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업을 할지, 처음부터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

바다가 좋아서 낚시가 좋아서
낚시배 이철기씨

이번 기획취재에 귀어인 사전 조사 자료로 활용한 것은 어촌어항협회 귀어귀촌종합센터가 발간한 귀어귀촌 사례집 '나의 인생 2막 어촌이야기'이다.

사례집을 기반으로 지역별, 업종별 귀어인을 찾으며 '고향 부모님 어장을 물려받은 도시 젊은이' 사례는 배제하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인터뷰대상 선정부터가 꽤 까다로운 일이 됐다. 사례집에서조차도 도시인이 무연고 어촌으로 가서 일하는 경우보다는, 부모님에게 돌아간 경우가 훨씬 많아 약 70%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고민은 '낚시어선'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였다.

낚시어선과 귀어귀촌의 딜레마

귀어귀촌종합센터의 사례집에서도 '낚시어선'을 어선어업 분류에 넣고 있으나, 이는 이견의 여지가 있다. 모객을 통해 낚시객을 승선시키는 '낚시어선'은 어선어업보다는 해양레저 및 관광산업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낚시어선 선주 및 선장이 직접 어획하는 수산물은 수산업법상 '낚시어선' 자격 유지의 방편으로 미미한 비중이다. 연 120만원 이상 상당의 어획물을 수협 위판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법규 때문이며, 실제로는 레저낚시객을 모집해 요금을 받는 것이 현재 낚시어선의 연중 주 소득원이다.

사실상 '해양레저낚시'라 할 수 있음에도 지원 및 규제 법령에서는 수산업법상 '어선'에 해당하다 보니, 현 실태와 관련법의 괴리에서 오는 문제점과 논란, 민원제기도 많다.

그런데도 많은 귀어희망자들이 '낚시어선'을 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산업과 어촌경제의 핵심인 어선어업과 양식사업에 진입장벽이 높고, 낚시어선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수억원대의 어선 및 어장 시설 마련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어업(면허)권 획득은 귀어인에게는 특히 넘기 힘든 벽이다. 수산자원 관리를 위해 정부가 어선 감척사업과 양식어장 구조조정 및 감축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는 것도 귀어귀촌의 근본적인 딜레마이다.

게다가 어촌에서 어선어업과 양식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촌계 가입이 필요한데, 어촌계 가입도 귀어인에게는 높은 장벽으로 다가온다.

결국 귀어희망자들 중 다수가 어선어업과 양식사업의 높은 벽을 피해, 평소 취미생활을 살리고 바닷가의 여유를 꿈꾸며 '낚시배'를 택한다.

그러나 낚시어선도 사정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낚시어선, 적어도 서해안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3년차 귀어인으로 충남 보령 무창포에서 낚시어선 '로빈호'를 운영하는 이철기(58세)씨는 아예 "낚시배는 레드오션이다. 솔직히 말리고 싶다. 특히 서해안은 더하다"라고 말한다.

이철기씨는 보령에서 가까운 당진 삽교천 인근이 고향으로, 경기도 일산에서 컴퓨터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 평소의 바다낚시 취미를 살리고 여유로운 노후를 그리며 귀어했다.

그는 "지금은 아니지만 컴퓨터 관련 사업이 2010년까지는 형편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일 때문에 청계천 다니다 보니 어르신네들이 모여 있는데, 일이 없다 보니 뭘 할지를 모르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다. 그 모습을 보니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마침 나는 평소 취미가 바다낚시였던데다가 고향이 이 근처라 괜찮겠다 싶었다"며 귀어 동기를 말했다.

귀어 연차가 짧지만 이철기씨는 무창포에서 착실히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지난달 11일 무창포해수욕장 앞 어느 낚시배 사무실, 이철기씨가 예전 전공을 살리며 전기시설 작업에 한창이다. 무창포 낚시업계 선배의 가게에 CCTV를 설치하는 데 도움을 주려 나선 것이다.

그는 "어촌에서 외지인을 냉대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외지인 유입은 어장, 즉 수입원을 나누어 가지자는 이야기 아닌가"라며 "그래도 자기 하기 나름인 부분 크다. 왜 '놀면 뭐하나'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내가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로 먼저 나서면 자연스레 주위에서 인정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서 이웃들과 함께 해 온 덕분에, 이철기씨는 무창포 해변 40여 척의 낚시어선 중 유일하게 어촌계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철기씨의 낚시배 '로빈호'가 누비는 보령 무창포는 쭈꾸미와 갑오징어 낚시에 전국 최고 중심지다. 그러다보니 낚시어선도 전국 최고 밀집 지역이다.

이철기씨는 "주변에서 한 소리 들을 말이려나 걱정도 되지만, 사실 낚시배가 너무 많다. 충남 지역에 적어도 1,000척이 넘고 무창포와 인근 오촌항만 해도  200척이 넘는다"라며 "지금도 사실 과포화 상태인데, 올해 보령에 귀어 신청 60명 중 대다수가 낚시어선 희망이라고 하더라. 충남 서해안 지역이 귀어희망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수도권과 2시간 이내로 가깝기 때문인것 같다"고 말했다.

