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김상영씨 (무전동)

나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 의구심이 든다.

사전적 의미로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안부를 전하거나 물을 때.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3년 동안 안녕하지 못했다. 지금 사회나 국가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언제 안녕할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에는 개인이나 나라의 힘들고 어려웠던 기나긴 여정이 소환되는 과거형이다.

보릿고개 시절에는 한 끼 식사를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밤새 생사 여부를 묻던 인사였고 IMF 시절에는 회사와 가정의 파탄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는데 ‘안녕 못 한대 어쩔 건데’라고 답하면 할 말이 없다. 인사를 한 사람이 무안하다. 관계는 단절된다.

세계적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최근작 ‘회복력 시대’에서 코로나 펜대믹 이후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미래를 위한 문명사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는 회복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했다. 그럼 시민사회에서부터 코로나 펜대믹을 어떤 방법으로 회복할 것인가? 고민 끝에 일상의 인사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녕하세요.’ 대신 ‘좋아지세요.’라고 해보자.

개인의 건강이, 가정과 직장이, 가게 매출이, 학업 성적이, 기업이나 국가경제가 어제보다 좋아지라는 뜻이다. 행복하고 부자 되라는 뜻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인 방향 제시다.‘좋아 보이나’라고 되물으면 ‘좋아졌네요.’, ‘어제보다 좋아 보입니다.’, ‘내일은 더 좋아질 거예요’, ‘나머지도 좋아지길 바랍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단절형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결형 인사말이다.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인 희망이다.

내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질 확률이 10% 높아지고, 내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15% 높아진다고 한다. ‘좋아지세요’ 한 마리로 조금씩 행복해진다면 이문이 남는 장사다.

오늘부터 인사말을 ‘좋아지세요’라고 해 보자.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표정이 밝아진다. 통영에서 이 말에 먼저 불을 지펴보자. 희망의 메시지로 사회 전체로 들불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코로나 팬대믹으로부터 회복될 것이다. 내년에는 도민체육대회 등 큰 규모의 행사들이 개최된다. 시민들이 준비할 것은 바로 이런 작은 것부터다. 택시기사는 이미 시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좋아지세요’라는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될 차례다. ‘좋아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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