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忠烈祠)는 선조 39년(1606년) 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안치하고 제사를 지내는 목적으로 세워진 사당으로 현종4년(1663) 충렬사 사액을 받고 현판을 하사받았다.

매년 수군통제사들이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경내 건물은 본전, 정문, 중문, 외삼문,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강한루, 유물전시관과 많은 비석들이 있다.

또한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8가지의 선물인 명조팔사품(보물440호)과 1795년 정조가 <충무공전서>를 발간하여 보관한 1질과 제문이 있다.

1) 통영충렬사(統營忠烈祠) / 의암집(宜庵集) 안덕문(安德文) 1700년대 말.萬屋人烟海氣蒼 수많은 인가마다 연기 끼고 바다엔 푸른빛 가득한
爲尋忠武古祠堂 충무공 옛 사당을 찾아 왔다.
三邊城市皆魚蟹 도시의 세 면이 모두 어물이고
一面山林獨檜篁 한 면의 산림에만 오직 전나무 숲이네.

擎讀全書生義氣 전서(全書)를 받들어 읽으니 정의로운 기개가 생겨나,
拜瞻遺碣瓣心香 전해오는 비석을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도다.
腥塵乍歇寒潮晩 성진(腥塵)이 잠시 그치고 저문 밀물 차가운데
畫角聲悲夜火光 뿔피리 소리 비장하니 횃불이 빛나네.
-- 有御賜全書 어사전서에 실려 있다.

[주] 성진(腥塵):전진, 싸움으로 인한 먼지. 피비린내 나는 티끌.

◯ 안덕문(安德文) : 1747년(영조 23)∼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장중(章仲)이고, 호는 의암(宜菴)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부림면(富林面)이다.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흥학당(興學堂)을 지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금도화(金道和)가 서문을 쓰고 장승택(張升澤)‧이기형(李基馨) 등이 발문을 쓴 8권의 《의암집(宜菴集)》이 전한다.

2) 충렬사 향사(忠烈祠) 祠享(李忠武 舜臣) 李舜臣 / 김창숙(金昌淑).
漫漫海曲爲誰尋 가없는 바다모퉁이 누굴 찾아 왔는고?
都督祠前樹影森 수군도독의 사당 앞에 나무그림자 무성하다.
茂勣危忠光帛史 깨끗한 충신의 빼어난 공적에 비단 빛이 화사하고
君褒皇賜煥綸音 임금을 기리고 황제가 하사한 윤음(綸音)이 빛난다.
荒沙的歷蠻兒骨 황폐한 모래땅에 섬 오랑캐 뼈가 선명하니
異世輪囷烈士心 시대는 달라도 높은 열사의 마음 상통하네.
嘆息長蛇方荐食 탄식하노니 나라를 잠식하는 큰 뱀을
九原難作淚盈襟 구원하기가 어려워, 눈물이 옷깃을 적시누나.

[주] 윤음(綸音) : ‘임금의 말’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국왕이 臣民에게 내린 訓諭나 명령의 문서를 널리 지칭하는 용어이다. 綸旨라고도 하고, 간혹 ‘열줄’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綸音이 형식상 10行으로 자주 간행·반포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 위 시는 암울한 대한제국시절 기울어가는 국운을 애통해하며 지은 한시이다.

3) 충렬사 알현(謁忠烈祠) 통영에 사당이 있고 이충무공 향사한다(祠在 統營 享李忠武 舜臣) / 김창숙(金昌淑).
將軍古廟傍穹林 장군의 옛 사당 옆 우거진 숲은
風雨飄搖歲月深 비바람에 흔들리며 세월만 깊어간다.
同戴讐天今日淚 함께 받들던 하늘의 맹세는 오늘의 눈물인데
招招毅魄若爲心 꿋꿋한 혼백 손들어 부르니 마음만 아프네.

◯ 김창숙(金昌淑, 1879.7.10∼1962.5.10) : 독립운동가·유학자·교육자. 임시정부의 주요인물로 8·15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아버지는 호림(頀林)이며 성균관대학교의 설립자이다. 본관은 의성.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翁). 한때 우(愚)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4) 충렬사(忠烈祠) / 좌의정 조현명(左議政趙顯命,1690년-1752년)
忠烈遺祠古渡潯 충렬의 유훈 받든 옛 나룻가 사당에
靑春駐節海雲深 푸른 봄날 유하실제 바다구름 깊었구나.
得如公死眞無愧 공처럼 죽음에 이르러도 참으로 부끄러움이 없었고
也識天生早有心 타고난바, 서둘러 주위를 살펴야함을 알았었지.
誓後魚龍猶怒氣 어룡에 맹세하곤 노한 기색을 다스리니
化餘猿鶴自悲吟 감화된 여남은 원숭이와 학이 절로 슬피 읊조린다.
檀香欲歇靈風過 쉬어갈려는 향나무엔 신령스런 바람 부는데
蕭寺鐘鳴月掛林 쓸쓸한 절간엔 종이 울리고 수풀엔 달이 걸렸네.

