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룡포유감(頭龍浦有感) / 변일민(邊逸民,1740년~1778년)
水寨聲聲畵鼓撾 화려한 북 치는 수군진영 소리소리 들리고
一林冬柏落花多 동백나무 온 숲에 떨어진 꽃이 많기도 하다.
春風掩抑紅粧妓 봄바람에 움츠린 꽃단장한 기생이
忍唱頭龍大將歌 참으며, '두룡포대장가'를 부르네.
嶺樹南雲摠是愁 산꼭대기 나무 남쪽 구름, 모두가 시름일세.
閒山島外水悠悠 한산도 외해 바다는 유유하기만 하다.
旅魂何處成飄泊 어디로 떠도는 나그네 신세인가?
木末流丹舊戍樓 아직도 저 멀리 옛 수루엔 단청 빛이 흐른다.

[주] 목말(木末) : 숲속, 메밀가루, 어깨위에 올라타는 것, 나무 꼭대기, 가지 끝, 아직도 멀리 있다는 말이다.(木末, 言猶遠也.)

2) 변일민을 애도하며(悼邊逸民,1740년~1778년) 二首 / 유득공(柳得恭,1749년∼?) 조선 후기의 실학자.
[君雅能詩 薄游南海之濱病歿 頭龍浦大將歌其所作也 倭中語曰頭龍浦大將最可畏 盖指三道統制使云 "沙頭走燐皆蠻鬼 木末流丹卽戍樓" 又君佳句]
"변일민" 그대는 우아한 시에 능했다. 한바탕 노닐던 남해의 물가에서 병으로 죽었다. 두룡포대장가는 그의 유작이다. 왜국의 말 가운데 이르길, "두룡포 대장이 가장 두렵다." 모두 삼도통제사를 가리키며 이르길, "모래 언덕에 도깨비불은 오랑캐의 넋이로다. 숲속의 수루엔 붉은 빛이 흐르네." 이 또한 그대의 훌륭한 글귀이다.

◯ 이덕무(李德懋)가 전하는 변일민(邊逸民) : 변일휴(邊日休)의 자는 일민(逸民)이며 원성인(原城人)인데, 자호(自號)를 성유리관가가생(聖琉璃館呵呵生)이라고 하였다. 노불(老佛,도교 불교)에 출입(出入)하면서 태식(胎息,도가의 호흡수련)과 도인(導引,도가의 양생술)을 수련하기도 하고, 가부좌(跏趺坐)하고 범패(梵唄,찬불가)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저속함을 초탈하였으며, 서원(徐袁)을 매우 좋아하였고, 서천지(徐天池)의 사람됨을 더욱 흠모하였다. 일찍이 통제영(統制營)에 놀면서, 두룡포대장가(頭龍浦大將歌)를 지었고, 정유년(1777, 영조 1)에 또다시 박재선(朴在先)과 누선(樓船)을 타고 한산도(閑山島)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며 소타(嘯咤)하였고, 그 때에 쓴 시가 모두 호장하였는데, [沙頭走燐皆蠻鬼사두주린개만귀 木末流丹卽戍樓목말류단즉수류] "모래 언덕에 도깨비불은 오랑캐의 넋이구나. 숲속의 수루엔 붉은 빛이 흐르네."한 시구를 남겼다. 이듬해 봄에 남해안 통제영중(統制營中)에서 죽었다.

3) 통제영(統制營) / 강위(姜瑋,1820년~1884년). 조선 후기의 한학자, 개화사상가.
江漢樓前萬里波 강한루 앞 만 리 물결
太平元帥大刀歌 태평한 통제사 대도가를 부른다.
遙夜群鴻都睡着 긴 밤 기러기 떼 모두 잠들고
碧空無際月華多 가없이 넓은 짙푸른 하늘에 달빛 쏟아지네.
書劒無成老更哀 문무(文武)를 못 이루고 나이드니 더욱 슬픈데
沈吟終日在戎臺 종일 군사훈련장에서 깊은 한숨뿐이로다.
天中積翠頭流出 하늘의 짙푸름이 산머리를 떠돌다 나타나고
海上斜陽巨濟來 해상에는 저문 햇살이 거제로부터 비춰오네.
水偏淸處毒龍浮 독룡이 떠다니는 물은 편벽되게 맑고,
讀得唐詩可戰不 당시(唐詩)를 읽으니 어찌 싸우지 않으리오.
神解如公千古少 신령을 깨우친, 공 같은 분이 먼 옛적에도 적었으니
莫將敦說擬凡流 범부에 비견해 지나친 말이라 하지 말라.
忠武祠堂萬竹林 무성한 대숲 속 충무공 사당에는
英雄事畢海沉沉 영웅의 일을 끝내고 바다에 잠긴,
世間不乏千名將 세상에 드문 아름다운 명장으로
有否盟山誓海心 굳게 맹세한 마음만 있도다.