귀어지원 정책에 대해 "지역과 업종별로 분포와 현황을 파악하고 귀어교육과 상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와 귀어귀촌 센터에서 '교통정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또한 귀어희망자들에게는 "만약 서해안 쪽 귀어를 생각한다면 낚시배는 이제 어렵다는 게 제 솔직한 느낌이다. 다른 업종을 고려해보시는 게 좋겠다. 점점 고기 잡기도 어려워지고, 앞으로도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낚시배 뿐 아니라 일반 어선어업도 조황이 해가 갈수록 안 좋다. 그래서 나도 낚시배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펜션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철기씨는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정부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설정을 강한 어조로 요구했다.

그는 "낚시배는 물론이고 어선어업 어획 부진과 서해안권 지속적인 생산성 감소는 방조제, 대형 보, 간척사업 등 무분별한 해안 토목사업이 큰 이유라고 본다. 어업인들끼리는 새만금이니, 삽교 보령 방조제니 다 부숴버리고 싶다고들 이야기한다. 바다환경을 뒤집어 놓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따져보면 참 답답한 느낌이다"라며 "수산업 전체의 근본적인 위기를 고민하지 않으면 귀어귀촌 정책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부부가 함께 인생 제2막
카페 겸 펜션 윤미애씨

"우리 부부가 바닷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을까, 서해안 남해안 많이 다니고 거제 가조도를 왔다. 준비에 시간을 들이고 고민을 했어도 자리를 잡으려니 결국 탈은 나더라"

통영에서 거제 시내로 진입하다 방향을 꺾어 들어간 사등면 가조도, 카페 겸 펜션 '노을바다' 주차장에 내리니 막 일몰에 접어드는 바다와 섬 풍경이 경탄을 자아낸다.

5년차 귀어인 노을바다 펜션카페 윤미애(45) 대표는 "바닷가 정착을 하려고 이곳저곳 많이 봤는데, 가조도 풍경은 정말 감탄스럽다. 가조도 경치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인데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아쉽기도 한 반면, 오히려 자리잡기에는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윤미애씨와 띠동갑 남편 김철동씨는 부산에서 '반도문구센터'로 다년간 문구 도매사업을 하다 "인생 제2막을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서 열자"고 마음을 모으고 대상지를 몇 달에 걸쳐 물색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잡히는 일"은 생기더라
부인 윤미애씨는 오래 전부터의 꿈인 바닷가 경치 좋은 곳 카페를, 남편은 낚시배 운영을 하고자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이 거제 가조도 간선도로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윤씨는 "지금은 보다시피 카페 겸 펜션이 건물도 몇 동 되고 규모가 작지 않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대규모로 사업을 벌이려 한 건 아니었다"며 "처음엔 나는 커피숍을 작게 하고 싶었다. 젊어서야 일을 벌였다가 실패해도 일어날만 하지만,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보니 일은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겠다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준비를 차근차근 착실히 했음에도 어려움은 닥쳤다. 대개 귀어인들이 겪는 어촌마을 주민들과의 트러블이나 진입장벽이 아니라, 사업장 토지매입 문제였다. 사업지를 정하고 나서도 가게 오픈까지는 거의 3년이 걸렸다.

윤미애씨는 "당초 작게 시작하려던 사업은 부동산업자의 문제로 토지 규모가 예상 외로 커졌고, 이 문제로 최근까지 2~3년 꽤 고생했다"며 "부동산업자와 실랑이하며 오래 마음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을 분들이 안쓰럽게 여기시더니, 억지로 어찌어찌 카페를 오픈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고 동네에 커피 마실 데 생겼다고 좋아해 주시더라"고 말했다.

윤씨 부부는 어려운 시간을 겪으면서도 주변 마을 사람들과 인정을 나누고 성심껏 대한 결과 지금은 어촌마을의 일원이 됐다. 어촌마을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입소문이 퍼져 지금은 가조도 명물로, 카페는 주말에 자리가 모자라며 펜션 5개 동은 예약이 꽉 찬다.

윤미애씨는 "도시에서 어촌으로 이주해 오시는 분들이 마을 정서를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만 들어 놓으면 바닷가 분들은 통이 크고 인정도 많다"며 "마을 인심 얻으니 정착이 된다. 마을 어르신들이 밖에서 일하고 계시다가도 일부러 손님 데리고 찾아와 주시고 이제는 우리 가게와 부부의 든든한 응원군들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거제도는 바닷가 관광사업 가능성 높다"
윤미애씨 부부는 최근 펜션과 카페 홈페이지 구축 작업을 전문 회사에 맡겨 진행 중이다. 또한 남편 김철동씨는 내년부터 낚시어선을 운영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윤씨는 "펜션 고객을 위한 체험낚시는 결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커피숍을 하겠다는 제 꿈은 이뤘고 이제 남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단계를 밟고 있다"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귀어를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마을에서도 나름 자리를 잡았고, 우리 가게에 오신 손님들 좋은 반응을 보면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윤미애 김철동 부부는 "거제도에는 아직 유명하지는 않지만 풍경이 끝내주게 좋은 곳이 많다. 우리 부부도 그런 곳을 찾아와서 정착한 것이다. 외지 출신인 우리가 보기에도 거제는 아직 관광 쪽으로 아이템 개발이 덜 됐다. 행정에서도 관광산업 부문 비중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라며 거제시 행정에 어촌 및 해양관광사업에 더욱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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