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시월을 소춘小春이라 한다.

가을 한가운데 섬처럼 잠시 존재하는 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을 사람만 느끼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철쭉이 시간을 착오하여 피기도 하고, 새소리에도 봄의 생기가 깃들곤 한다.

사람의 시간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을이라야 봄을 다시 불러온다.

여름에는 봄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현재'의 푸른 피에 취해 생生에 집중하는 시절에 어찌 '돌아봄'이 가능하겠는가.

미당은 '마약 같은 봄'이라 했지만, 실상은 마약 같은 여름인 것이다. 단식한 마음 같은 하늘에 제트기가 긋고 간 하얀 길이 번짐을 따라 서서히 번져가는 가을, 조락하는 이파리들을 따라 흰머리가 늘어가는 가을이 되어야, 지나간 봄은 다시 돌아온다, 젖은 그리움의 필터에 걸러진 순결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외딴섬에 사는 소녀와 주고받은 편지처럼 순결한 봄날의 시간이…. 

삼월의 마지막 오후에 배를 탄다.

가까운 섬으로 간다. 찻길이 없는, 나지막한 돌담 두른 집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마을을 찾아간다.

섬마을 어깨 정도에 얹혀 있는 작은 집, 꼬부랑 할머니 홀로 사는 집의 아랫방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꿈 하나 꾸지 않고 칠흑 같은 잠을 잔다. 자갈 굴리는 파도 소리에 깨어나면, 사월 첫째 날!

늙은 감나무에서 맨 처음 돋아나는 새잎 같은 아침.

울퉁불퉁한 흙 마당에 나와 돌담 너머로 흰 구름 생기는 곳 오래 바라보고, 놋쇠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얼굴을 씻는다.

늙은 바위 정수리에 떨어지는 마른벼락처럼, 태초의 정결이 마음을 씻어 준다. 딛지 않은 시간이 모두 처녀지로 펼쳐진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방금 탯줄을 자른 아버지의 마음,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죄악을 탯줄과 함께 자르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이럴까.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마음이 선善에 대한 의지로 충만해진다.

고해성사는 컴컴하고 은밀한 방에서 이루어지지만, 사월은 뭇 생명의 환한 약동으로 사람의 죄악을 씻어준다.

새끼 새의 부리 같은 연록의 시간 앞에서 어찌 순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할머니가 챙겨 주신 아침밥을 먹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마파람이 품고 오는 소금에 삭은 지붕들. 주인 없는 장독대 위에 앉아 있는 까치들. 염소들이 사는 움막들. 이름 없는 들꽃들 번지는 붉은 흙을 밟고 숲으로 간다.

약이 되는 풀을 뜯어 먹는 소처럼 사월을, 그것도 첫째 날을 뜯어 먹으며 걷는 숲 속. 색채가 폭발하고 있다.

숲 속에 사는 처녀 바위가 낳은 알에서 흘러나온 색채들이 눈먼 폭동처럼 번지고 있다.

무지개 섞인 물이 물관을 타고 숲의 모세혈관을 돌고 있다. 까마귀 소리 폭죽처럼 터진다.

온갖 새들의 부산스러움 너머에 일찍 핀 꽃나무 한 그루. 그 품속에 까치집 한 채. 까치들의 부산스러운 경음은 까치집이나 한 채 짓고 살라고 한다.

환한 꽃구름 갈비뼈에 마음 얹고, 꽃잎에 살 비비며 살라고 한다. 죽음도, 저승도 다 잊어버리고 살라고 한다….

가을은 온다. 공리公理처럼 정확하게 온다. 누구나 인생의 가을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홀로 걷는 것은 아니다.

봄의 기억이 조락하는 마음의 불씨를 풀무질하며 함께 걸어간다. 있는가, '그' 봄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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