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산 정상에 서서 먼바다로 향했던 시선을 당겨 눈앞 바닷가 마을을 바라보면 신기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요철이 많은 리아스식 해안이 다섯 손가락 모양이다.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오른편 동암마을과 왼쪽의 오촌마을 사이에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 지형이 보인다. 개구리 손가락처럼 짧고 뭉툭한 모양이지만 분명 다섯 손가락이다.

이런 걸 누가 알려줘서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신기하다 말 텐데, 우연히 발견하여 지도나 주위 사람에게서 확인받고 나면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뿌듯한 마음마저 든다. 오늘은 산불감시원 아저씨께서 확인해주셨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걸을 때는 몰랐는데,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선명하게 보인다. 산에 들면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삼봉산은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섯 손가락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굴 박신장에서 나는 악취로 인해 걷기 편한 길은 아니었는데, 개발되기 전이었다면 "여기는 엄지, 여기는 검지" 손가락을 세며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 딱 좋겠다.

오촌이란 마을 이름도 다섯 손가락 모양(五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오리밭골(烏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 물가에 겨울 철새인 물오리들이 많이 서식하면서 붙은 이름이 아닐까.

언젠가 동암 갯벌에 사는 거위 한 마리가 지역의 명사가 된 적이 있었다. 함께 살던 암컷이 세상을 떠나고서도 수컷 거위가 갯벌을 떠나지 않고 십 년 가까이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살았다. 그런데 갯벌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가 있으면 달려와 꽥꽥 소리를 질러대어 동암갯벌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삼봉산은 삼화리를 비롯한 주변 주민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세 마리 용이 꿈틀대는 곳이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의 진실성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지만, 최소한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조상들의 지혜가 아닐까.

자연을 함부로 파헤치고 파괴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인간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 삶이 자연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젖을 더 먹겠다고 엄마 젖을 찢는 이가 있을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한 치 앞밖에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도 우리는 더 지혜롭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숲속 깊은 곳에 살던 바이러스가 70억 인구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 것은 쾌락과 이윤을 얻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오랜 버릇에서 비롯되었다. 경제적 피해는 또 얼마나 심각한가.

우리는 '필요'한 만큼 누리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필요'를 넘어 '탐욕'의 크기만큼 살아간다. 위대한 어머니 자연은 70억이 아니라, 100억의 인구라도 '필요'를 채워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100명의 '탐욕'을 채우기에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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