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미래, 삼 형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이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답을 꼽는다면 '현재'다. 우리는 대게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고, 현재가 있으면 미래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직선적 세계관이다. 화살표처럼 한 방향으로 무한히 흘러가는.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지금이 없으면 과거도 없다. 무슨 말인가? 지금이 없으면 과거의 인물과 사건은 그때는 있었을지언정,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있어야 자식이 있지만, 또한 자식이 없으면 부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남자와 여자, 부부가 있을 뿐이다. 시간의 출발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그러니 역사는 객관적 사실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대한 국민이 있으니, 6천 년의 역사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없으면 3.1독립만세운동은 그냥 망한 나라 백성들의 실패한 울부짖음일 뿐이었다. 하지만 3.1운동을 헌법 정신의 기둥으로 삼은 대한민국이 그 아픔의 역사를 공존과 공영의 밑거름으로 삼았기에, 3.1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혁명의 하나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실패한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성공한 운동이다. 3.1운동이 있었기에 촛불혁명이 있고, 촛불혁명이 있기에 3.1운동이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400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208대의 통제사들, 그들이 거느렸던 무적함대, 조선 최고의 국방 도시로서의 자부심, 풍요롭고 아름다운 공예기술, 세병관의 위용. 다 맞기도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바로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자신이다. 가치와 고마움을 잊으면 400년은 책 속에 존재하는 글자일 뿐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수자기(帥字旗)가 300년 동안 통영의 하늘을 흔들었다면, 앞으로 300년 동안 통영의 하늘을 수놓을 깃발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통영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시민의 자긍심을 드높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는 통영 만의 깃발 말이다.

'수국(水國)' 또는 '통영'이 어떨까 싶다. '수국(水國)'은 한산도와 통영 주변을 일컬어 이순신 장군이 부른 이름이다. 그 속에는 "약무바다 시무국가(若無바다 是無國家)"라는 선명한 시대정신과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를 향한 염원이 서려 있다. 뭍에서 벌어지는 수탈과 학정, 다툼과 파괴가 범접하지 못하는 나라, 각자가 행복하고, 모두가 화합하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그런 나라를 이 바다에서 꿈꾸던 장군의 눈빛이 서려 있다.

'통영'은 푸른 바다와 570개의 아름다운 섬을 그래픽 모티브로 형상화한 로고이다.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이 통영의 섬을 만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로고가 되었다.

누구든 통영의 로고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통영의 섬을 안은 '통영'은, 바다와 섬이라는 키워드로 통영의 미래상을 그려내고 있다. 통영 사람들의 정서와 가치관은 바다와 섬에서 잉태되었다. 바다와 섬은 지속가능한 통영을 향한 열쇠다.

우리와 함께 푸른 바다,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만들어갈 통영의 깃발을 지금 우리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수국(水國)'이든 '통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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