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 12월 27일 통영한산대첩축제를 포함한 전국 35개 축제를 '2020∼2021 문화관광축제'로 지정했다.

이순신 연구자 한 사람으로 기쁜 소식이다. 통영한산대첩축제는 이순신, 한산대첩 등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는 축제로 문광부 지정 6년 연속 우수 축제로 인정 받아왔다.

필자는 이번 통영한산대첩축제부터 '약무한산통영(若無閑山統營) 시무조선팔도(是無朝鮮八道)'라는 민족정기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이 문장의 뜻은 "만약 한산도 통제영이 없었다면, 조선 팔도도 존속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이순신 연구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1593년 7월 15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여수 본영에서 한산도로 진영(陣營)을 옮겼다. 그리고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면서 한산도 진영은 해로차단전략의 요충지로서 '삼도수군통제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왜군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로부터 1597년 2월 26일 이순신이 서울로 압송될 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굳건한 통제영으로 존속했다.

1597년 7월 원균의 칠천량 패전 후, 배설의 성급한 청야작전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한산도 통제영을 불사르고 말았다. 1604년 이경준 6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 두룡포에 통제영을 이설하면서 지금의 통영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순신의 일기를 검토해 보면, 1592년 후반기부터 준비된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호남을 보전하지 못하면, 나라도 없게된다.' 라는 전략은 1593년 7월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면서 시작하여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할 때까지 약 6년간 조선 수군의 핵심 전략으로 진행되었다.(이 문장을 호남에서 오늘날까지 200% 활용하고 있다) 이 전략은 1592년 12월 10일에 선조에게 올린 이순신의 장계 내용으로 보아서, 그 이전부터 준비해 이 전략을 완성된 곳이 바로 한산도 진영이었다. 1593년 7월 16일 한산도에서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검토해 보면, '약무한산통영(若無閑山統營) 시무조선팔도(是無朝鮮八道)'의 가치와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필자가 생각해 낸, '약무한산통영(若無閑山統營) 시무조선팔도(是無朝鮮八道)'이라는 문장은 초기 한산도 통제영과 그 후 두룡포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는 통제영을 동시에 의미한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했던 이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을 앞으로 높이 고양해야 할 것이다. 올해 2020년 통영한산대첩축제를 기점으로 하여 이 문장을 깃발 높이 선양되면 좋겠다.

필자의 이러한 제안은 일차적으로 통영 시민들의 향토 정신을 드높여 민족정기를 선도하는 역사의 고장이 되는 동시에, 우리 민족정신을 전 세계에 펼치는 계기 삼기 위함이다. 한산신문의 이 기사를 출발점으로 하여 통영지역의 언론과 시청을 위시한 운영위원회, 역사연구회 등에서 이를 수용하여 적극 추진해 나가길 희망한다.

조 신 호

-1973년 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2009년 2월 교장으로 정년 퇴직.
-2015년 2월.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졸업. 교육학박사
-논문 : 「이순신 리더십의 성격과 교육적 가치」
-2012원 3월 부터 2018년 12월까지 매일신문 CEO포럼 원장 재직
-2019년 2월부터 현재 : '시니어 每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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