5) 충렬사(忠烈祠[二]) / 판서 정익하(判書鄭益河,1688년~?)
忠武遺祠志士尋 충무공의 유훈 받든 사당을 뜻있는 선비가 찾아보니
翠筠蒼檜自成陰 푸른 대나무 회나무 절로 그늘을 만들었네.
人能義若鰲山大 사람들이 의롭다하며 마치 거북 같은 큰 산으로써
天仗功收鷺海深 하늘을 찌를 듯한 공(功)을 거둔 노량바다 깊을 뿐.
向者西原埋碧血 예전에 서쪽 언덕에서 짙푸른 피를 메웠고
得於南國秉丹心 남쪽국토에서 한결같은 충성심 지키었다.
螭頭別有如椽筆 이두(螭頭)에 달리 있는 훌륭한 글씨가
彷彿英姿倚劍吟 마치 늠름한 자태로 칼에 기대 읊조리듯 하네.

[주1] 이두(螭頭) : 성문 위의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성벽에 끼운, 이무기나 용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하여 구유처럼 홈을 낸 돌. 궁궐 섬돌에 새긴 용머리 모양의 장식물로 한림학사를 가리킨다. 관제(官制)에 “아조(我朝)의 한림은 모두 사관(史官, 起居注)으로, 반열이 이두(螭頭)에 가깝기는 하나 역시 전하(殿下)에 멀리 있다.” 하였다.
[주2] 여연지필 (如椽之筆) : 서까래 같은 필력. 글재주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

6) 충렬사(忠烈祠[三]) / 판서(判書) 김상성 (金尙星.1703년∼1755년)
古廟丹靑碧海潯 오래된 사당의 단청, 푸른 바다 기슭,
寒潮嗚咽怨何深 한파에 설움 복받치니 원한이 그리 깊었나?
風雷菀結三呼恨 폭풍우에 울화가 치밀어 여러 번 한탄하고
星斗昭森六出心 여섯 번이나 마음을 잡으니 별들이 반짝인다.
落日樓船猶壯迹 석양속의 다락배는 아직도 자취 씩씩하고
淸秋皷角自悲吟 맑은 가을 고각소리 절로 슬피 들리네.
有時方斷神靈雨 제 때에 신령스런 비가 걷히니
楓樹蕭蕭篁竹林 참대 숲 단풍나무 쓸쓸하다.

[주] 육출심(六出心) : 한(漢) 나라 진평(陳平)이 평생에 국가와 전쟁에 대해서 여섯 가지 기특한 꾀를 내었다. 출심(出心)은 가행(집안의 행실과 품행)의 선심에서 나오는 마음.

7) 충렬사(忠烈祠) / 신좌모(申佐模,1799년∼1877년) 이조 판서.
忠武之生實賴天 충무공 생애는 하늘의 은혜를 받아
至今勳烈記龍年 오늘에 이르러, 큰 공훈을 용의 해에 기록한다.
再持節鉞氛塵洗 재차 절부월(節斧鉞)을 손에 쥐고 티끌을 씻으니
八錫弓刀日月懸 여덟 가지 하사품, 활과 칼이 일월처럼 빛나네.
十萬敵兵經幾戰 십만 적병을 몇 번의 전쟁으로 다스리니
三千里域得重圓 삼천리 국토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구나.
五原星隕英䧺淚 오장원(五丈原)의 떨어진 별은 영웅의 눈물이라,
江漢高樓一汪然 강한의 높은 누각 보니 한줄기 눈물 하염없네.

[주1] 절월(節鉞) : 절부월(節斧鉞), 조선 시대에, 관찰사ㆍ유수(留守)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대장(大將)ㆍ통제사 들이 지방에 부임할 때에 임금이 내어 주던 물건.
[주2] 장성운(將星隕) : 장군(將軍)이 진몰(陣沒)하거나 영웅ㆍ위인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
[주3] 오장성운(五丈星隕) : 오장은 중국 섬서성 봉상현의 서남쪽에 있는 곳, 제갈량이 여기 오장원에서 죽음. 제갈량의 죽음을 뜻하는 말. 제갈공명의 책략이 돋보였던 전쟁을 꼽으라면 사마중달과 대치했던 오장원 전투가 아닌가 싶다. 오장원(五丈原) 전투는 공명이 자신의 죽음을 이용해 적의 오금을 저리게 하고, 자신의 후광(後光)만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을 물리쳤다는 점에서 적벽대전과 대비된다.
[주4] 강한고루(江漢高樓) : 강한의 높은 누각, 여기에서는 1840년에 건축된 충렬사 內 강한루(江漢樓)를 말함. 강한(江漢)은 양자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으로 원래 군사요충이며 이름난 중국 호북성의 경승지라고 한다. 1840년에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여기에 누각을 지었을 때 추금(秋琴) 강위(姜瑋)가 충무공의 위업을 강한과 관련된 고사에 연관지어 강한루(江漢樓)라 명명했다. 현 누각은 전형적인 조선의 팔각지붕 양식으로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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