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면목·사대화합의 육신"

 

나의 진면목

영원한 생명과 마음과 육신이 삼각으로 둥글게 돌아서 인간을 이룬다.

마음 내기 이전과 마음 내는 것과 내 몸이 삼합이 되어 공전하는 것을 한마음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한 생명이 세상에 출현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때에 영원한 자기의 불씨가 같이 들어야 한다. 아무리 부모의 정혈이 합쳐진다 해도 영원한 생명의 불씨가 합해 들지 않는다면 자기가 이 세상에 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생명의 탄생은 아버지의 뼈를 빌리고 어머니의 살을 빌려 거기에다 자기의 억겁을 거쳐온 생명과 마음이 계합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했다 해도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합일이 되지 않아, 설사 육신이 만들어졌다 해도 그건 참된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내면에는 '중생으로서의 나(我)'가 아닌 영원한 그 무엇이 있다.

바로 나의 진면목, '영원한 나, 한 번도 나지 않았으므로 아예 죽을 바가 없는 무량겁의 나, 더러움에도 아예 물들줄 모르고, 괴로움이라는 것으로부터도 홀연히 초월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增不減), 불구부정(不垢不淨)의 지고지락(至高至樂)한 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으로서의 나는 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그 영원한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영원한 나'는 언어나 문자로 수식할 수도 없고 의론(議論)을 통해 드러나는 것도 아니므로, 관념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통 속의 놀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중생들은 꿈같이 뒤집힌 생각을 내게 되었다. 그것이 어둠이 되어서 본래부터 밝고 맑았던 근본마음을 가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밝은 태양과 맑은 하늘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 것과 같다.

그리하여 중생은 태양이 없는 줄로 알아 태양을 잊었고, 하늘이 어둠으로 덮인 줄 알아 맑은 하늘을 잊었다. 하지만 중생이 돌아가야 할 곳은 본래 부처였던 그 성품, 그 태양과 하늘인 것이다.

지금의 내 생각과 육신은 본래의 나에게 일어난 한 점 먹장 구름일 뿐이다. 이렇듯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구름과 같은 것이기에 스스로 '나'라고 믿어온 것의 실체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아주 없어서 없다는게 아니라 어느 때의 나를 나의 실체라고 내세울 수 없으니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사대화합의 육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은 다만 사대의 일시적인 화합이기에 인연따라 모였다, 인연따라 흩어지면서 생멸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생멸하는 것은 참다운 실상이라 할 수가 없다. 영원히 불변하고 불생불멸하는 진실상이 아니라면 어느 것이든 한낱 가상(假相)에 불과하다.

고로 육신은 가화합(假化合)이요, 환(幻)이라고 하는 것이다.

구름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다른 구름하고 모이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사대로 흩어져 원점으로 돌아갔다가 어느 계기에 다시 모여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대가 흩어지는 것을 허망하다 할 게 아니라,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이 도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이에게는 세상만사가 무상한 것을 아는 중에 오히려 이 도리를 알고자 함이 있으니 세상이 허망하지 않다.

육신이 가화합(假化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참나'인 주인공은 이 가화합의 존재와 따로 있는가? 아니다. 주인공은 가아(假我)와 떨어져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아의 근본이 되는 그 자체를 '참나'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참나'는 어디에 있는가?

팔에, 다리에, 가슴에, 머리에? 그 어디도 아니다.

신체의 어느 특정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본래의 나, '참나'는 내 육신을 형성시켜 놓고 깊숙이 있으면서 삼천대천세계와 상응하며 진리로서 회전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신이 있어야 불법을 알 수 있다. 육신이 없다면 마음의 진화라는 것도 퇴화라는 것도 없다.
따라서 육신이 허망하다 하여 그 모습을 버리면서 불법을 알려 한다면 극히 잘못된 생각이다.
만약 육신이 없다면 혼백만 있는 것이니, 계발할 수도 없고 지혜를 넓힐 수도 없어 부처를 이룰 수가 없다.

아들이 있음으로써 아비를 알게 되고, 시자가 있음으로써 주인을 알게 되며, 유(有)의 법이 있음으로써 무(無)의 법이 같이 움직이는 도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몸 떨어지고 나면 무엇을 보고, 듣고, 부딪치고 생각하겠는가?

나무나 열매가 있음으로써 씨를 알고 뿌리를 알듯이, 비록 영원한 실체는 아닐지라도, 사대가 뭉친 이 몸이 있음으로써 한 생명, 한 자리, 한마음, 주인공을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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