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메인박스 칼럼
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34 - 집어등
   

옛날 나무꾼들은 나무를 베기 전에 "도끼 들어가요" 하며 나무에게 미리 알렸다. 나무도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인데, 무자비한 도끼질이 얼마나 무서울까. 그 마음을 아는지라 나무꾼은 최소한의 배려심으로 미리 귀띔해주었다.

한동안 불을 때지 않던 구들에 불을 넣을 땐 "불 들어가요"라며 미리 알림으로써 갑작스러운 불길에 구들이 놀라지 않게 하였다. 놀라면 긴장하고, 긴장하면 굳어지니 작은 불에도 금이 가고 깨어지기 쉽다. 잠시라도 구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밥 먹을 땐 또 어떤가?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숭늉 한 모금이나 국 한 모금 먼저 마신다. "밥 들어가요" 하며 알리는 택이다. 미리 위가 연동하며 음식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들에서 먹을 땐 "고시레~" 하며 음식 한 점, 술 한 잔을 대지와 나눴다.

이 땅의 선인들은 그렇게 삶의 기본인 의식주는 물론이요, 먹고 사는 생업에서조차 늘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알았기에 과하게 욕심부리는 것에 엄격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정량 이상을 수확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부담스러워했고, 심하면 죄받는다 싶어 손사래를 쳤다.

통영 앞바다에 그물을 내릴 때는 어떠했나.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만큼 잡히면 더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용왕님의 노여움을 사기 전에 멈출 줄을 알았다. 많이 걷어 올리는 자가 잘난 게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자가 잘난 이였다. 바다는 수시로 성을 내어 뒤집어졌다. 겸손을 지킨 자에겐 그 크기만큼 두려움이 적었고, 탐욕스러운 자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바다엔 고기가 차고 넘쳤지만, 어창과 선창엔 고기가 차고 넘치지 않았다. 하지만 집어등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다다익선이 철칙이 되었다. 내가 잡지 않은 고기는 바다의 것이 아니라, 이웃의 것이었다. 내 어창의 크기와 이웃 어창의 크기는 반비례했다. 이웃의 것이 크면 나는 바보가 되었고, 심지어 손가락질을 받았다.

집어등의 크기와 밝기는 날이 갈수록 드세어졌고, 집어등의 길이는 국경선을 이룰 만큼 길어졌다. 그러는 사이 용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닷속 이야기는 소주에 곁들여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문어 다리 한 점밖에 되지 않았다.

집어등이 없던 시절, 배도 작고 선원도 몇 되지 않던 때, 바다 밑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내 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잡아들인 고기뿐만 아니라, 잡지 않은 것까지 모두 잠재적인 내 소유물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자산 목록을 갖고 있는가? 자산관리 계획은 세우고 있는가?

앞으로 몇 년을 더 빼먹어도 되는지, 언제쯤 잔고가 바닥나는지, 이자를 적당히 받아 챙기면서도 복리 이자가 계속 쌓이도록 하려면 매달, 매년 얼마를 지출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산 파악도 못 하고, 단맛에 취해 곶감 빼먹듯 가산을 탕진하는 철없는 상속자에 불과한가.

갈치 풍년이 엊그제인데, 갈치 흉년이 코앞이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