[주1] 통영 강한루(江漢樓) : 강한(江漢)은 군사요충이며 양자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으로 이름난 중국 호북성의 경승지라고 한다. 1840년에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여기에 누각을 지었을 때 추금(秋琴) 강위(姜瑋)가 충무공의 위업을 강한과 관련된 고사에 연관 지어 강한루(江漢樓)라 명명했다. 현 누각은 전형적인 조선의 팔각지붕 양식으로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주2] 수편청처독룡부(水偏淸處毒龍浮) : 율곡이 이순신에게 "독룡이 숨어 있는 곳의 물은 편벽되게 맑고 산에서 나무 찍는 소리가 ‘정정’ 울리니 산은 다시 그윽하다(伐木丁丁山更幽 毒龍潛處水偏淸)"이란 시구를 전해주었는데 "伐木丁丁山更幽"는 두보의 시인 "제장씨은거(題張氏隱居)"에 실려 있다.
[주3] 맹산서해(盟山誓海) : 썩 굳게 맹세(盟誓)함을 이르는 말.

4) 매미도(매물도)석벽(每味島石壁) "방휼시(蚌鷸詩)" 조개와 황새 / 거제부지 수록.
距統營不遠 통영에서 멀지 않는 거리에 있다.
故老多有目擊者 많은 늙은이가 목격자다.
忠武公閑山大捷後 충무공의 한산대첩 후에
敗歸倭酋題刻七律一首於巨濟外洋每味島石壁云 패하여 돌아가는 왜군의 장수가 거제 외양(외해) 매미도(매물도) 석벽에 칠언 율시 한 수를 새겼다.
海蚌乘陽怕水寒 바다조개가 찬 물이 두려워, 양지 찾아 올랐는데
鷸禽何事苦相干 황새가 무슨 일로 괴롭게 서로 건드리나,
身離窟穴朱胎損 몸이 구멍 속을 나왔으니 붉은 태가 손상되고
力盡沙灘翠羽殘 모래 여울에서 소진한 몸 푸른 날개 쇠잔하다.
閉口豈期開口禍 입을 닫고 있을 적에 어찌 열은 입의 화를 알까?
入頭雖易出頭難 머리가 들어 간 뒤에는 아무리 빼려 해도 쉬이 나오기 어렵구나
早知俱落漁人手 어부의 손에 함께 떨어질 줄 일찍이 알았다면
雲水飛潛各自安 구름에 날고 물에 잠겨 피차 서로 편할 것을,

5) 송소재 내한기폐 위고성령(送篠齋內翰起廢爲固城令) 三首 / 신위(申緯) 1822년 1월 5일에 도착(壬午正月 至五月), 당시 통제사 박기풍(朴基豊) 1821년 10월~1823년 8월 재임.
思亦榮時罪亦榮 생각건대, 단지 영화로울 때 허물 또한 영화와 함께 할뿐,
海南塞北捴生成 바다 남쪽 변방과 북쪽 모두에서 생겨난다.
崇深報答知無所 높고 깊은 보답이 무엇인지, 무지를 드러내는 바,
纔愛黎元是竭誠 작은 인정을 백성에게 베풀고 성의를 다했구나.其二憑君點檢浮生事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덧없는 인생사 점검하여라.
十七年來何所無 17년에 이르기까지 없는 바가 무엇인가?
做得熱官非信美 성취한 권세가가 참 아름다움이 아니라,
到頭覓飯是良圖 청빈한 삶이 결국 좋은 그림이다. 其三統制營中祿位卑 통제영 내에는 비천한 녹봉을
勉將傲兀氣摧之 강요하고 오만한 장수가 사기를 꺾는다.
休言此去鸞捿棘 이를 말할 필요 없다고 하지 말라. 난새가 가시나무에 깃들면,
好是先生養翮時 발 없는 솥이 때마다 나타나 먼저 봉양한다.

[주1] 소재(篠齋) : 서기수(徐淇修), 1771(영조 47)∼1834(순조 3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비연(斐然), 호는 소재(篠齋).
[주2] 기폐(起廢) : 파면(罷免)시켰던 사람을 다시 불러들임. 내한(內翰)은 남에게서 온 편지.
[주3] 난새(鸞) : 상상의 새, 모양은 닭과 비슷하고 털빛은 붉은 바탕에 다섯 가지 빛깔이 섞였으며 울음소리가 오음에 맞는다고 한다. 전설 속에 나오는 봉황과 비슷한 새. 

 

6) 강한루(江漢樓) / 강위(姜瑋,1820년~1884년). 조선 후기의 한학자, 개화사상가.  
강한(江漢)은 군사요충이며 양자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으로 이름난 중국 호북성의 경승지라고 한다. 1840년에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이 여기에 누각을 지었을 때 추금(秋琴) 강위(姜瑋)가 충무공의 위업을 강한과 관련된 고사에 연관 지어 강한루(江漢樓)라 명명했다. 현 누각은 전형적인 조선의 팔각지붕 양식으로 1988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試溯神仙夢 신선의 꿈 잠시 거스르다가
重開漢上襟 강한루에 올라 옷깃을 연다.孤月行天遠 외로운 달은 하늘 멀리 떠가고
衆流到海深 수많은 물갈래, 깊은 바다에 이르네.
逢人問古地 만난 사람에게 옛 땅을 물으며,
對酒憐初心 마주한 술에, 본디 마음 가련토다.
忠烈祠堂在 충렬 사당이 있는
天涯已再尋 하늘 끝, 재차 찾아왔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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