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는 가지가지 종류가 많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간선도로 이면도로 소로 오솔길 샛길 골목길.

모든 길은 언제나 삶에서 출발하여 삶으로 향한다. 삶에서 출발하지 않거나 삶으로 향하지 않는 길은 짝퉁이다. 사실 길은 삶으로부터 떠나본 적이 없다. 길은 삶 속에서 만들어졌고, 슬픔과 기쁨을 삶과 함께 해왔다. 당연히 모든 길의 죽음은 삶과 함께였다. 하지만 우리는 길을 쉽게 만들고, 함부로 넓히고, 무심코 끊어버린다. 길의 탄생과 존재 이유를 까마득히 잊고 살아간다.

통영엔 바닷길과 뱃길도 많다. 통영의 웬만한 길은 바닷길이다. 섬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만은, 육지도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물빛과 파도 소리가 바짓가랑이를 흔들기 일쑤다. 어디서 시작하든, 어디로 향하든 통영의 길은 바다와 함께한다. 산복도로조차도 반짝이는 윤슬과 함께 나아가고 되돌아온다.

스쳐 지나는 창 너머로 길과 바다를 무심코 보면 모르겠지만, 통영 바닷길을 제대로 걸어본 이들은 예찬론자가 된다. 한 마디로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는가?'다. 

시내 쪽에 가까운 바닷길은 크게 네 군데다. 인평동 해양과학대학 앞에서 출발해 항남동, 강구안, 정량동을 지나 망일봉 아래 이순신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이 가장 크고 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길이다. 미수동 통영대교 아래 해양공원에서 출발해 충무교, 연필 등대를 지나 해평열녀비각 앞까지 이어지는 길은 특히 해질녘과 밤이 아름답다. 

해질녘 무전동 해변공원에서 출발해 소포마을을 지나 평림생활체육공원까지 왕복하며 산책과 운동을 겸하는 시민들도 많다. 죽림만을 휘감아 도는 산책로도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통영의 주도로인 인평동-이순신공원 길을 천천히, 온전히 걷다 보면, 우리의 삶과 길이 같은 모양임을 보게 된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길이 끊어지고 뒤틀리고 요동친다. 분단된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도 그렇다. 인심은 끊어지고, 사회는 왜곡되고, 자긍심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곳곳에 놓인 장애물과 쓰레기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꽃샘추위를 딛고 일 년만에 새봄이 찾아왔다. 꽃과 초록과 새소리를 데리고. 70년 만에 찾아온 봄이 휴전선을 넘어 초록의 물결을 퍼뜨릴 수 있을까? 끝나지 않은 전쟁의 시대를 닫고 진정한 평화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출발한 기차가 휴전선을 지나고 개마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내달려 유럽에 도착하는 날, 한 무리의 청년들이 포르투갈의 땅끝 마을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넘나드는 푸른 물살을 보며 앉아있는 청년들의 얼굴에 통영 바다 윤슬이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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