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초봄부터 한반도는 자유와 독립을 염원하는 간절함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삶을 향한 외침이 죽음이 되었고, 죽음 속으로 돌진한 발걸음이 새 삶을 일구었다. 그러나 그까지 가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날의 뜨거움은 팔도의 심장 경성과 남도의 끝 통영이 판박이였다. 두 곳의 그 날을 더듬어본다.

경성 거리의 초저녁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하지만 태화관 주변은 조심스레 몰려드는 신발 소리로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통영읍 시가지는 저 멀리 선창가에서 들려오는 뱃사람과 여인들의 웃음소리로 왁자했다. 컹컹 개 짖는 소리는 면사무소 뒷골목 법륜사(法輪寺)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제 거사를 위한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내일 3월 1일 오후 2시 이곳 태화관에서 한용운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나면, 민족대표 33인이 다 함께 만세 삼창을 외칠 것이다. 아, 대한의 독립은 이렇게 오는 것인가.

3월 13일 통영 장날에 맞추어 준비하던 첫 거사가 일경에 발각되어 불발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물결은 도도하게 흘러넘쳤다. 독립 만세운동은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일이면, 불교 청년들과 기독 청년들이 민족의 독립과 이 나라 백성이 살길을 열어젖히기 위해 앞장설 것이다.

드디어 일본 경찰들이 태화관으로 들이닥쳤다. 만세삼창이 끝나자마자 민족대표들은 빠짐없이 일경에 체포되었다. 태화관 주인을 시켜 종로경찰서에 신고한 용성스님의 계획대로, 민족대표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일시에 퍼져나갔고, 들불은 삽시간에 팔도로 번졌다.

4월 2일 오후 3시 30분 통영시장에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3천여 명이 일시에 외치는 독립 만세 소리가 하늘을 가득 덮었다. 왜경도 놀라고 난전의 물고기도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경성과 통영의 태극기 물결은 성난 파도와 같았다. 이천만 동포의 피맺힌 함성이 조선 팔도를 뒤흔들었다. 인류 역사 초유의 대사건이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돌멩이도 하나 들지 않고서, 오로지 자유와 독립이라는 두 덩어리의 뜨거움만 안고서 무도한 총칼 앞에 당당히 나섰다.

통영의 유지와 청년들이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논의하던 법륜사는 지금의 태평성당 뒤쪽에 있(었)다. 통제영 아전들을 관리하던 영리청(營吏廳)이 있던 곳으로, 광해군 1년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용화사의 포교당이었다가, 광복 후 법륜사로 개칭되었다.

시가지에서 가까우면서도 뒷길에 있어 조용하고, 종교시설이라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신앙 활동을 위해 포교당을 찾는 시민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었다.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에서 독립의 꿈이 영글었다.

현재 영리청을 복원하기 위해 건물은 허물어졌고, 빛바랜 단청을 인 대문만 하늘을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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