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과 9월 1일을 이어주는 밤에 비가 많이 내렸다. 8월과 9월을 구분지어 놓으려고 그렇게 천둥도 치고 번개도 쳤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궂은 날씨에 장거리 운전을 걱정했다. 그렇지만 나는 가고 싶었다. 9월 1일 오전 10시경 김해로 출발!생각보다 비는 세차게 내리지 않았고 김해에 도착하자 비는 그쳐있었다.

내가 듣기로 한 첫번째 강연이 예정되어 있는 김해 문화의 전당 누리홀을 확인하고 건너편 홈플러스 2층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초밥과 메밀소바!강연시간에 늦을까봐 급히 먹었지만, 그 맛 때문에 김해에 다시 오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급히 누리홀으로 달려갔을때 약 5분정도 늦어 우리는 3층으로 안내되어 뒷줄 가운데에 앉을수 있었다.

사회자가 막 김연수 작가님을 소개하고 있었다. 아! 드디어 김연수 작가님을 눈앞에서 뵙게되다니!! 강연제목은 '한줄의 문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였는데, 과연 그 제목 그대로의 강연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었던 독자라면 가졌을 수 있었던 궁금함이 해소 될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소설은 이러한 문장에서 출발되었습니다'라는 친절한 해설의 강의였다고나할까?

김연수 작가님은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한분이다. 나에게 김연수 작가는 사실 더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친구라는 이미지가 첫번째였고,김중혁 작가와 김연수 작가가 농담처럼 주고받은 영화이야기를 엮은 '대책없이 해피엔딩'이 처음 이미지로 굳어진 탓이리라.

그 이후 '세계의 끝 여자친구' '굳바이 이상' '밤은 노래한다' '사랑이라니 선영아'등의 책을 읽게 되면서 이 분은 보통 내공의 작가가 아니구나! 김중혁의 농담친구 작가로 생각한 것은 아주 티끌같은 부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감히 한국의 무라카미하루키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김연수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강연 내내 농담과 진담의 경계를 오가며 즐겁게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40대가 되기 전에 3가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었으나, 2가지밖에 못썼고 나머지 하나는 수년째 '내년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쓰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하시며 수줍어하셨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내가 사실은 썩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읽었던 '밤은 노래한다'라는 소설의 시작점이 된 문장 이야기였다. 그 문장은 '중공 만주성위 동만특위 서기 위중민의 보고 '김일성, 고려인, 1931년 입당. 용감적극, 중국어를 할수 있음. 유격대원 출신이다.'였다.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와다하루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책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이다가 가끔, 남성작가에게 이런 문장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감성적인 문장은 깊은, 오랜, 시간과 사색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회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대의 슈퍼스타 작가 김연수'의 소설은 그냥저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아! 그랬다. 분명 슈퍼스타 작가에겐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보통의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과 다르게 깊이 오래 오래 곰탕이 되고 문드러질 만큼 문장을 되뇌이고 사색한다. 강연이 끝나고 가져간 책에 사인을 받았다. 실화인가? 아, 받아온 사인을 보니 실화였다. 글씨체도 멋있었다.

김연수 작가의 강연이 끝나고 다음 정이현작가의 낭독 공연의 입장 티켓을 받은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공연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낭독공연이라니, 어떤 무대일지...?'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는 2016년작 단편 모음집 중에 '영영 여름'이라는 단편을 공연했다. 6명의 젊은 친구들이 나와서 차례대로 네모난 의자에 앉았고 뒷편에 영상이 나오며 소설의 일부분을 띄워주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주인공 리에의 시점으로 소설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이 나오는 부분에서 한사람씩 (엄마, 리에, 메이, 선생님, 이삿짐센터 소장)일어서서 연기를 함으로서 극의 몰입을 높일수 있었다.

낭독공연이 끝나자 큰 박수가 이어지고 사회자의 소개로 정이현 작가님이 나타났다. 아, 나는 맨 앞줄 가운데에서 작가님을 보게 되었다.실화인가, 실화였다! 두근반, 세근반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팬이라는 것이 이런 기쁨인가 싶었다. 연예인을 만나도 이만큼 설레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사회자와 작가님이 낭독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객석을 향해 질문있냐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실린 단편 중에 장편으로 확장해 보고싶은 이야기가 있냐는 질문이었다. 내가 예상한 단편은 아니었지만 '안나'라는 단편은 다른 주인공의 시점으로 써보고싶은 생각이 있다는 답을 주셨다. 아, 질문도 하고 답도 바로 앞에서 듣게 되는 영광을...!

낭독공연이 끝난 후 급히 자리를 이동하여 ‘릴리로스터즈’라는 곳에서 작가님과의 티타임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네비게이션에서 5분 거리였으나 실제로는 10분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자그마한 커피집 안에 정이현 작가님과 나를 포함한 독자가 10명 정도 옹기종기 모여앉았다.간식과 음료가 있었지만 아무도 간식을 손대지 못한채 우물쭈물하고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흐르고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 채 관계자가 그냥 그곳에 떨어뜨려주고 가벼렸다고 하시며 멋쩍게 웃으셨다. 사회자가 필요하니 누군가 사회를 자청하는 분이 없냐고 했지만 아무도 손들지 않았고, 비교적 먼 곳에서 왔다는 이유로 내가 사회를 맡게 되었다.

이런 꿈만 같은 일이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되다니!내 소개를 하고 간단히 정이현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씀드렸다. 그리고 한명씩 돌아가며 질문도 하고 답도 하며 정말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상적이었던 작가님의 이야기 몇 가지는-처음엔 시를 쓰고 싶었는데, 문창과를 다니던 중 과제로 제출한 본인의 시에 대해 교수님은 하나의 멘트도 첨삭도 없이 단 한줄 '시보다 산문에 소질이 있는듯'이라고 써주셨다고 한다.

처음엔 시에 소질 없음에 실망했지만 나중엔 산문에는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은 독자들이 자전적인 이야기냐고 묻는 적이 많은데, 아니라고 잘라말씀하셨다.

덧붙여서 소설을 쓸 때, 자신을 깎아먹지 않겠다고 주변사람, 가족 등을 (소재로 깎아먹는다는 표현을 쓰셨다) 다짐한 것을 비교적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고 하셨다.멋지다! 역시 나의 작가님! 이러니 어찌 내가 반하지 아니할 수가! ‘소설’보다 소중한 것이 작가님께 어떤 것이 있냐는 이의 질문에 ‘일상’이라고 답해주셨는데, 이 부분 또한 마음속으로 감탄한 부분이었다.

등단 후 3~5년 동안은 정말 잘 쓰고 싶어서 열심히 살을 깎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강박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이라고 하셨다. 일상을 유지하며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며 길게 오래오래 쓸 수 있기를 그러다가 못써도, 안 써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유지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도 그러고 싶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진 않았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삼지는 못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섬세하고 차분히 글로 옮기는 일은 꾸준히 오래오래 일상을 유지하며 정말 일상처럼 해내고 싶다고.

그렇지만 오래오래 작가님 소설을 읽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고 돌아왔다. 작가님의 책에 사인도 받았고, 사회를 보았다고 한권의 책도 선물 받았다. 사진도 찍고!돌아오는 내내 꿈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통영에서도 이런 독서대전과 같은 큰 행사가 열린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왠지 김해가 가깝게 느껴지는 선물 같은 하루였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