 갯지렁이 양식시설 조성 당시에도 수산과학기술센터 연구원을 완도로 초빙해 함께 일을 추진했다.

'친환경갯지렁이사업'으로 양식장 공사비 3억1천만원 중 60%를 정부에서 지원받아 부담을 크게 줄였지만, 나머지 40%은 자부담이며 초기 투입 비용도 적지 않다.

갯지렁이를 키워서 출하하는 데까지는 2년이 걸리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2012년 첫 생산한 갯지렁이 치충이 대량폐사해 6천여만원의 손해를 입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갔지만 생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버텨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준비 철저해도 현장에서는 부족함 느끼는 때 온다"
장창현씨는 "갯지렁이가 요즘은 제주산이 많이 유통되고 중국 수입산 물량이 많아서 내 작은 사업장으로는 경쟁이 어렵다. 투입비용, 성장속도, 그리고 판로까지 고려하면 안되겠다 싶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창현씨의 '해림수산' 사업장이 완전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 완도 하면 전복으로 유명한 곳, 장창현씨는 기존 시설을 손보고 업종을 변경해 전복양식을 시도한다.

새롭게 도전할 내수면 전복양식에 대해 "해상 양식에 비해 해적생물 부착 문제 등 오히려 관리 부분에서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 내수면 전복양식은 갯지렁이와 마찬가지로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형태지만, 기술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다가 판로 부분에서도 완도산 전복은 아무래도 안정적이다"라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장창현씨는 귀어 희망자들에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귀어귀촌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귀어를 쉽사리 도전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 내 경우에서 보듯 귀어하기 전에 공부하고 준비를 몇 년이나 해도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귀어귀촌 취재에 내 이야기 뭐 할 게 있나 싶었는데, 그만큼 귀어귀촌이 어렵다는 현실을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응했다"라며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막상 현장에서는 부족함을 느끼는 때가 결국 온다. 바닷가 생활 낭만 같은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일은 일이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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