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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190 - 오늘의 이순신 3, 애민(愛民)하다

'인간' 이순신을 생각할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왜 그토록 왜적을 죽이는데 집착했던 가이다. 그것도 지엄한 왕과 중앙 권력자들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조정에서도 만류하고, 명나라에서도 말리는데, 후퇴하는 적을 쫓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400여 년 전 옛 장수의 속마음을 어찌 알겠는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그의 일기가 있다. 일기라고 해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딱 부러지게 설명해주진 않지만, 행과 행 사이를 읽다 보면 어렴풋이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행간에서 찾은 두 단어는 '사랑'과 '장수'였다. 그의 사랑은 깊었다.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사람만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비는 모든 병사와 전란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 땅의 백성 모두가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간절히 원했다. 요즘 말로 하면 '생명과 평화'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고귀한 것이었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으나, '장수'에게는 단 하나의 길만 있었다. 적을 섬멸하는 것이었다. 적을 죽여야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전쟁에서 이겨야만 했다. 지는 전쟁으로는 생명과 평화를 지킬 수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왕명도 거부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이순신의 눈물과 사랑은 가족에 한정되지 않았다. 동네에서 개를 잡아먹은 병사에게 곤장 80대의 벌을 내린다. 백성을 괴롭히는 사람은, 적이든 아군이든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퇴각하는 적을 쫓으면서도, 궁지에 몰린 적들이 배를 버리고 뭍으로 상륙하게 되면 인근의 백성들을 해칠까 우려하여 추격하지 못하도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백성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죽이는 것이었기에, 살리면서 죽였다.

혹독하기로 정평이 난 이순신의 병영 관리에서도 백성의 안위는 우선이었다. “지나온 곳이 온통 쑥대밭이 되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우선 전선(戰船) 정비하는 일을 면제해 주어 군사와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겠다(1596년 8월 14일).”

“맑았으나 바람이 세게 불어 살이 에는 듯 추웠다. 각 배에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목을 움츠리고 추워서 신음하니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1594년 1월 20일)." “새벽에 꿈에서 아들을 얻었다. 이는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을 얻을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1593년 7월 29일)." 길몽조차 그에게는 병사와 백성을 살리는 신호로 읽혔다.

임진왜란은 세계사를 뒤바꾼 7년간의 다자간 전쟁이었다. 그 현장을 누빈 총사령관의 일기에, 종이 병을 앓는 것도 등장하고, 지인의 집에서 일하는 어린 여종을 향한 연민의 시선까지 담겨있다.

애민, '생명과 평화'는 이순신의 모든 것이었다.

(이야기는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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