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먹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먹는다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한 영양 섭취를 넘어 생로병사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축하하고, 슬퍼하는 순간, 우리 곁에는 늘 음식이 함께한다. 생의 가장 슬픈 순간에도 음식은 큰 역할을 한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고, 산 자와 산 자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한다.

인간관계를 새로 맺거나 이어갈 때도 먹는 행위는 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밥이든, 술이든 사람을 만나는데 음식 없는 장면을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먹는' 행위는 사실 좀 유별나다. 상식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욕도 먹고, 챔피언도 먹고, 설을 쇠면 나이는 당연히 먹는 것이고, 새해에는 더 멋진 인간이 되리라 마음도 먹는다. 새 학기가 되면 친구 먹고, 쉽지 않은 세상 일도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친구를 위로하고 자신을 격려한다. 우리 인생 대부분을 먹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먹는 행위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먹거리가 넉넉지 않았던 옛 시절의 아픈 기억이 우리 삶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나라인들 그 정도의 고통을 겪지 않았던 역사가 있을까? 그러니 배고픔의 추억만으로 우리의 유별난 먹기 사랑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한국인들의 역동적인 기질 덕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삶의 많은 영역을 먹는 행위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욕조차도 먹어 소화함으로써 성장과 활력의 기회로 삼는다. 식욕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욕 또한 없다고 한다. 그러니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이 바로 먹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데서 나온다.

여기에는 보다 심오한 철학적 관점도 녹아있다. 먹는 행위는 대상과 내가 하나 되는 과정이다. 내가 먹은 음식이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남의 살코기를 먹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고기를 제공한 그와 내가 하나가 되었기에, 내가 선한 일을 하면 그도 선한 일을 하게 된다는 지극히 당연히 이치를 품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도다리쑥국에서 시작해서 바다가 차린 성찬이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닫았던 마음의 눈을 뜨고, 잊었던 사람을 찾고, 한쪽으로 밀쳐놓았던 희망도 끄집어내어 햇살에 말리는 시간, 즐거운 눈과 입은 크게 한몫을 한다.

통영의 도다리쑥국을 향긋하게 담아낸 노래가 있다. 묵직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노래는 최동완 시, 진규영 작곡의 ''도다리쑥국''이다. 지난해 11월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열린 현대성악앙상블 정기연주회에서 바리톤 김종홍 선생이 불렀다. 최동완 시인은 통영 출신이다.

"통영 바닥 식당에 메기탕이 내려가고 / 도다리쑥국이 올라오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 풋풋한 애쑥과 엄벙한 도다리의 만남 / 봄바람이 아니면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렇다. 도다리와 쑥의 만남은 봄바람이 선사한 선물이다. 이른 봄 햇살 맞으며 풋풋하게 돋아난 쑥이 도다리와 눈맞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반도 남쪽, 통영이 제일 먼저 맞는다는 봄바람 탓이다.

"드센 갯바람만큼 볼촉시린 가시나도 / 여린 쑥잎처럼 야들야들해지는 봄 / 도다리 눈을 삐딱하게 치켜뜨고 넘보던 / 쑥맥 같은 머스마와 눈이 맞아 / 합방을 하고 복닥거린 세월" 바닷속 도다리와 언덕 위 쑥이 눈맞았으니, 바다와 뭍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통영 사람들의 가슴에도 사랑의 파도가 일렁인다.

"별 볼 일 없고 하찮아서 서로를 보듬어 온 / 갯가 여편네와 천생연분이 쑥국에 봄 도다리로 어우러져 / 이리도 담백하고 향이 나는 걸까 / 통영 바닥 식당에 메기탕이 내려가고 / 도다리쑥국이 올라오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 내 고향의 봄은 그렇게 익어간다."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이들이 쑥을 캐고, 도다리를 잡아 봄을 한 상 차려내었다. 여편네와 남정네는 분명 천생연분이다. 골목마다 흔해서 내세울 것 없는 이들이 봄을 만나 서로 손잡으니 봄의 별미가 되고, 노래가 되고, 통영이 된다. 그렇게 봄도 익어가고, 복닥거리는 세월도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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